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요즘은 완전 동면기다. 잠이 부쩍 늘었다. 환절기여서만은 아니다. 해마다 이 시기면 그랬듯, 단순히 그렇게 잠이 는 것만도
아니다. 종일 멍한 상태로 지낸다. 그리고 수시로 잠든다. 잠을 자도 계속해서 밀려 오는 잠. 마치 이제까지 못 잔 잠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졸립고 또 잠든다. 단 한 순간도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일도 드물다. 계속해서 잠, 잠, 또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상태. 올해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 기억을 구성하기

[브로큰 임브레이스] 2009.12.27.일. 14:40. 아트하우스 모모 B4층 1관 F-15.

확인하니 개봉한지 꽤나 된 영화네요. ;; 전 최근 개봉한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래서 일요일에 무리해서 영화관에 두 번 갔습니다. 물론 덕분에 선착순으로 준다는 단행본도 한 권 얻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는 종류의 책은 아니라서 난감;;; 암튼 줄거리를 모르고, 정보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극장에 갔습니다. 최근 개봉작인데 단 한번 상영하는 줄 알았거든요. ㅡ_ㅡ;;

영화는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감독이었던 주인공은 과거 다른 사람의 편집으로 자신의 영화가 엉망이 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새롭게 편집하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 영화를 촬영하고 영화 편집이 망쳐지는 과정을 회고합니다. 이 과정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사건,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그리하여 과거 영화를 다시 재편집하는 과정은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편집해서 다른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기도 하지만, 기억이 (재)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엔 게이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게이 캐릭터야 새로울 것 없죠. 솔직히 여타의 영화에서 모두가 이성애자 비트랜스젠더로만 나오는 게 더 이상하지만요. 아무려나 이 영화엔 게이 캐릭터가 여럿등장하는데요. 게이의 등장보다 게이 캐릭터의 등장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흥미로웠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관객의 두드러진 반응이 흥미로운 거죠. 아무리 퀴어영화 혹은 게이캐릭터가 유행이라고 해도, 극장에서 두드러진 반응은 야유와 거부였습니다. 제 옆자리에 앉은 이의 거부반응은 너무 노골적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엔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암튼 극장에서 나오니,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리던 눈은 거리에 쌓여있고 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거리를 캣 파워(Cat Power)의 “Maybe Not”을 들으며 걸었습니다. 마침 영화에도 캣 파워의 “Werewolf”가 나와 반가웠거든요. 그리고 “Maybe Not”은 눈 오는 날 듣기에 가장 좋은 음악 중 하나죠. 눈이 내리는 풍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로 꼽는 곡 중 하나니까요. 그러고 보면 최근 눈이 내리는 날엔 항상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일이죠.

[영화] 셜록 홈즈

[셜록 홈즈] 2009.12.27.일. 10:20. 아트레온 5관 7층 E-5.

영화가 끝나고, 출구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길 들었다. 워낙 목소리가 커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ㅡ_ㅡ;; 내용인 즉, 사람들이 깔깔 웃는데, 도대체 왜 웃는지 모르겠다, 유머코드가 다른 건가 싶다는 말. 두 분에겐 죄송. 하지만 깔깔 웃었던 인물 중 한 명이 나였다. 제목만으론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바탕으로 한 추리영화(서스펜스 스릴러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화?)일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건과 추리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낄낄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코믹물이었다.

원래 이 영화엔 관심이 없었다. 추리소설로서 셜록 홈즈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어서. 어릴 때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몇 권 읽으면서,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기에 지금도 읽지 않고 있다. 그 시절 나는 루팡 시리즈를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하하. 이 영화에 관심이 생긴 건, 토요일에 지구인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다. 이글루스 이오공감에 오른 어느 글이 한바탕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 얘기를 해주셨다. 영화 [셜록 홈즈]를 “호모영화”로 표현하면서 발생한 논란이었다. 호모란 용어가 문제를 일으켰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퀴어 영화로, 게이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는 영화라니, 어찌 안 볼 수 있겠는가!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추리영화가 아니다. 일본에선 추리, 환상, 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소설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영화는 딱 엔터테인먼트 영화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조조에 통신사 할인 가격이면 돈이 아깝지도 않은 영화. 추리가 등장하지만 굳이 추리 어쩌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즐길 수 있는 영화.

사실 추리영화로 부르길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주인공만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추리가 과연 추리일까, 싶어서다.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는 건 결국 작가와 주인공 뿐이다. 비록 독자와 관객이 대충 예측은 할 수 있다고 해도, 정보의 불균형은 상당하다. 뭔가 암시를 주긴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영화에서 등장하는 쥐꼬리가 무슨 의미인지, 뼈 조각이 무엇인지 사건의 전말을 주인공이 설명하기 전까진 결코 알려주지 않는데, 이게 무슨 추리람. 주인공은 추리를 하겠지만, 독자가 할 수 있는 추리의 정보는 매우 적으니 추리를 하는데 무리가 있다. 그러니 이제 독자와 관객이 할 일은 얼마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가가 관건.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재밌다. 굳이 추리를 할 필요도 없다. 추리는 주인공이 할 테니까. 나는 그것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엔터테인먼트란 장르 명칭답게 충분히 즐길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그만.

이 영화를 읽는 내내 깔깔 웃었는데, 그건 홈즈와 왓슨의 관계 때문이다. 왓슨 없으면 사실상 아무 것도 못 하는 홈즈와 홈즈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결코 떠나지 않는 왓슨의 관계는 확실히 현대적 범주용어로 동성애 관계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1900년 전후로 등장한 소설에서 남성들 간의 관계는 대체로 이러했다. 우정과 애정 사이에서 매우 미묘했다. 그러니 이들 관계를 꼭 게이관계로 단정할 필요도 없다. (물론 영화가 2009년도에 나왔다는 점에서 1900년 전후의 소설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재밌다. 일테면 왓슨이 병원에서 퇴원하고 홈즈와 다시 만났을 때, 홈즈는 왓슨에게 다시 만나서 기쁘다는 말을 한다. 이 말, 뉘앙스가 매우 미묘하다. 설레는 고백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멋진 부분은 따로 있다.

왓슨은 홈즈와 동행하다 결국 일시 감금된다. 구금시설에서 왓슨은 홈즈에게, 밤새 지난 7개월 간의 일을 메모한 일기를 다시 읽고는 자신이 미쳤다(확실한 건 아닌데, disturb인가 disorder인가 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확실한 건 아니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이 매우 의미심장했다.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동성애 관계는 일종의 정신병, 질병이었다. homosexuality란 용어는 정신병 진단범주로 등장했다. 물론 다른 많은 것들도 정신병이었다. 합리적 이성이라고 불리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행동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정신병이었다. 의사와 탐정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 과학적 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시기에 스스로를 정신병으로 부르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합리적 이성이라는 말 자체가 ‘정신병’과 같은 집착, 광기의 산물이란 의미일 수도 있고(‘이성적이여야 한다’는 집착), 비록 ‘합리적 이성’을 상징하는 둘이라고 해도 둘은 정신병으로 불리는 관계란 의미일 수도 있다. 뭐, 다른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정신병이란 표현은 홈즈에게 집착하거나 홈즈에게서 벗어나지 못 하는 왓슨 자신의 행동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둘의 관계와 둘 모두를 설명하는 단서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 뻔한 안전장치를 사용한다. 왓슨에겐 메리, 홈즈에겐 아이린이 있다. 메리와 아이린은 왓슨과 홈즈가 이성애자라고 안심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둘의 관계가 더 의심스럽다. 뻔한 안전장치가 관계를 더 미묘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성애 규범에 따라 이성애자란 가면을 써야 하는 게이관계거나, 바이거나. 뭐, 대충 그렇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홈즈. 홈즈가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홈즈가 할 줄 아는 건, 이성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추리 밖에 없어서다. 심지어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사람과의 시합에서도 이성적인 계산과 판단으로 승리한다. 정신은 육체를 이긴다? 하지만 홈즈는 왓슨과 같은 파트너, 자신의 일상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으면 거의 아무 것도 못한다. 방 구석에 콕 박혀, 방에서 총이나 쏘고 파리를 잡아 황당한(그래서 은근히 매력적인!! 흐흐) 실험이나 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걸 정당하게 말하고, 마치 대단한 것처럼 얘기한다. 이것은 합리적 이성이란 방패막을 사용하는 근대 남성성의 전형 아니던가? 홈즈의 모습은 근대적 남성성의 이상과 실상을 매우 잘 요약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아이린! 극중 인물 중에서 가장 멋있다. +_+

속상했던 관계는 메리와 왓슨. 왓슨은 홈즈와 메리 사이에서 계속 갈등한다. 영화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메리는 속이 까맣게 탔겠지? 그런데도 끝까지 밝은 모습을 연기하는 메리의 태도는 당대 여성성 규범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왓슨은, 비록 홈즈와의 관계에선 홈즈를 보살피는 역할을 하지만 메리와의 관계에선 메리의 보살핌 혹은 이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홈즈와 별로 다르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왓슨이야 말로 ‘점잖은 가부장’의 전형 아니던가?

암튼, 암튼. 영화는 부담없이 꽤나 재밌었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2편도 나오겠지? 노골적으로 암시했으니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