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로비, 영화 ‘에디 앨리스: 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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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를 봤다. 나는 공연을 볼 때 미리 소개글을 자세히 읽고 가기보다 대충의 키워드 정도만 살피고 공연장에서 작품의 내용을 알아가는 편이다. 스포일러를 싫어하기에는, 이미 종영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경우에는 미리 결과를 찾아 읽어가면서 볼 때가 많다(갈등이 고조되면 재빨리 스포를 찾는다 ㅋ). 그런데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때는 상세한 내용을 읽어두고 관람하기보다 그냥 몇 가지 키워드만 알고 가는데 이번에는 노동과 연대, 청소노동자 같은 것이었다. 기대하며 봤는데, 중간에 덜컥거리며 눈물이 났고 여러 장면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미리 스포할 필요는 없으니 쓰지 않지만, 산재 혹은 노동하다 죽는 삶, 정규직 전환을 말하며 인턴만 시키는 기업, 노동자를 손실로만 이해하는 회사 혹은 사회, 고인을 애도한다며 모욕하는 태도, 매우 쉽게 청소노동자를 자르고 무시하는 회사와 일부 노동자, 그리고 퀴어 파트너 관계, 나보다 먼저 떠난 파트너 혹은 소중한 사람과 나 혼자 계속 대화하며 애도하는 일상…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 연극은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해주고, 또 애도하는 이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기 위한 다양한 모색을 한다. 이 연극은 시위하고 투쟁하는 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대한 윤리적 혹은 유쾌한 대답을 준다. 그래서 퀴어와 애도와 노동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이 연극을 보기를 추천한다. 한 번 더 볼 예정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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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의 폐막작 <에디 앨리스: 리버스>를 봤다. 나중에 들으니, 리버스를 더 많이 개봉하고 테이크 판본도 따로 상영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4년을 작업한 작품인데 다큐라고 할 수도 있고 드라마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감독 혹은 기획팀의 연출 의도를 전면에, 매우 두드러진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많은 의도와 상징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일단 앨리스가 목욕탕에 갔을 때의 표정을 잊을 수 없는데 그 장면에서 많이 울었고 그 장면만으로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다큐를 다 보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는 점에서 진짜 좋은 작품이라고 고민한다. 필름과 삶을 엮은 장면은 나중에 감독에게 부탁해서 이 작품을 분석하는 논문을 쓰고 싶어진다(게으름만 극복하면 된다!). 여러 장면에서 감독의 의도 혹은 조작적 재편집/연출이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이것은 내가 영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몰라서 하는 소리다). 에디의 삶과 앨리스의 삶의 다른 양태가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장소에서 만난다는 점, 의도적으로 몇몇 장소를 겹치는 연출, 앨리스가 ‘제4의 벽'(?)을 깨고 나오는 장면 등은 이 영화를 매개로 하고 싶어지는 이야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달리말해 다큐멘터리에서 익숙하게 전개되는 문법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거스러고 있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의 삶과 욕망,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모색을 담아내고 있다. 진짜 논문 써야지… 내가 게을러서 방치한 논문만 30편…이지만 이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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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Nastasia의 신보가 나왔다. 그런데 밴드캠프에서만 배포-판매하고 있다. 다행이라면 밴드캠프를 사용하고 있어서 신보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번 앨범도 좋다. 얼마 전에 Jolie Laide의 신보도 나왔다. 오래 활동을 중단하고 지내더니 다시 활동이 활발하니 좋다.

논문, 한의원

문득 블로깅을 안 한지 오래되었음을 깨달아 뭐라도 남겨보는 잡담

ㄱ. 학위논문 심사를 두 건 했다. 다들 고군분투하는 게, 내 모습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논평을 내가 논문 쓸 때 알았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 시기에는 알면서도 적용이 안 되었다. 정보값으로는 아는데 체화된 지식은 아니었다는 것이리라.

ㄴ. 학술지 투고 논문 두 편을 쓰고 있다. 작년부터 쓰던 논문이 있는데 일하며 쓰다보니 지지부진했는데, 올해는 좀 붙잡고 쓰고 있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 A4 40쪽에 달하자… 잠시 중단했다(보통은 20장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예전에 얼추 써두고 방치한 논문 중 하나를 꺼내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기 위해 읽었을 때는 기깔나게 잘 쓴 느낌이었는데, 수정하려고 하니 엉망진창이다. ㅋㅋㅋㅋㅋ ㅠㅠㅠ 문장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 부실한 기분이다. 학부 시절 교양필수로 들은 철학 수업에서 강사가 말해준 이야기가 있다. 철학과 교수 중에 평생 논문을 안 쓴 분이 있었는데 완벽주의자라서 완성을 못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 논문을 드디어 완성했고,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논문 구경하려고 달려갔더니… 옥상에서 해당 원고를 불에 태우고 있더라고… 여전히 부족하다고… 불현듯 그런 기분을 알 거 같이, 다 뜯어고치고 싶은 기분과 싸우고 있다. 뭐라도 성과를 좀 내야지. 근래 학술적 성과가 없음을 깨닫고 인생을 반성하고 있다.

ㄷ. 나의 주변 사람들은 아는데, 신촌에 열렬하게 신봉하는 한의원이 있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면(심각한 상태면 입원해야…), 어지간한 극육통 등은 침으로 조지는 곳이다. 지난주부터 목이 많이 아파, 자고 일어나면 목을 움직이기 힘든 정도로 아픈 상태였다. 신촌에 갈까 했지만 귀찮아서 동네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곳도 나름 침을 좀 놓는 곳이지만 만족스럽지 못 했다. 그리고 어제 신촌에 갈 일이 있어 그 한의원에 다녀왔다. 침을 많이 아프게 놓는 편이고, 환자가 비명을 지르면 한의사가 만족스러워하는데, 다음날 되면 효과는 확실하다. 오래오래 운영해주세요.

미수습, 삼색도, 기울인 몸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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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추모 연극인 <미수습>을 봤었다. 무료 공연이라 한 번만 봤는데, 몇 번은 더 예매할 걸…이라는 후회가 있었다. 여당극 공연은 언제나 예기치 않는 놀라움과 충격을 주는데 이번 공연도 그랬다. 모든 배우는 초반을 제외하면 객석에서 함께 했고, 무대는 (수어통역사를 제외하면) 한국어와 베트남어 자막과 빛과 추모로 채웠다. ‘명’이 ‘구’로 바뀌는 시간, 실종자가 미수습자로 바뀌는 순간을 질문하면서 참사의 유족, 그리고 언제나 기억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답이었고, 남겨진 이를 남겨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어떤 식으로 재현할 것인가에 있어, 배우가 대리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무대를 자막과 빛의 변화로 남겨두는 방식이 저 무대 어딘가에서 떠오를 것만 같아, 미수습을 더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듯하여 슬프고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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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삼색도>를 봤었다. 이메일로 알려주셔서 냉큼 예매했고, 일부러 정보를 찾지 않고 봤는데… 재밌었다. 둘째 줄에서 봤는데 배우들의 연기가 깊었고 노래도 좋았다. 연극이나 공연에서 배우가 무대 장치에 없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몸짓과 표정을 지을 때, 마치 내가 그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연을 좋아하는데 이 공연이 그랬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이 무대 장치의 의미를 바꿔내는 순간순간이 좋았다. 하지만 관객이 너무 적어서 안타까웠다. 재미있는데 왜… ㅠㅠㅠ 한 번은 더 보고 싶은데 시간 조율이 쉽지 않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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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울인 몸들> 전시를 봤다. 모르고 있었는데, <론 뮤익> 전시를 보러 간 날, 우연히 구자혜 연출님을 만나서, 알게 된 전시였다(압도적 감사!). 김영옥 선생님 강연(혹은 공연)을 신청해서 함께 관람했는데, 매우 좋았다. 아픈 몸, 느린 몸, 나이든 몸, 장애가 있는 몸, 이주해서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몸 등 비규범적이라고 분류되는 몸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그리고 다 둘러보고 나면, 장애인 관련 시설을 어떻게 지역의 커뮤니티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게 되더라. 시설과 탈시설이라는 질문 구조가 아니라, 시설을 커뮤니티로 재구성하고, 모든 지역을 또한 다양한 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설로 다시 상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남겨서, 좋았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관람하시기를. 겸사겸사 론 뮤익 전시도 함께 관람한다면 이래저래 주제와 고민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어 좋기도 하다.

김영옥 선생님 강의는 매우 좋았다. 나는 종종 김영옥 선생님이나 김현미 선생님 강의를 한 학기 길이로 다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두 분에게 배운 것이 많아 시간이 맞으면 특강 같은 것을 들으러 가곤 하는데 이번에 시간이 맞아서 전시도 볼겸 겸사겸사 갔다. 강연(혹은 공연, 왜냐면 로비에서 강의를 해서) 노년되기라는 주제를 생태계로 연결해서 다시 사유하는 과정을 들었고, 여러 가지로 배움이 많았다. 강의 내내 메모를 많이 남겼는데 여기에 적어도 될지는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