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기각 관련 메모

2011년 9월 2일 대법원은 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재항고를 기각하였습니다. 뉴스도 나왔으니 읽은 분도 있으려나요?

전 기사는 대충 읽고 대법원 결정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결론과 소수의 반대 이유를 읽으니 참 심란하네요.
기각한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ㄱ. 혼인 중에 있는 상황에서 성별정정을 하면 동성혼을 승인하는 격이니 허락할 수 없는데 현재 혼인 중에 있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
ㄴ. 자녀가 미성년일 경우 “성별정정을 허용하게 되면 가족관계증명서의 ‘부(父)’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여(女)’로, 또는 ‘모(母)’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남(男)’으로 표시됨으로써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될 수밖에 없고, 미성년자인 자녀는 취학 등을 위해 가족관계증명서가 요구될 때마다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된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ㄴ의 사유는 5명의 반대 의견에서 비판 받습니다.
a. 미성년 자녀의 인권은 성별정정을 허가하지 않을 때 더 침해받는다.
b. 자녀는 어버이의 바뀐 성별로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왔기에 혼란을 겪지 않으며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이익이 더 크다.
c.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된다는데 그렇지 않다. 父나 母를 기재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부 또는 모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일 뿐이고, 그들 사이에 혼인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대법관 양창수, 이인복의 반대의견)
읽다가 대법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의 반대 의견에 상당히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 여기 옮깁니다.
“다수의견의 견해는, 성별정정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받고자 하는 성전환자들에게,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인식에 비추어 관용하고 수용할 만한 경우에만 성별정정을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성적 소수자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포용하는 입장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성전환자로 하여금 법률적으로 성전환 전의 다른 성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종 결정 의견에 “다수 의견” 운운하는 입장을 비판하는 구절입니다. 판결문에서 이런 인식론을 접할 수 있다니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암튼 총 13명 중 반대의견은 5명 뿐이라 기각되었습니다. 5명과 8명 이름을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더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기약하고요.. (다음이란 없지요..;; 크크. 하지만 꼭 정리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니 조만간 쓰겠지요. 흐흐.) 이 결정문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운동은 죽었다 깨어나도 동성애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운동은 결코 따로 갈 수 없습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는 곧 이성애주의 이슈입니다.

[고양이] 길냥이, 추석 잘 보내.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었다. 나도 따라 냐옹하고 울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고 야옹하고 울었다.

난 벤치로 가서 앉았다.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벤치 위로 올라와 내게 부비부비했다. 아웅… 가방에 넣고 다닌 캔사료를 꺼냈다. 사료를 주니 배가 고팠는지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참 순했다. 캔사료를 먹기 좋게 내용물을 파줄 때마다 얌전하게 있었다. 몇 해 전 자주 만난 길냥이는 달랐다. 그 아이는 자기가 캔사료를 먹을 때 먹기 좋게 하려고 내가 손을 대면 가차 없이 싸닥션을 날렸다. 오늘 만난 고양이는 얼굴을 디밀었지만 얌전히 있었다. 캔에 든 내용물을 먹기 좋게 파주면 열심히 먹었다.
한 캔을 다 먹은 다음에도 배가 고팠는지 날 따라오며 야옹, 야옹 울었다. 하지만 내겐 그게 전부였다. 손을 흔들며 “안녕, 잘 지내”라고 말했다.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손을 핥으로 그루밍을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프겠지만 추석 잘 보내길…
모델료는 줬으니 초상권은 따지지 마렴… 😛
이미지를 좀 더 크게 보려면 http://goo.gl/l20Z2 로 가서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
+
사실 리카가 떠올라서 많이 짠했다..

공부, 히르쉬펠트, 글 실어줄 잡지사 구함;;

01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지도교수가 이번 학기 연구년이라며 방 열쇠를 주셨거든요. 으하하. 만날 사용하진 않겠지만 주말을 비롯하여 주중에도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무척 기뻐요.

선생님 고마워요!!
02
요즘 트랜스젠더 역사서를 읽고 있습니다. 개인 프로젝트에 쓸 중요한 참고문헌이기도 합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 있는데요…
히르쉬펠트Magnus HIrschfeld란 성과학자가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중반에 활동했지요. 전 트랜스젠더 운동과 동성애 운동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910년대 처음으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한 인물이거든요. 단순히 구분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질병이나 정신병, 도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느낌을 충분히 표현하는 실천으로 해석했습니다. 병리화를 비판하고 트랜스젠더와 함께 연구활동을 펼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동성애 인권 운동을 지지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고요. 이번에 책을 읽으며 새롭게 배운 사실. 히르쉬펠트는 1920년대 후반, 1930년대 초반엔 독일에서 매우 유명했다고 합니다. 한 mtf가 경찰에 잡혀 재판을 받은 적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남성이 여장을 했다는 것. 판사는 이 사람의 얘기를 듣고선 히르쉬펠트를 찾아갈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뭐, 대충 이 정도의 명성인 거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히르쉬펠트가 설립한 성과학 연구소에서 1932년 성전환수술을 시행하는데, 그 비용을 정부가 지급합니다. 히르쉬펠트의 오랜 노력으로,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수술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한 거죠. 물론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만… 아울러 1936년 그 자신 동성애자며 유대인인 히르쉬펠트는 숨을 거둡니다.
아마도 성전환수술비를 국가에서 지급한 최초는 1932년 독일이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현재 성전환에 드는 의료비용을 국가에서 지급합니다(개인은 무료란 거죠).
03
이태원-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정리한 원고를 수정하고 있습니다. 과정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번 주말 전에 완료할 예정입니다.
이제 원고를 실어줄 잡지사만 구하면 됩니다. 크크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960년에서 1989년 이태원 지역에서 살았던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분석한 글입니다. 한국사 맥락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추적한 거죠. 초고를 읽은 사람은 다들 호평했습니다! 신문, 단행본 등에 실린 흔적을 모았기에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국내 유일한 원고기도 하지요. 후후.
… 굽신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