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을 맞지 않고

그러고보면 작년 서울변방연극제에서 공연한 [퇴장하는 등장]에 “빰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구자혜 작가/연출과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너무 늦게 알아 안타까워하는 나는 이제야 이것을 깨닫는다.

언젠가 ‘등퇴장’과 ‘뺨을 맞지 않고’를 연속해서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해보면 연결고리가 많다.

올해 나의 바람. 누가 여당극에 기금을 줘서 연말에 [.기다려]를 재공연을 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아니면 소셜모금이라도 해서… [.기다려]는 매우 슬픈데 또 연말의 분위기가 있고 즐겁기도 했다. 그래서 연말마다 정기공연처럼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참여하셨던 배우님도 다시 하고 싶은 공연이라고 하셔서 기뻤다.

SNS로그

01

지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는데, 어제는 무려 뒷풀이라는 곳을 갔다. 내가 일년에 뒷풀이는 한두 번 가는데(수업이 한 번이면 한 번, 두 번이면 두 번), 어제는 아니 갈 수 없었고 정말 즐거웠다. 자세한 것은 따로. 암튼 어마한 시간이었고 월요일부터 엄청나게 피곤함. ㅋㅋㅋ

02

목요일(08/15)에 오랜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친족 관계가 아닌 지인의 결혼식, 퀴어 결혼식은 두 번째인 듯. 이래저래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그 와중에 오랜 만에 만난 지인이 있는데,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인사하니 좋네요”

라고 인사를 해왔다. 그 순간 머리가 댕하니 울렸고 슬펐고 기뻤다. 오랜 만에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는 대체로 두 종류였다. 집회나 시위 장소거나, 장례식장이거나. 하나 더 하면 업무 차원이고. 그러니까 좋은 일보다 투쟁과 슬픔의 자리에서 인사를 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렇기에 좋은 자리에서 인사하니 좋네요라니, 그래 이런 자리도 많이 많이 필요하지. 축하하고 깔깔 웃고 반가워하며 웃음만 한 가득한 자리에서 안부를 나누는 경험, 이런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더 많은 자리가 필요하지… 새삼 결혼식이라는 장을 마련한 친구에게 고마웠다.

03

내년이면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를 만든지 12주년인데 뭐라도 해야 할까 싶다. 12주년 다음이면 60주년인데 60주년은 못 하지 않을까?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나 싶은데 귀찮아서… 어차피 1인 연구소인데 무슨 기념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네.

알러지 터진 이야기

나는 알러지가 심해서 예전에는 몇 번 응급실에도 다녀온 이력이 있고, 몇 년 전에는 알러지 검사를 했을 때 10개가 넘는 알러지 유발 항목이 나왔다며 이런 경우는 드물다는 결과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내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 나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기도 하고, 워낙 오래 알러지와 살아서 심각하지는 않는데… 알러지 자체는 대단히 위험한 병인데, 오래 함께 살다보니 초기 대응이 가능한 단계랄까…

이 알러지라는 것이 반드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날리는 먼지, 음식 조리 중 발생하는 연기 등) 랜덤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오랫 동안 복숭아를 잘 먹었는데 복숭아 알러지가 터진다거나, 키위 귀신이었는데 알러지가 터져서 퇴마되었다거나….. 내게는 고양이털 알러지가 가장 심해서, 사무실 동료가 깔끔하게 ‘털 알러지’가 있다고 정리해주기도 했다. ㅋㅋㅋ

그나마 털 없는 천도복숭아는 괜찮아서 한 번씩 먹었는데 얼마 전에는 천도복숭아를 먹고 알러지가 심하게 터져서 며칠 고생을 했다. 기본적으로 항히스타민 제제를 서너 종은 상비하고 있고 그 중에는 처방약도 있는데, 도합 다섯 종의 다른 항히스타민제를 먹었음에도 쉽게 낫지 않았다. 사실 이정도면 병원 가야 하는데 귀찮… 초기 진화를 해서 불편하지 심한 상태는 아니기도 했고. (물론 초기 진화를 함부로 했다가 더 위험할 수도 있는데, 30년 가까이 알러지와 살다보니 내게 잘 받는 종류를 알아서… 처방약도 있었고.)

또 며칠 전에는 병원에 갔다가 근처 식당엘 갔는데 무화과 샐러드가 나왔다. 무화과! 남부지역 시골에서 살았던 이들 중에는 비슷한 경험이 있을텐데 내게 무화과는 시골 뒷마당에 있는 무화과나무나, 동네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따서 먹는 과일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무화과를 봤을 때의 충격이란… 그래도 좋아서 무화과를 사먹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알러지가 터졌다. ㅋㅋㅋㅋㅋ 무화과 껍질도 먹는 거라고해서 먹었다가 무화과 껍질에도 털이 있어서….. 하지만 식당에서 내놓은 무화과는 깨끗하게 세척한 뒤 잘라둔 무화과였고 속만 먹으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속에 젓가락 대었다가 맛을 봤는데 전신이 찌릿! 알러지 경험이 오래된 이들은 알겠지만 알러지가 터질 거 같은 음식을 먹었을 때의 어떤 느낌이 있다. 알러지가 터지기 직전이나 터지기 시작한 순간의 느낌도 있고. 그런데 젓가락 끝으로 맛을 봤을 뿐인데 느껴지는 위험 신호.

그리하여 세상 좋은 과일은 바나나와 방울토마토와 사과 정도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