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병

어제 밤, 잠들기 전 갑자기 눈이 좀 아팠다. 잠 못 들 수준이 아니었기에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도 약간의 통증은 있었는데 전에 다래끼를 겪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출근해서 인근 병원에 가볼까 했지만 뭘 또 이 정도로 병원엘 가나 싶어서 말았다. 하지만 눈은 부어올랐고 통증은 계속 있었다. 뭐 그러려니. 그러다 출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떤 이유로 병원 밀집 구역으로 갔다. (내가 사는 동네엔 병원과 약국이 밀집한 구역이 따로 있다. 물론 다른 상점 등도 밀집해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심시티 같다.) 이왕 이곳에 왔으니 안과에 가볼까 하며 병원엘 갔다. 사람이 많아서 관둘까 하다 그냥 소염제나 받아야지 싶어 기다렸다. 그리고 진료를 받았는데… 이미 곪았다고 했다. 지금 바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나중에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헙… 물론 ‘방치하면 수술’이란 표현이야 의사라면 통상 사용할 법한 말이니까 그리 놀랍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수술비를 절약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하. 나중에 수술비는 없는데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별 고민 없이 병원 갔다가 1만원에 수술을 예방할 수 있다면 재수 좋은 거지. 암튼 고름을 짜는 등 약간의 조치를 취하고 약국에서 안약과 안연고를 사서 왔다.

병원에서 기다리며 대충 시력을 쟀는데 오른쪽과 왼쪽 시력이 달랐다. 마지막으로 안경점에 간 게 얼추 10년 전이라 잊고 있었다. 대충 쟀을 땐 왼쪽 시력이 더 좋았는데 고름은 왼쪽에 생겼다. 읽고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력자인 내게 시력 상실이나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무엇을 뜻할까? 수전 웬델은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 수록 장애인이 되고 그렇기에 장애를 일상의 중요한 몸 정치로, 특정 집단의 의제가 아니라 사회의 기본 인식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 역시 아직 젊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예전 같지 않은 점을 느끼곤 한다. (밤을 완전히 새지 않고 평소보다 잠을 몇 시간만 줄여도 그 타격이 일주일 이상 간다. 2주 전 강의를 위해 이틀 간 잠을 7시간 정도만 잤는데 그 여파로 지금도 헤롱헤롱하고 있다.) 그렇기에 몸에 어떤 아픈 증상이 생기면 예전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면도 있다. 후딱 치료해서 건강해지길 바라기보다는 몸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좀 예민하게 살피고 싶어서고, 나중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살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돈이 없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적은 비용으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내가 한국이란 지역에서 습득한 몸과 인식을 끊임없이 낯설게 하고 싶고 그래서 그 여행비를 계속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10년 뒤에 10억이나 100억을 벌 수 있을 가능성, 혹은 월급이 지금 기준으로 500만원 정도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늘 돈이 없어 허덕이고 징징거리고 빌빌거리지만 그럼에도 큰 돈을 벌기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기획이 지금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덕질도 좀 여유 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물론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고, 나 역시 내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어느날 돌연 대기업에 입사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나는 늘 이런 식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는 있다(나는 열어 뒀다. 호호호). 어쨌거나 나는 지금 현재의 내 상황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가 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소액일 때 적당히 몸을 관리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빚을 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욕망이 장애혐오인지 아닌지, 혹은 장애와 관련한 어떤 부정적 인식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고, 계속 헷갈린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비장애인은 아니구나 정도의 고민을 하고 있지만, 만성질환 몇 가지는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뭐가 뭔지 헷갈리고 어렵다. 아무려나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도서관에 트랜스와 퀴어 관련 책 주문하기

학교 도서관에 오늘도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얼추 200권의 퀴어 관련 책을 주문했다. 트랜스 이슈로 공부하겠다고 입학하여 지금까지 200권 가량의 트랜스와 퀴어 이슈의 책을 주문했다면, 먼저 입학한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어느 정도 한 거겠지. 물론 졸업할 때까지 더 많이 주문하겠지만.

지금 다니는 학교는 퀴어 논의가 나름 활발한(상대적 의미다.. 현실은 많이 부족하다…) 곳인데도, 입학할 당시 도서관엔 퀴어 관련 서적이 예상 외로 많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면 퀴어 관련 논의가 거의 없었던 그 전 학교보다도 적은 느낌이었다(물론 그 전 학교에서도 열심히 주문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열심히 주문했다. 물론 내게 필요한 책이라 주문했지만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이 도서관에는 없어 주문할 때도 있었다. 사실 굳이 책을 구하겠다면 아마존이나 교보 등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도서관을 통해 구입한 건 이를 통해 사서가 구입하지 않을 퀴어 서적을 도서관에 강제로 구비시키는 효과도 있고, 나중에 입학할 퀴어 연구자가 도서관에서 수월하게 퀴어 관련 도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퀴어 학제는 없지만 도서관에 퀴어 관련 서적이 어느 정도 있다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자료가 없거나 자료가 도착하길 기다리느라 연구가 지연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현실적으로 느낀 어려움이었고 그 어려움을 줄여나가고 싶었다.
물론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10명의 퀴어 이슈로 공부하는 사람이 100권씩만 도서관을 통해 주문해도 1000권의 퀴어 관련 서적이 구비된다. 더 많은 사람이 주문하면 더 많은 퀴어 관련 서적이 도서관에 구비된다. 그리고 나중에 등장할 퀴어 연구자는 조금은 더 수월하게 퀴어 이론에 접근할 수 있겠지. 물론 그땐 그때의 새로운 논의가 등장하기에 여전히 주문해야겠지만 그 전에 발간된 책이 없어 곤란한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나의 욕심 중 하나는 퀴어락에 퀴어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아카이브와 도서관은 명백하게 다른데, 퀴어락 부설로 퀴어도서관을 만들고 전세계에서 발간된 퀴어 관련 서적을 가급적 모두, 최소 3권씩 구비하여 연구를 수월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은 꿈이지만, 언젠가 이룰 수 있기를…
하지만 퀴어도서관이 생기는 것만큼이나 전국의 많은 도서관에 퀴어 관련 도서가 많이 구비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