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닌 오늘

이미 오늘이다. 나중에 강릉에 가야 하는데 아직 원고를 쓰고 있다. 괜찮을까? 어제는 잠든지 2시간 만에 심란한 꿈으로 잠에서 깨어서는 더는 잠들지 못 했다. 그리고 오늘은 늦은(이른?) 시간까지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혹은 어제가 마감은 아니고 마감은 며칠 더 남았지만 더 이상 내게 남은 시간이 없으니 아침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하는데… 끄응… 강릉가는 버스에서 쿨쿨 자겠구나. ;ㅅ;

그런 것으로도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하기 전 레너드 울프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레너드가 버지니아에게 어떤 악덕을 행했는지와 별개로,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엔 레너드 울프를 향한 사랑의 진심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음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선택했다.

우울한 것도, 우울해서건 다른 이유에서건 자살하는 것도 무언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주변의 관심이 부족해서, 애정이 부족해서, 여유가 부족해서, 좋아하는 관심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있어도 우울증을 겪고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소중한 관계망에 있는 누군가를 부정하는 행위도, 배신하는 행위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것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음이란 게 있다. 그런 것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가 있다. ‘나’의 가치 판단에서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상태에 있을 때에도 극심한 우울에 빠지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150살까지는 살겠지만, 아니 그 전에 안락사를 선택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잘 살아내길 바랄 뿐이다.

불안

요즘 듣는 음악 목록을 확인하노라면 나는 10년도 더 전의 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곡이 몇 곡 추가되었지만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때 내 이름을 루인이라고 정한 계기가 된 그 앨범과 또 다른 앨범 몇 장을 지금도 유일한 위로처럼 듣고 있다.

그때, 10년도 더 전에, 나는 지금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도움 받을 곳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 나는 음악만 들으며 버텼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하면 방에서 음악만 들었다. 미국 바퀴, 날아다니는 바퀴가 들어오는 좁은 방에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건 하지 않았다. 출근은 어쨌거나 간신히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못이 헐렁해서 실패했다. 내가 자살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 부정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종종 고민하기를 그때 못이 빠진 게 이후의 내 삶에 좋았던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지금 상태가 그때와 그닥 다르지 않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때와 지금 나를 둘러싼 상황 자체는 많이 달라졌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몇 있으며 블로그도 생겼다. 아직 먹지는 않고 있지만 렉사프로도 있다. 그럼에도 나로선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괜찮을까… 어느 쪽이건 괜찮은 건지, 어느 쪽이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