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말..

어떤 종류의 이야기는 블로그에 공개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자 할 수 있는 내용이 없어졌다. 마치 그것이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처럼 나는 아무 글도 공개할 수 없었다. 블로깅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물론 나는 여전히 강의를 부르면 하고 있고(올해 두 건 남았다…) 글을 쓰고 있다. 11월 초에 원고 하나를 마감해서 넘겼으니 교정 작업을 진행하면 되고, 오는 일요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쓰고 싶은 글이 많다. 내년엔 많이 자제하겠지만 쟁여둔 글도 몇 있고 새로 쓰고 싶은 주제도 여럿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진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나는 블로깅을 전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공개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나는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까? 나는 무엇을 (공개 형태로)기록하고자 했을까?
말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궁금하다. 나는 이곳에 무엇을 공개 기록으로 남겨왔던 것일까.

LGBT에서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퀴어는…

미국 퀴어 역사 혹은 GLBT(책의 표현) 역사를 다룬 책을 한 권 빌렸다. 도서관에 주문했는데 금방 와서 빌릴 수 있었다. 책을 살펴보다 재밌는 부분을 확인했다. 색인(index)에서 트랜스젠더가 있었다. 바이섹슈얼/바이섹슈얼리티도 있었다. 그러나 게이와 레즈비언은 색인에 없었다. LGBT의 역사를 어떻게 사유하는가를 매우 잘 보여주는 익숙한 장면이다.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퀴어는 LGBT건 GLBT건 그 역사에 곁가지고 첨가할 내용이지 기존의 ‘퀴어=동성애’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할 인식론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동성애/자 역사가 있고 거기에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퀴어가 추가될 뿐이다.

언젠가 E는 LGBT가 레즈비언, 게이, 부치, 탑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상당히 동의한다. 혹은 레즈비언, 게이, 바텀, 탑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는 순간이다.

트랜스로 동성/애를 다시 생각하기

지금 트위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이섹슈얼과 무성애, 젠더퀴어를 향한 혐오, 삭제, 부인, 부정 암튼 그런 상황 관련 제보(는 아니지만 나 입장에선 결국 제보기도…)를 받고 있다. 용어가 등장한지 고작 150년 정도고 한국에서 정체성으로 등장한지 이제 20년 좀 넘은 동성애 범주로 그렇게 다른 범주를 부정하고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접하면서 드는 고민은… 트랜스(트랜스젠더퀴어&인터섹스) 맥락에서 동성애 혹은 동성이란 개념이 얼마나 우발적이고 우연적 사건인지, 때때로 그것이 불가능하며 동성을 고집하는 태도가 트랜스를 전혀 사유하지 않는 태도일 수 있음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싶다. 어디선가 짧게 쓴 기억이 있지만 이 지점만 특화해서. 물론 이것 역시 그저 무수히 많은 “쓰고 싶은 글” 목록 어딘가에 위치하겠지만.

암튼 분명한 것은, 어떤 범주가 정체성이다, 차별을 받고 있다 아니다란 논의에 덧붙여 트랜스 맥락에서 동성/애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추가하고 싶다. 그런데 이건 바이섹슈얼 맥락에서도 가능한 질문이다. 인식론적으로, 현실적으로 트랜스와 바이섹슈얼리티/양성애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