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원고, 남성성과 젠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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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언제나 몰아서 온다. 4월 말까지 정신 없는 일정이다. 아아… 하지만 바쁜 이유의 팔 할은 글쓰는 일이라 좋기도 하다. 헤헷. 마감 없인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강제 마감이 좋다. ;;; 그나저나 나는 왜 어떤 형태의 글이건, 원고청탁 거절을 못 하는 것일까.

02
경향신문에 [남성성과 젠더]의 서평이 실렸다.
한윤정 “[책과 삶]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전위예술’” http://goo.gl/Fx3SF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보도자료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책을 다 읽고 썼다. 서평에서 놀라운 점은 주디스 버틀러를 언급한 부분이다.
[남성성과 젠더]의 인용문헌을 확인한 사람은 알겠지만, 누구도 주디스 버틀러를 인용하지 않았다. 그저 본문에서 한 번 정도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남성성과 젠더]에서 논하는 젠더 개념은 기본적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저자마다 버틀러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버틀러 이후의 젠더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버틀러 이후 버틀러 논의에서 자유로운 젠더/퀴어/트랜스젠더 이론을 찾기 어렵지만;; ) 기자는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기자가 어떤 분인지 궁금한 찰나. 흐흐. ;;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간지 서평이란 맥락을 고려한다면!
03
이 와중에도 리카는 옆에서 자고 있고, 바람은 나의 책상다리 위에 올라와 있다. 아흥.

[남성성과 젠더] 관련 잡담

의외로 많은 분들이 책 [남성성과 젠더]를 사줬다. 어제 KSCRC 후원 겸 북콘서트 자리에서. 물론 북콘서트에서 책을 사겠다고 준비하고 왔겠지만, 그래도 후원콘서트장인데 책이라니… 크크. 나의 예상과 달리 많은 분이 책을 샀다. 그 중 몇 분은 콘서트에 참가한 필자에게 싸인을 받기도 했다. 덩달아 나도 싸인을 몇 번 했다.(사실 책 판매 담당이 나라서… 쿨럭.. ;; )
책은 이미 지난 주에 다 읽었다.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이다. 내가 공동으로 참여한 책이라 리뷰를 쓰기 참 멋쩍달까. 내가 참여하지 않은 책이라면 부담없이 리뷰할텐데…
아무려나 한 번 쭉 읽은 느낌은 대체로 좋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쉬움의 팔 할은 내 글에서 비롯하고. 그럼에도 ‘좋다’는 느낌이 든 이유는 이 책이 네 가지 주제를 아우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즉, 젠더 이슈에 관한 책, 남성성에 관한 책, 퀴어이론에 관한 책, 트랜스젠더 이론에 관한 책으로 읽기에 좋다는 판단을 했다. 다른 말로, 젠더-남성성-퀴어-트랜스젠더 이론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중첩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혹은 트랜스젠더 이론을 다룬 책 혹은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는 한국 상황에서 이 책은 조금이나마 갈증을 달랠 수 있다. 젠더이론 혹은 페미니즘/여성학 입문서를 읽고 나서 다음 단계로 읽기에도 좋다. 번역서가 아닌 한국어로 쓴 책 중에서 퀴어이론서로 권할 만한 책이 매우 드문데, 권할 만한 책이 생겼다는 점에서도 좋다.
[남성성과 젠더]의 아쉬움이나 비판지점을 지적하려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조금 후한 점수를 주기로 했다. 어쨌거나 뭔가 하나 생겼다는 게 중요하니까.
… 책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팔고 있습니다… 크. ;;;
+
덧붙이면…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를 냈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땐 책을 낸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낸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지금이라고 책을 낸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아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모르겠다. 그럼에도 뭔가 다른 느낌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여름이나 가을 초에 또 다른 책이 한 권(역시나 공저) 나올 예정인데 그땐 또 어떤 느낌일까?

[고양이] 어떤 풍경

아기고양이 바람은 태어난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내겐 여전히 아기고양이다. 태어날 때부터 봤다는 건 이런 걸까? 10년이 흘러도 여전히 바람은 아기고양이일까? 바람을 부를 땐, 바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가야,라고 부른다. 이 말이 더 익숙하다.
리카가 내게 왔을 때, 리카는 몇 살이었을까? 얼굴 크기나 덩치를 바람과 비교하면 2살 정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리카가 그 동안 나이를 먹었고 출산도 했으니 바람과 직접 비교할 순 없겠지. 그래도 지금의 바람보단 덩치가 조금 더 컸던 거 같은데… 리카의 지금 나이가 두 살 정도인지 세 살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살면서 중요한 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지만, 내가 모르는 그 시간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두 고양이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리카는 끙끙, 잠꼬대를 하고, 바람은 조용하다. 내게도 이런 시간이 있을 줄 정말 몰랐는데… 가끔은 이런 시간이 꿈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