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인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

다른 어떤 블로그를 하나 만들까 고민했다. 이곳에도 한번 적었고.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단 둘 다 놓칠 수도 있으니까. 아울러 요즘은 트위터를 조금씩 활용하면서 다른 공간을 바라는 욕심이 잠잠하기도 하다.

아옹 님 블로그에서 티스토리와 텍스트큐브닷컴 비교 글을 읽으며 구체적으로 서비스를 고민하기도 했다. 일단 이글루스는 제외했다. 주민등록번호 문제 땜에. 티스토리는 이미 사용 중에 있어 언제든 개설할 수 있다(티스토리 초대장 필요하신 분 비공개 댓글 달아주세요^^). 하지만 기업 같은 곳에서 문제제기하면 언제든 열람제한에 걸릴 수가 있다. 무려 글을 쓴 나 자신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논쟁적인 글을 쓰진 않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 그나마 텍스트큐브닷컴이 괜찮을 거 같았다. 하지만 번거롭게 이것저것 더 만들기가 싫었다. 관리하기 쉽게, 기존의 것에 하나 더 덧붙여 쓰기로 했다. 티스토리에서 텍스트큐브닷컴으로 이사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든 고민 하나. 다른 공간은 어떤 성격일까?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고전적인 의미에서 ‘나’라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나’에게 100가지 종류의 특성, 삶, 성격 등이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루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 법률상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을 빼고 났을 때 뭐가 남지? 아니, 법률상의 이름으로 불리는 삶은 어차피 무시해도 좋다. 이런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대부분이 혈연가족과 친적)과는 웹에서 관계를 맺지 않으니까. 그럼 루인을 빼고 나면?

나는 분명 루인으로 불리지 않는 어떤 삶, 그리고 별도의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을 어떤 삶이 있다고 믿었는데, 뭔가 막막했다. 내 삶은 루인이라는 이름을 매개하지 않고선 설명이 힘들 정도였다. 뭔가 있긴 한데, 그건 굳이 웹에서 공유하고 싶진 않은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에서만 유통할 부분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내 몸 안에서 휘발하고, 흡수되고, 어느날 갑자기 되살아나며 내 안에서만 유통되길 바라는 부분이었다. 사적인 영역이라거나 그래서는 아니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영역은 아니겠지만 꺼내고 싶지는 않은 영역일 뿐이다. 이렇게 하고 나니, 루인을 제외한 ‘나’는 누구인지 헷갈렸다. 어느 순간, ‘나’라는 어떤 사람은 루인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어떤 사람과 너무 붙어버렸다. 하지만 루인도 아니고 법적 이름의 누군가도 아니고 별도로 쟁여둔 누군가도 아닌 그 누군가. 루인이라는 삶과는 다른 어떤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까지고, ‘루인’은 어디까질까? 루인인 나와 루인이 아닌 나는 어떤 관계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아는 분에게서 매력적인 소식을 받았다(다른 식으로 썼다가 굳이 노출하지 않아도 될 듯한 부분이 드러나는 듯 하여, 문장을 수정했다). 누군가가 동거인을 구하고 있는데 의향이 없으냐고. 물론 표면적으론 주변에 동거를 구하는 사람이 없느냐였지만, 사실상 내게 제안한 거였다. 나는 덥석 물었다. 이런 건 눈치껏 물어야 한다. 마치 낚인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하다. 예전에 동거 혹은 작은 방 월세를 고민할 때 핵심은 이를 통해 공과금이라도 해결하려는 거였다. 근데 이번에 동거를 한다면 내가 생계부양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아하하. 그런데도 나는 심각하게 동거를 고려했다. 이것은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고, 현재는 의견 조율 중에 있다.

이 상황에서 문득, 그래 동거일기를 써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하하. 그래, 이거야, 이거.

어쨌거나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다른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의 일상. 그것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자, 기분이 좀 좋았다. 하하. 그러며 블로그를 개설하고, 스킨을 디자인하고…

물론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좋다. 그저 뭔가 다른 이야기, 다른 ‘나’를 풀어 놓을 공간이 생겼고, 가능성이 생겼다는 사실이 즐거울 뿐이다.

익히 얘기했듯, 새 주소를 여기에 공개할 의향은 없다. 하지만 너무 쉬운 주소라 알고 나면 허망할 듯. (아무리 그래도 설마 fndlsdksla이거나 iamnotruin은 아니겠지? 흐흐) 소개해준 ㅎㅈ 님을 비롯해서 몇몇 분에겐 알려드릴 예정이지만,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려드리고 싶은 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곳 외에 다른 곳도 알고 싶어하는지 확실하지 않아 먼저 알리진 않을 예정이다. 눈팅만 하던 어떤 블로거에게도 알려주고 싶지만 그 분이 여기에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으니 생략. 하하. 디자인만 있고, 글은 없으며 진행 상황에 따라 조용히 묻힐 수도 있으니 천천히 알려드릴까 한다.

아무려나 그곳은 루인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일 거 같다. 행여 루인이라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언뜻 드러난다고 해도, 그저 우연히 비슷한 모습일 뿐입니다. 🙂

+ ㅎㅈ 님은 이와 관련해서 댓글을 다시려면 절대로 비공개로 달아주세요!!! 흐흐.

++ 여기서 대반전.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안 만들었는데, 만든 척해서 관심을 구걸하는 걸지도? 푸하핫. 데굴데굴. ;;;

트랜스젠더 관련 소식 및 단상

트위터를 메모장 겸, 관계 맺기 겸 등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메모가 쌓이면 블로깅을 하고요.. 하하.

01
지난 16일엔 이탈리아에 트랜스젠더 전용 감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http://bit.ly/93u8sr 살짝 심란하더군요. 요즘 관심이 구금시설이라 묘하게 반갑기는 한데요. 이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분리주의 같거든요. 트랜스젠더를 별도의 시설에 구금시켜, 기존의 이분법을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욕망. 물론 현재 상황에선 별도의 구금시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적인지엔 회의합니다. 분리된 공간은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니까요. 물론 살짝 부럽기도 하죠. 하하.

02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하리수 씨가 사진전을 연다고 합니다. 근데 누군가가, 하리수 씨가 언론사에 보낸 사진이 외설적이라고 고소했다네요.. 아악. 하리수 씨에게 고소할 내용인지, 언론사에 고소할 내용인지 매우 모호한데요. 저는 이 고소가 사진이 외설적인게 문제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사진이기 때문에 외설적이라며 고소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외설적이라면, 그리고 외설적인게 안 좋은 거라면, 하리수 씨 사진전 홍보 사진보다 더 외설적인 연예인 사진이 널렸거든요. 하리수 씨 입양을 거부했던 기관처럼, 이번 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03
외국의 DandyID란 사이트가 성별 표시 부분을 male, female, transgender로 구분했다는 소식입니다. http://bit.ly/c5rfDA 아악. 이탈리아 감옥 소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메가박스 사이트에 가입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민번호와 별개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더라고요. 물론 메가박스의 성별은 여성, 남성 뿐이었습니다. 메가박스의 성별 표기 부분과 DandyID의 성별 표기 부분이 얼마나 다를까요? 물론 트랜스젠더를 따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한 점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둘에서 차이를 못 느낍니다. 굳이 성별 표시를 해야 했을까요? 만약 이용자 통계를 위해 성별이 필요했다면, 고르지 않고 빈칸으로 남겨둘 수 있는 선택권도 줬으면 합니다.

04
연합뉴스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특집 기사를 세 편 실었습니다. http://bit.ly/9r8VPA http://bit.ly/a9sTK2 http://bit.ly/ctLD4T 근데 이 기사 세 편 모두 완전 코메디. ㅡ_ㅡ;; 내용은 나름 열씸히 썼습니다. 근데 저는 이 기사의 다른 면을 알고 있거든요. 구글버즈로는 몇몇 사람들과 관련 얘기를 이미 했는데요.

기사를 쓰기 전에 연합뉴스 기자 한 명이 ㅎ님과 만나는 자릴 가졌습니다. 기자 왈, 자신은 트랜스젠더 이슈를 전혀 모르니 배우기 위해 왔다고 했고요. 어떻게 아느냐면 저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ㅎ 님이 주로 얘기했고, 저는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그리고 공개된 트랜스젠더 관련 자료를 몇 가지 줬습니다. 그런데 그 자료에 문제가 있었는지, 설 명절 기간 부산에 있는데도 연락을 해서 자료를 보내주곤 했죠. 저는 그 기자, 정말 고생한다고 느꼈습니다. 기자에겐 명절도 없구나… 라면서요. 근데, ㅎ 님과 저를 만난 기자와 기사를 쓴 기자가 다르네요? 응? 이건 뭘까요?

더 재밌는 코미디도 있습니다. 기사 내용 중에

‘한국에 성전환자가 몇 명인가’란 단순한 질문에 정부 관계자조차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란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는 실정이다. http://bit.ly/9r8VPA


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라는 대답은 (제가 아는 한)정부 관계자가 한 거 아닙니다. ㅎ 님이 한 거죠. 그 맥락은 어떤 거냐고요? 보통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관련 특강을 가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에 트랜스젠더(혹은 동성애자)가 몇 명이나 되나요?” 입니다. 이럴 때 대답은 “저도 몰라요. 들이대는 잣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다를 거고요.” 정도? 한국에서 이성애자, 비트랜스젠더가 몇 명인지 아무도 모르듯,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가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이성애자, 트랜스젠더는 매우매우 적을 거라고 가정하죠. 이러한 편견에 대한 가장 세련되고, 적확한 대답은 ㅎ 님의 “생각보다는 많을 것”입니다. 저, 옆에서 듣고는 완전 감동했다는. 흐흐. 그런데 이 대답이 엉뚱하게도 정부관계자의 어이없는 답변으로 돌변했네요. 읽고 완전 짜증났죠. 결국 편집술이 빚은 폐해인가요?

+
별거 아니지만… notice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금요…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