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스트릭트 9: 이방인, 사랑

[디스트릭트 9] 2009.11.07. 토. 09:40. 아트레온 5관 7층 D-5

01
형식과 내용에 있어, 상당히 만족스러운 영화다. [렛 미 인]이나 [레이첼 결혼하다]와 같은 영화가 있어, [디스트릭트 9]을 올해 최고로 꼽을 순 없지만, 그래도 매우 잘 만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비규범적인 존재나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를 다룬 영화라고 설명한 듯하여 내가 다시 한 번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 짧게만 언급하면, 영화 초반에 “외국인도 아니고 외계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몇 주 전 [시사인]  커버스토리에서 대한민국 평균의 인식을 다뤘다. 그때 나온 질문 중 “자식이 외국인과 결혼한다면?”과 “자식이나 친구가 동성애자라면?”이 있었다. 5명의 대답을 요약하면, ‘외국인은 괜찮아도 동성애자는 안 돼!’ 였다. [디스트릭트 9]에 대입하면 동성애자는 외계인인 걸까?

한국사회에서 ‘이방/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외계인(“프론”)에게 감정이입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주인공의 몸 변형 과정은 화학적 거세와 성전환 과정을 연상케 한다. 혹은 유전자 변형 식품을 향한 납득하기 힘든 공포를 연상케도 한다. 영화 전체는 철거, 이주, 계급, 인종 등의 이슈를 노골적으로 연상케 한다. 만약 한국 감독이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삼은 풍자와 블랙코미디로 분석되었을 터. 극장 상영 자체가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기사에서, 이 영화가 남아공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02
#이제부터 스포일러 있음!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바커스는 외계 유동액으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몸이 서서히 외계인으로 변해간다. 바커스가 일하는 곳인 MNU는 일종의 국제기구이자 세계 2대 군수업체다. MNU가 노리는 건, 외계인들의 무기. 하지만 외계인들의 무기는 모두 외계인의 DNA에만 반응하고 작동하기에 지구의 인간들은 사용할 수가 없다. 근데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바커스가 외계인의 무기를 작동시킬 수 있자, 이 기회를 놓칠 MNU가 아니다. MNU는 바커스의 몸을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간신히(혹은 당연히?) 도망친 바커스는 외계인 거주지 디스트릭트 9에 숨어들고 그곳에서 크리스토퍼를 만난다. 크리스토퍼는 아마도 외계 비행선 조종사인 듯. 암튼 크리스토퍼는 바커스에게, 유동액에 따른 유전자 변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고, 당장이라도 고쳐줄 것처럼 말한다. 문제는 어떤 기회로(영화에 잘 나옴;;) 자신의 동료들이 생체실험 대상이자 해부학 대상으로 사용됨을 알고선, 분노하여 바커스 치료보다 고향으로 돌아가 군대를 끌고 오는 일을 우선하겠다고 말한다. 고향에 갔다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3년 뒤에 바커스를 치료해주겠다고 말하는 것. 하지만 바커스는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를 당장 만나야 하기에 고향 크리스토퍼가 고향 가지 전에 먼제 치료부터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뭐, 예상할 수 있듯, 고난을 함께 겪은 이들의 ‘우정’으로 3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크리스토퍼는 고향으로 간다(이 ‘우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생뚱맞고 재미없었던 부분 중 하나, 난 적어도 이 영화라면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갈 줄 알았다). 그리고 지구에 남은 바커스. 3년 뒤에 크리스토퍼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커스는 외계인과 같은 외모로 변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거주지역 디스트릭트 10에 머무는데.

#스포일러 끝.

03
난 영화 마지막 부분에 주목했다.

자신의 의지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저 3년이란 확신할 수 없는 약속만 믿고 기다려야 하는 바커스의 삶이 사랑의 형벌 혹은 사랑이라는 유형(流刑)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수도 없고, 찾아갈 수도 없는 상태. 서로를 사랑하는 상황이지만, 바커스의 아내 사라는 바커스의 생사 여부 자체를 모르고, 바커스는 결코 사라에게 다가갈 수 없다. 외계인의 몸으로 변한 바커스는 새 이주지역, 하지만 사실상 구금지역 디스트릭스 10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곳을 벗어난다는 건, 언제든 지구인들의 구타와 폭력, 혹은 거주지 이탈에 따른 위반 행위로 즉결 처분도 가능한 위험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행여나 다른 사람 몰래 바커스가 사라를 찾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위험하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이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괴물의 외모만으로 사람들이 경악하고 악마로 취급했던 것처럼, 사라 역시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바커스의 변한 외모는 사라가 전혀 모르는 바커스다. 사라의 맥락에서 외계인 형상의 바커스는 바커스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3년이란 막연한 세월을 견디는 수밖에. 마지막 통화에서 서로 기다리겠다고,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사랑의 약속은 언제나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같이 한 다짐이어도, 어느 한 쪽이 깰 가능성이 너무 크단 점에서 사랑의 약속은 일방적인 다짐이다.

“나를 기다려 주세요” “우리 꼭 다시 만나”란 말은 창살 없는 감옥이자, 자기 스스로에게 구형하는 무기징역의 형벌이다. 스스로 그 구형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지 않는 이상 평생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언어의 감옥. 바커스는 바로 이런 감옥에 갇혀 지내고 있다. 그가 풀려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3년 뒤 크리스토퍼가 돌아와서 바커스를 치료하는 것. 하지만 이것은 바커스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막연한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고, 기간 한정 이별일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황.

그리고 3년이면 사랑이 변하고, 또 변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실한 기약 없는 상황에서,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3년이란 세월은 사랑의 감정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든지 사랑이 끝날 수도 있는 시간이다. 헤어지는 과정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 그 감정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랑의 감정을 냉동보관한 건지, 극적인 상황 자체를 기억하는 건지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바커스와 사라는 서로 너무 다른 상황에 있다. 사라는 바커스의 생사여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애와 사랑이 가능한 곳에 머물고 있다. 외계인 혐오증이 있는 바커스는 외계인의 몸으로 변한 상태에서 사라만 그리워하며 외계인 거주지역에 머물러 있다. 바커스는 사라를 죽을 때까지 그리워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라도 그럴까? 3년 뒤 크로스토퍼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그때도 사라는 바커스를 기다릴 수 있을까? 그리고 바커스는 어떤 감정으로 사라를 기다릴까? 그때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말로 감정을 포장한다면, 어떤 모습의 사랑일까?

이 불우한 사랑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이루고 싶어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고 있어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결말은 어떤 모습일까?

…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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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신촌지역에서 만난 십대이반의 섹슈얼리티(잘해보지)

9강 12월 7일 민/관의 섹슈얼리티 교육과 십대의 만남(박현이, 최자은, 김민혜정)
10강 종합토론(성적자기결정권과 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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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문이 한 번에 열리는 시간: 나방, 고종석, 교장, 글쓰는 공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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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생님께서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대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죠. 술자리를 비롯하여 일상에서 성폭력을 빈번하게 행하면서도 진보연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 행동하는대로 혹은 몸 가는대로 생각하기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생각대로 행동하고 싶은 건지도 모릅니다. 몸 가는대로 생각하고, 그렇게 마음을 놓아보내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차마 몸 가는대로 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또 알고 있죠. 결국 몸 가는대로 간다는 걸. 결국 삶이란 불을 너무 사랑하여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 같은 것일까요? 제 몸이 까맣게 타버린다는 걸 알면서도 날아드는 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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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씨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문장에 반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엔 불편한 구절이 적잖아요. 뭐, 어차피 문장을 읽으려고 책을 샀지, 내용을 읽으려고 산 건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잠들기 위해 누워선 몇 쪽을 읽는데 문장이 너무 좋아 잠드는 게 아쉬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하루에 세 꼭지 정도만 읽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의 문장을 읽고 나면 저의 문장이 너무 비루하여 어떻게 수습할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는 거죠.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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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전두환과 노태우를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내세워 이슈가 되었죠. 교장은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주려고 했다나 어쨌다나. 요즘 전 그 교장이 특이할 것 없는, 매우 흔한 모습이라고 중얼거립니다. 학생 성적이 학교 평균에 안 좋은 영향을 주니 전학 가라는 교장, 두발이 교칙에 맞지 않다고 학생에게 욕을 하는 교장, 학교 발전 기금이란 명목의 돈을 안 냈다고 학생을 괴롭히는 교장  …. 따지고 보면 제가 경험한 교장들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내세운 교장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교장이 그렇진 않습니다. 일제교사 대신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들을 허가해줬다고 처벌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체험학습을 허가하겠다는 교장도 있으니까요. 교장은 모두 나쁘다는 식의 일반론을 펼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언론을 타는 부정적인 교장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 거겠죠. 제 글에서 결론이 생뚱맞은 것 역시 특이할 것 없다는 거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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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상하죠? 여타의 인쇄매체나 출판물보다 이곳, [Run To 루인]이란 블로그가 제게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합니다. 당연한 말이긴 하죠. 제가 직접 꾸려가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선 하기 힘든 말, 상당히 조심하는 말을 다른 매체에 기고하는 글에선 거리낌 없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매체 대부분은 이곳을 찾는 분의 수보다 더 많은 이들이 구독하는 매체인데도 그렇습니다. 이곳이 제겐 애증인 공간일 수도 있다는 의미일까요? 아, 애증의 공간은 맞아요. 하지만 이곳에선 종종 구체적인 표현을 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글을 쓰는 공간이 이곳만이 아니란 점이죠. 네, 제가 글을 쓸 곳이 이곳 뿐이었다면 제 삶의 일부는 흔적을 남기지 못 하고, 제 몸 깊은 곳에 침잠하고 용해하여 형태를 못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특정 시간에 기록해야만 의미가 있는 형태를 못 가져 예기치 않은 순간에 엉뚱한 모습으로 튀어나왔겠죠. 다행입니다. 이곳이 제가 흔적을 남길 유일한 공간이 아니어서.

아무려나 제 몸은, 제 몸의 일부는 여러 공간으로 흩어지고 하나로 통합할 수 없는 상태로 부유합니다. 거울에 비친 제 몸엔 꿰맨 자리와 땜질한 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쳐 꿰매지 못 한, 땜질하지 못 한 제 흔적들이, 제 몸의 일부들이 언제나 제 방에 둥실둥실, 저 허공 어딘가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풍경.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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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일이 끝나고 있는 시간입니다. 전 결국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팔자도, 쉴 수 있는 팔자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인복이 많다는 걸,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애쓰면 결국 저와 같은 혹은 비슷한 일을 하고 싶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