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제 학교고양이인 얼룩이에게 음식을 주고 있는데, 누군가가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 대충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그 인사는 관용어구이니 신경 쓸 말은 아니다. 일테면 “식사하셨어요?”와 같은 정도의 인사니까.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초보자인 내게 이런 사소한 인사도 신경 쓰인다. 나는 이게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얼룩이는 이미 사람들의 손을 너무 많이 타서 사람이 음식을 챙겨주지 않으면 굶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얼마나 그렇게 살아온 걸까? 나 역시 얼룩이의 이런 삶에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죄책감이 든다. 어쩌면 얼룩이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닐는지 ….
02
어제 밤에도 내가 사는 집 길냥이들에게 음식을 줬는데.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오는 냐옹이와 그외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셋. 그들이 음식에 달려드는데 …. 잠시 딴 곳에 신경을 썼다가 음식을 두는 곳을 봤더니 없었다! 비닐에 담아 줬는데, 비닐이 없어졌다. 나는 순간, 순식간에 어느 고양이가 음식을 담은 비닐을 물고 도망갔다고 착각했다. 아기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아예 비닐봉지를 가져간다는 식으로. 처음 모인 넷은 그대로였으니, 순식간에 나타나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으로 상상했다. 실제 고양이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사료를 먹고 있었다. 나는 구시렁거리며 다시 음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엔 비닐을 제외하고 길바닥에 음식을 놓았다. 사실 이건 정말 싫은 일이다. 한 생명에게 음식을 주면서, 길바닥에 놓아주는 건 무례한 일이다. 그럼에도 음식을 바닥에 뿌릴 수밖에 없었다. 또 어느 고양이가 비닐봉지를 물고 도망갈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 두둥. 그게 아니었다. 고등어 무늬 고양이 넷 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비닐봉지를 물고 어느 구석으로 가선 혼자 먹고 있었다. 울컥. 첨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거니 했다. 너무 배가 고프니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을 깬 것이 아닐는지.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玄牝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가장 덩치가 큰 그 고양이에게 화를 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음식을 독점하는 건, 해선 안 되는 일이니까. 아무려나 속상한 밤이었다.
아무려나 앞으론 그냥 음식을 바닥에 둬야 할 거 같다. 내키진 않지만.
아, 그리고 사료를 인터넷으로 사야할 거 같다. 혹시 괜찮은 사이트 있으면 추천 부탁!
03
어쩌다 보니, 이 블로그, 고양이 블로그로 은근슬쩍 바뀌고 있다. ;;; 조만간에 트랜스 관련 글이라도 올릴 테니, 관련 내용을 기대하는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흐흐.
[길고양이]주절주절: 겨울, 피아노, 고양이-리카, 웹 접속
01
눈이 내렸다. 낮 12시 전후로 대충 30분 정도. 카페에 앉아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설렘과 우울이 흩날렸다. 바닥에 쌓이진 않았다. 젖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닥의 물기와 함께 셀렘과 우울도 증발할까? 하지만 결국 또 순환하겠지.
02
Keith Jarret의 The Koln Concert를 듣고 있다. 서늘한 피아노 소리. 키쓰 자렛의 피아노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지난 일요일의 추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였다. 바람이 심하게만 불지 않았다면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날씨였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쌀쌀한 게 아니라 정말로 추운 날씨. 그 날씨면 내가 깨어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름날의 더위에 죽어가던 내가, 겨울이 오고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면 그제야 비로소 내 몸도 깨어나고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피아노 소리와 잘 어울려서 좋다. 나는 이 계절의 서늘함이, 푸른 빛이 감도는 햇살이, 피아오와 어울리는 차가움이 좋다. 무엇보다 키쓰 자렛의 피아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 기쁘다.
03
어제 밤엔, 유섹인 강좌가 끝나 사람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느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귀가.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주변 쓰레기 봉투가 뜯어져 있었다. 안도했다. 아직은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음식을 구할 능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음식을 챙겨 나왔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카노가 슬쩍 나타났다. 카노가 한참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리카도 나타났다.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음식을 먹으러 갔다. 리카와는 참 오랜 만이다. 거의 나흘 만인가? 그동안 통 안 보여 걱정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나 보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난 겨울 추위에 동사했는지, 로드킬이라도 당했는지, 동네주민의 혐오폭력에 아픈 건지, 행여 내가 준 음식에 아팠던 건지, 이런저런 걱정을 했는데,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 음식을 먹으러 오는 시간이 늦었을 뿐인 거 같다. 확실히 리카는 너무 예쁘다. 그리고 나와의 거리도 많이 줄었다. 예전엔 1.5미터 정도만 다가가도 서둘러 도망갔는데, 지금은 그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눈을 맞추는 정도다. 걱정이다. 음식을 먹다가 사람 소리에 움찔하다가도 내가 보이면 안도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냐옹이보다 리카를 더 좋아하는 나는, 이사갈 때 리카를 납치할까 하는 고민도 슬쩍 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리카가 결정할 부분이다. 리카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04
날씨가 좀 풀리고 있다. 사흘 만에 웹으로 돌아왔다. 지난 이틀 동안 인터넷 접속이 원할하지 않았다. 행사에 학회 이사로 분주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몸은 웹에 있다. 그래서 웹이 그리웠다. 인터넷이 일상인 시대, 인터넷을 어릴 때부터 경험한 세대에겐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웹이 그리움의 공간이 되겠지. 웹이, 카페가,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고향이 되겠지.
나는 지금: 도망
다시 혹은 또, 나는, 마지막 순간에, 아니,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래서 견디고 또 견뎌야 할 기간에, 도망친 건지도 모른다. 아니다. 무서워서 도망친 거다. 직면하기 무서워서, 나의 부끄러움을 견디기 싫어서. 그래서 더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