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2G 서비스를 종료한다는데…

KT에서 2G 서비스(010이 아닌 번호, 혹은 010 중 일부)를 6월까지만 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7월부터는 서비스를 중단한다네요. 2G 서비스 사용자에게 여러 방식으로 보상을 줘서 3G로 옮기도록 할 계획이랍니다. 아이폰3GS나 넥서스원을 3.5에 24개월 약정으로 기기값 없이 준다는 식이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자신의 번호를 자산으로 생각하는 분들, 정부 정책때문에 일방적으로 번호를 바꿔야 하는 것이 부당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며 절대 번호를 바꾸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런 의지로 번호를 바꾸지 않는 분만 있는 것은 아니죠. 여러 이유로 바꾸지 않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제가 이 이슈에 관심이 있는 것은 2G서비스 사용자이기 때문입니다. 기기는 5년도 더 지났고요. 지금 핸드폰으로 교환했을 때(‘공짜’폰으로 교환했으니까요) 5-6년은 사용하겠노라고 다짐했죠. 기기 자체를 오래 사용하는 편이기도 하고, 핸드폰에 돈을 들이기 싫거든요. 그러면서도 긴가민가 했는데, 정말 6년째 사용하고 있네요. 지금 핸드폰 상태를 감안하면 아직 1-2년은 더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계로 쓰고, 알람으로 쓰고, 일정 관리하고, 문자도 하고, 가끔 전화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배터리 용량도 충분해서 최소 1년은 아무런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듯하네요.
핸드폰 기기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지금 사용하는 번호를 좋아하냐고요? 그럴리가요! 핸드폰 번호에 애착 같은 거 없습니다. 사실 지금 번호를 사용한지 좀 오래되어 바꾸고 싶어요. 얼추 1년 전부터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싶었죠. 그저 귀찮아서 안 바꾸는 것일 뿐. 제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벌써 바꿨을 거예요. 흐흐. 바꾼다면 번호자동연결서비스(?, 바뀐 번호로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 같은 거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인간관계를 한 번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번호를 바꾸는 것인데 자동연결서비스라뇨! 후후후. (그렇잖아도 좁은 인간관계 더 좁아지겠네… 흐.)
그나저나 6월까지로 2G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이제 KT에서 전화가 많이 오겠지요. “고갱님, 6월에 2G 서비스를 종료하니 고갱님 번호를 … 기기보상은 … ” 근데 어떡하나요. 전 모르는 번호는 안 받아요. 결국 연락도 안 되겠네요. 근데 이런 저의 정황을 보면 저 같은 ‘진상’ 고객도 없겠다 싶어요. 번호에 애착이 있어서 바꾸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르는 번호는 안 받고, 번호 바꾸는 것이 귀찮아서 버팅기는 고객이라니요. 헌법소원이니 하면서 항의라도 하면 협상이라도 할 수 있죠. 협상을 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는 고객이니 회사 입장에선 가장 곤란하겠네요. 크. 그러나 그것은 회사의 입장일 뿐.
+
사실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은 바람이 없었던 건 아니죠. 예전에도 몇 번 스마트폰을 사고 싶다는 글을 적었고요. 근데 요금 문제가 가장 걸려요. 지금 핸드폰비가 월 평균 2만 원이 안 되거든요. 가끔 2만 원이 넘고요. 🙂 근데 스마트폰 요금은 이래저래 다 합하면 4-5만 원은 기본이더라고요. 요금 장벽만 없었어도 벌써 바꿨을지도 모릅니다. 흐흐.

수잔 B. 앤써니란 이름을 통해 여권신장운동을 다시 떠올리다

수잔 B. 앤써니(Susan B Anthony). 기억을 믿을 수 있다면, 미국 초기 여권신장운동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만화로 쓴 페미니즘 역사책에서 이 이름을 읽었다. 무슨 역할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책의 저자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기록했다. 물론 그 책을 읽은 이후, 기존의 미국 페미니즘 역사가 백인 중심의 역사란 사실을 배웠다. 앤써니보다는, 혹은 앤써니의 역할만큼이나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배웠다. 실제 트루스의 글, “나는 여성이 아닌가”는 매우 감동적이다. (무리하면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좀 재밌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지식, 모두 몇 년 전의 일이다. 여성학/페미니즘이 나의 주요 전공 중 하나지만 트랜스젠더 이론과 좀 더 밀접한 글이나 책을 주로 읽는다. 트랜스젠더나 퀴어와 관련이 적은 글은 덜 읽는 편이다. 그래서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미국 구금시설의 역사 관련 글을 읽는데, 수잔 B. 앤써니가 등장했다. (이 이름을 읽으며 놀란 점. 내가 아직도 이 이름을 기억하다니!! 후훗. ;;;) 다시 등장한 앤써니는 유쾌한 모습이 아니었다. 1900년대 초, 노동계층 십대여성의 행동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데 앞장섰다는 내용이었다. 여권신장운동 초기에(소위 제 1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백인)여권운동가의 행동은 대체로 앤써니와 비슷했다. 그것은 정화운동이라고 부를만한 태도였다. 백인 중산층의 규범을 기준으로 다른 인종과 계급을 판단하고 처단했다. 십대여성이 ‘정숙’하지 않거나 성관계를 맺는다면 구금시설에 가두고 행동을 교정했다. 바느질하는 방법, 요리 등 가사노동 혹은 소위 ‘여성의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노동계급/비백인 십대여성을 관리했다.
여권신장운동 초기, 백인 여권론자의 활약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분명 긍정적 역할도 했다. 하지만 그 역할의 일정 부분은 백인 중산층 계급의 이해에 맞아 떨어졌다. 흑인 여성 노예의 성적 ‘유혹’에서 백인 남성을 보호하기 위해 흑인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여권론자가 있었듯, 여권신장운동의 일정 부분은 특정 계급과 인종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제한적 운동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인종혐오, 계급혐오, 다른 말로 특정 인종과 계급의 이해에서 여권신장운동을 진행했으면서 그것을 유일한 여성운동으로 재현한 것이 문제다. 백인 중산층 여성이 아닌 여성운동가가 없었다는 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문제다. 페미니스트가 순도 100%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일 수 없다. 아니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표현 자체가 허황되다. 그러니 여권신장운동을 한 사람이라고 혐오발화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발화를 어떻게 기록하는가다.
아무려나… 이렇게 과거에 알았던 이름을 다시 만나면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확실히 즐겁다. 나의 배움이 매우 느려 몇 년에 한 번 업데이트된다고 해도, 예전 지식에 머물지 않았다고 자족할 수 있어 다행이고. ;;; 올해 안에 꼭 쓸 예정인데(공동으로) 구금시설의 역사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관리하고 통제한 역사다. 그래서 재밌다.

예매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용필콘서트

01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곧 시작이네요. 한땐 우피스 매니아를 구매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더 예매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요즘은 그냥 무덤덤해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뭐, 이런 상태;;
그래도 상영작 목록을 살폈고, 꼭 봐야하는 작품만 몇 편 골랐습니다. 예매는 세 타임, 끌리는 영화가 하나 더 있지만 귀찮기도 하고-_-;; 원고 마감 일정과 겹치기도 해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마 안 볼 거 같아요.
고른 작품은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 있습니다. 대충 쭈욱 훑고 고른 것이라 더 있다면 추천 부탁… 흐
영화제 기간 많은 사람과 만나지만, 의외로 사람과 만날 일이 없기도 하더라고요. 워낙 사람이 많아서요. 혹시나 영화제에 가신다면 우리 마주치지 말아요. 그렇잖아도 인사할 사람 많잖아요. 😛
02
무려무려무려… 조용필 콘서트 예매했습니다. :0
뮤즈가 오면 무조건 가는데 조용필은 그동안 한 번도 안 갔어요. 뭐랄까, 왠지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거니 하는 믿음이 있달까요. 그냥 나중에 가도 될 거라며 미루거나 무심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마치 조용필이 불로장생할 거란 믿음과 같은 걸까요?
오래 살진 않았지만, “다음”이란 없더라고요. “나중에”도 없고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이더라고요. 그동안 전 너무도 많은 “다음”을 기약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안타깝고 또 아쉬운 일도 많아요. ‘그때 그냥 그 말을 할 걸 그랬어’라며 잠을 설칠 때도 있고요.
삶의 태도를 바꾸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의 바람에 충실한 삶을 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물론 어떤 사람에겐 제가 이미 지금 이 순간의 바람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겠지만, 제겐 그렇지 않거든요.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며 살아가려는 연습. 물론 쉽지 않으리란 것을 압니다. 일 년이 지나도 여전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삶이 어느 한 순간 변하던가요? 아… 사실 한 순간에 변하는 것이 많긴 하지만;;;, 시간을 들여서라도 몸을 좀 바꾸려고요.
암튼 중요한 것은, 조용필 콘서트 간다는 것!
사족 하나 덧붙이면, 전 지금도(아무런 예습이 없어도) 조용필 1집부터 최신 앨범까지 전곡을 따라부를 자신이 있습니다. 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