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2009.11.22.일. 12:10. 아트레온 9관 11층 G-10

지난 토요일 쓴 것처럼, 영화관에 갔습니다.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 할 말이 없습니다. ㅠ_ㅠ 오락영화로서 재밌습니다. 문제는 그냥 가볍게 즐길 수 없는 영화란 거죠. 일테면 [디스트릭트 9]은 가벼운 오락영화로도 재밌지만, 정치적인 해석에서도 꽤나 유쾌합니다. 그런데 [바스터즈]는 오락영화로 재밌는데, 정치적인 해석에선 꽤나 불편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었던 거 같은데, 비교할 바 아니긴 하고요.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도대체 왜 저런 제목을 선택한 건지 알 수 없는 영화라면, [바스타즈]는 시종일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그리고 매우 잘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정치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 있는 거죠.

나치군을 처단하려는 미국 군대 “바스타즈”는 프랑스 지역 나치군을 전멸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누구 한 명 살려두지 않죠. 하지만 예외로 살려 둘 땐 이마에 나치표식을 새깁니다. 바로 이 부분이 불편함의 핵심이죠. 이마에 나치표식을 새기는 건, 나치가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혹은 변태)에게 표식을 새긴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울려 트랜스젠더 관련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 “트랜스젠더들은 이마에 표시를 새겨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트랜스젠더인 걸 모르고 연애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와 다르지 않은 정치학이고요.

감독은 아마, 신우파가 득세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지배질서로 자리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표시 남기기라면, 그건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처럼 변할 수 있는 힘을 전면 부정하고 개인을 특정 시기에 고착시킬 뿐이란 점에서 동의하기 힘들어요. 과거를 반성하는 건 당연하지만, 한국의 친일파와 같은 행각은 매우 곤란하지만, 하지만 그것이 몸에 낙인을 새기고 전시하는 방식이라면 … 글쎄요.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이런 방식은 결국, 한 사회의 비규범적인 존재들을 낙인 찍는 방식으로 재생산될 테니까요.

아무려나, 이 영화, 잘 만든 영화이긴 합니다. 영화 초반이 후반보다 더 재밌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흐흐.

주절주절: 겨울의 길고양이, 트랜스젠더 강좌, 권력을 활용하기

왜 가끔은 내 안의 무수히 많은 언어들이 다 어디갔나, 싶을 때가 있죠. 다들 경험하셨겠지만요. 무언가를 쓰고 싶지만, 무엇하나 주절거리기에 부족한 내용들이라 무언가를 쓰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들의 조각들을 늘어놓는 수밖에 ….

전 요즘 길고양이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하는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 길고양이들에게 겨울은 어떤 풍경일까요? 집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저에겐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죠. 찬 바람이 쌩쌩 불고 때로 겨울비와 눈이 내리는 밤,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요?

혹은 트랜스젠더 강의는 어떻게 해야 ‘쉬울까’를 고민합니다. 사실 전 트랜스젠더 특강 가서 트랜스젠더에 관한 얘기는 거의 안 합니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의 어려움을 듣고 싶어하지만, 저는 젠더 경험에 초점을 맞추죠. 그리고 비트랜스의 젠더경험과 트랜스젠더의 젠더경험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고 애씁니다. 아무래도 초보 강사니 여러 강의안을 만드는데요. 최근 ‘딱 학부생용이다’ 싶은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정도 그 강의안을 바탕으로 강의를 했는데요. 최근 특강을 들으신 선생님(저를 특강으로 초대한 선생님이기도 하죠)께서 말하길, 학부생이 듣기엔 너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헉. ㅜ_ㅜ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럼 대학원생이 듣기엔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대학원생(아마도 여성학/젠더이론 전공일) 정도면 무난하겠다고 답하셨죠. 우허엉. ㅠ_ㅠ 며칠 전 특강의 수강생들의 감상문을 받았는데요. 어렵다는 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해서 초점을 모르겠다는 말도 있고요. 이건 모두 중요한 지적입니다. 가장 정확한 지적은 강사님은 강의를 많이 안 하신 듯해요, 란 논평이었습니다. 매우 고마운 논평이죠. 초보 배우는 무대에서 발걸음부터 어색하다고 했나요? 저런 논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겁니다. 아무려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트랜스젠더의 경험과 비트랜스의 경험을 분리하지 않는 강좌를 쉽게 하기. 이 고민을 하며, 저는 ㅎ님을 스토킹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시간대면 ㅎ님 강좌를 따라 다니기로 한 거죠. 하하. 스토킹하겠다고 말했는데 특강 일정을 알려주는 경우도 스토킹인지는 애매하지만…. 암튼 열심히 배워야죠. 🙂

다른 한편,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트랜스젠더 이슈로 특강을 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어떤 권력 때문이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매우 많고, 트랜스젠더 연구를 전공한 사람은 저 외에도 여럿 있고, 트랜스젠더 이슈로 특강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저보다 강의를 더 잘하고, 글도 더 잘 씁니다. 그럼에도 제가 한다는 건 제가 가진 어떤 특권적 자원과 떼려야 뗄 수 없겠죠. 이것이 제가 가진 권력이라면, 어쨌든 이것이 권력이라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 해야 겠죠. 한땐 권력을 전면 부정한 시기도 있습니다. 권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이해한 시기도 있고요. 하지만 권력이 맥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저에게 활용할 만한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것인가? 즉, 미약하나마 어떤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힘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것이 관건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암튼 내일은 극장에라도 갈까 봐요. 선택할 만한 영화가 없어 고민이지만요. 그리고 무척 피곤해서 늦은 밤이지만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뮤즈Muse 내한 공연 소식

뮤즈(Muse)가 내년 초에 내한한다고 합니다. 이미 철지난 소식이지요. 네. 철지난 소식을 이제야 말합니다. 뮤즈가 내한하면 무조건 가겠다고 말했던 전례에 비추면 저의 시큰둥한 반응이 의외일까요? 전 뮤즈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매우 늦게 접했습니다. 그런데 별로 흥분이 안 되더군요. 갈까, 말까를 망설일 정도였습니다. 공연예매는 어제 저녁 6시였지만, 그 시간에 전 컴퓨터 앞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 뮤즈가 내한할 때 그토록 흥분한 저는 어디갔을까요? 예전같았으면 알바하는 곳에서 어떻게든 예매를 하려고 했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무려 알바가 끝나고 웹에 접속했을 때도 예매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려나 오늘 아침에도 오전에도 저는 예매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뮤즈가 내한하면 무조건 간다고 호언장담하던 저인데, 무려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네. 저는 망설였고, 알바시간을 감안하여 가기 힘들겠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아무튼 그랬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 어느 햇살이 눈부시던 시간, 저의 핸드폰에 예매번호를 알려주는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제가 예매한 거 아닙니다. 올앳카드를 충전하고, 예매사이트에 접속하고, 잊어버린 아이디를 찾고, 스탠딩 석을 선택하고, 카드결제를 했습니다만, 결코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냥 어느 순간 모든 게 되어있었습니다. 수동태로 적어야 합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뭔가가 순식간에 되어있었습니다. 네, 뭐, 이런 거죠. 이런 겁니다. 결코 제가 한 게 아니라, 그냥 제 안의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와선 제멋대로 한 겁니다. 믿어주세요. 결코 제가 한 게 아니란 걸. 구차한 변명이란 거 압니다. 하지만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 걸요. 햇살이 좋았다고 치죠. 암튼 전 그냥 결제했을 뿐입니다.

결론은 올해 두 번째 지름신이 왕림했다는 거죠. 하지만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