잡담

바쁘기도 하지만.. 바쁜 상태라서 블로그를 방치하는 수준인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정신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몸 한 켠이 조금은 조급한 상태랄까요.

요즘 들어 살이 빠졌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거울만 봐선 잘 모르겠습니다. 만날 보는 제 얼굴, 어떻게 알겠어요. 근데 실감한 일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편 손이 들어갈 정도의 딱 맞는 옷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일 년에 두어 번 입는데 올 초까지는 조금 빠듯했습니다. 입을 수는 있지만 불편했달까요. 근데 최근 그 옷을 입다가 조금 헐렁하단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이 빠지니 좋긴 해요. 흐흐.
좀 피곤한 일정인데 잠은 조금 줄었습니다.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있습니다. 평소엔 6시에 일어났는데 요즘은 5시 반에서 45분 사이. 그냥 눈이 떠져요. 이렇게 삶이 변해가는 것일까요? 어차피 잠을 조금 더 줄여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니 나쁘지 않아요.
블로깅을 너무 자주 비우게 되면, 수업 시간에 쓴 쪽글이라도 올릴까봐요.. 수업 쪽글 올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너무 비우니까, 방문하시는 분께 죄송해서요.
아무려나 내일은 다시 일요일입니다.

일상의 미묘한 변화

주말마다 부산에 가기 시작하면서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일단 세미나를 모두 중단했다. 다른 사람들은 참여하고 있지만 나는 6월 말까지 빠지는 것으로. 보통 주말에 수업 자료를 읽었는데 주말에 부산에 가다보니 시간이 빠듯하다.

시간의 빠듯함은 얼추 열흘 정도 공부에서 손을 놓고 지내면서 발생한 문제기도 하다. 고인을 보내느라 일주일 정도 부산에 있었다. 그 이후로도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아울러 마감해야 하는 원고도 있어 정신이 더 없었다. 그렇게 열흘 정도 시간이 흐르자 공부 일정이 모두 꼬였다.
학기의 반이 지난 지금 기말 페이퍼 시간이 돌아왔다. 주제는 있는데 참고 문헌은 충분히 읽지 않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할 방법론이 모호하다. 재밌는 글, 내가 원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는지…
애도의 시간을 가지기엔 일상이 바쁘다. 읽어야 할 논문과 책이 쌓여 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바쁘지 않았다면, 그래서 늘어져있다면 더 괴로웠으리라. 바빠서 다행이다. 애도 역시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보는 시간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나를 돌아보고 또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끊임없이 날 챙겨주는 이들이 고맙다. 보답하는 길은 좋은 글을 쓰는 것,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인데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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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기약하지 말 것. 그냥 현재만 믿을 것. 현재에 최선을 다할 것.

“다음에”라는 시간

주말마다 부산에 갔다 오고 있습니다. 이번엔 월요일에 처리할 일이 있어 오늘 돌아왔지만요…

기차를 타고, 다시 지하철,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1km를 더 걸어야 재를 지내는 절에 갈 수 있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고인에겐 이렇게 할 수 있는 데 살아 있을 땐 왜 이렇게 못 했을까,란 고민을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인을 향한 애도와 예의는 챙기면서 생전엔 왜 이렇게 못 한 것일까요? 전 얼마나 많은 미래를 기대한 것일까요? 어떤 시간을 기대한 것일까요?
부산에 가기 전, 요즘 제 몸 한 켠을 내주고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질문에 “다음에”라고 답을 미뤘습니다. 질문을 받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란 시간은 과연 존재할까요? 예전부터 미래 시간을 믿지 않았지만 최근 일을 겪고 난 뒤로 미래 시간을 더욱더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왜 “다음에”라는 미래 시간을 기약한 것일까요?
관계를 예측할 수 없는 미래까지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의 표현일까요? 혹은 이 대답을 할 때까지는,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대답을 할 시간까지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일까요? 혹은 현재를 유예하는 것일까요? 현재 시간을 늘이고 또 늘여서 더 길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일까요?
“다음에”라는 시간은 어떤 욕망 혹은 바람을 내포한 대답일까요? 미래라는 시간은 참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 전 얼마나 더 많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요? 그저 현재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달리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말이죠.
“다음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금 슬펐고,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