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의학-기술-몸-젠더, 글쓰기 등등

할 말이 있었는데, 꽤나 중요한 말이었는데 까먹었다. 악! ㅜ_ㅜ

01
오랜 만에 특강을 하기로 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이번 강의 내용이 다음주 말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의 바탕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강의를 듣는 사람은 대학생이고 원고가 실릴 잡지를 읽는 사람은 대학생부터 좀 배웠고 이론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를 강의한다는 건 독자가 누구건 상관없다. 다들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의 욕심과 독자/청자의 기대 사이에서 수위를 조율하는 건 늘 쉽지 않다. 10년의 내공이 쌓인 것도 아니고, 매우 어설픈 지식에 어정쩡한 체계를 갖춘 나로서는 더 어렵다. 말하고 쓰는 나도, 듣고 읽는 이들도 모두 난감한 상황일 때도 많다. 물론 모든 빼어난 강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겠지? 그들도 어설펐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믿으며 위로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었던 청중들은 어쩌란 말이냐! 흑흑.

02
몇 주 전, 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어로 쓴 논문 중에서, 섹스 혹은 생물학적 성이란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설명하는 논문이 매우 적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두꺼운 책이 있긴 하고(『섹스의 역사』, 책은 두껍지만 서론만 읽어도 충분하다;;;) 여성학 교제라고 불리는 책들마다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성, 의료기술을 통해 구성되는 몸과 젠더의 관계를 집중해서 다루는 논문은 별로 없다고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충분히 쉬우면서도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논문이 없다고 한다.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다룬 괜찮은 책은 젠더나 섹슈얼리티란 범주를 간과하는 식이다.

사실 이번에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대충 이런 거다. 근데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학-기술-몸-젠더란 주제어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주제다. 그래서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의 황홀을 느낀다. 흐흐. 하지만 이를 글로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 흑.

03
추석이라 부산에 갔다 왔다. 엄마 님과 얘기를 나누다 재밌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 님은 언제나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 님이 워낙 아픈 곳이 많다보니 의사 자식 덕을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난 이과에선 수학을 전공했고, 실험보다는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했다. 위에서도 적었듯,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책 중엔 의학사상사나 의학 발달과 관련 있는 책들이 여럿 있다. 의사는 안 되었지만, 의학이 몸을 통제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 같긴 하다. 크크크.

아이러니는 하나 더. 부모님은 내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종에 취직하길 바랐다. 평생 돈문제로 고생했으니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프리터처럼 평생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직종에서 살기를 바란다. 근데 또 내가 흥미롭게 읽는 주제 중 하나는 국가가 국민/시민을 관리, 통제하는 방식이다. 뭐, 이런 식이다.

04
두근거림이 결국 나를 구원할 거야!
후훗.

화학적 거세란 말의 심란함: 여성혐오, 트랜스혐오, 이성애주의 등이 얽힌 매우 위험한 발상

조두순 사건과 관련, 화학적 거세를 하자는 얘기를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다. 여성호르몬을 통해 성욕을 감퇴시키면 재범율이 3% 수준이라나. 심란하다. 매우 간단하게 쓰는 단상 다섯 가지. 자세한 건 다음 주 특강에서 할 듯?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글이 상당히 거칠고, 읽는 사람에 따라선 불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ㄱ. 화학적 거세를 하면 성폭력이 준다는 주장은 남성의 성욕과 성폭력 원인은 생물학적 필연이라고 가정하는 것. 남성의 성욕은 너무 강하고 어쩔 수 없어서 화학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니 어쩔 수 없고, 성폭력은 남성의 본성이다? 남성 성욕 신화의 결정판.

ㄴ. 화학적 거세는 여성호르몬을 조치하는 것. 이는 여성은 무성적이거나 여성호르몬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성욕이 없으니 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음. 모든 성폭력 가해자는 남성호르몬이 호르몬 비율상 더 많거나 여성호르몬이 비율상 더 적다는 의미일까? 여성성폭력가해자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 관계에서의 성폭력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음. 더 정확하게는 이 세상엔 이성애 관계만 존재한다고 강변하는 격.

ㄷ. 성욕의 발생이란 측면, 더 정확하게 말해 발기란 측면에서, 모든 성행위는 남성형 성기의 발기 혹은 삽입욕망을 정상 성욕으로 가정하고 있음. 이것은 이성애 성관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거나 남성들만의 성욕/성관계만을 가정하고 있음. 모든 남성이 삽입만을 욕망하는 건 아님. 아울러 흡입을 욕망하는 이 혹은 그런 남성은 성폭력 가해를 하지 않을까? 성폭력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가정하며, 성기를 매개하지 않는 매우 많은 종류의 성폭력을 은폐함.

ㄹ. 여성호르몬 투여를 통한 남성의 성욕 감퇴, 성범죄예방이라면, mft/트랜스여성은 어떻게 되고, 이런 논의에서 뭐가 되는 거지? 의료적 조치 과정에서 성범죄예방과 mtf의 호르몬 조치가 겹치면서 매우 심란. mtf/트랜스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걸까? 아울러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는 성폭력 가해를 의료적 질병으로 이해하고, 이 과정에서 질병이나 문제를 치료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를 사용하여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를 질병치료로, 트랜스젠더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mtf/트랜스여성은 결국 화학적 거세를 당한 남성, 성욕을 잃어버린 남성, 여전히 남성이란 의미일까?

ㅁ. 이것저것 다 떠나서 젠더 권력이 팽배하고, 젠더 규범이 지배질서인 사회에서 화학적 거세가 ‘해결’하는 건 사실상 거의 없음. 결국 개인이 문제이지 사회제도, 문화적 규범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 만사를 법과 규제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 나아가 이것이 섹슈얼리티, 다양한 성적 실천을 협소하게 규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함.

가을이 익어가는 냄새

시골엔 가을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종 가던 그곳은 아직도 초록이 만발하고, 무화과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몸을 가득 채울 초록 공기를 기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얼추 10년 전 들어선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 익어가는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공기는 고약하게 달고, 가을이 오면 보상금은 익어갑니다. 누군가는 빛을 청산했고, 누군가는 집을 개조했습니다. 가을이라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사시사철 쓰레기가 익어가는 나날, 보상금이 익어가는 나날. 삶은 무료합니다. 극렬했던 매립장 건립 반대 시위는 보상금 액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다들 반대 시위는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전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 속의 고향은 박제된 형태도 없이 아득합니다. 새롭게 진행될 개발 계획에 보상금이 얼마가 나올지, 그 금액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산하기 바쁩니다. 푸른색과 퍼런색의 간극은 매우 좁습니다. 노후 보장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 지려나봅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노후 보장이 되면 다행일까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냄새만 불평할 뿐, 생활 자체는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공중목욕탕도 생겼고, 대형 마트도 생겼으니까요. 재래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아, 대형마트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닙니다. 농촌마을이라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 사람들이 없어서, 살 사람도 없어서 사라졌습니다. 5일장이란 말은 이제 기억 속 유물입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마을버스를 타고 대형마트로 갑니다. 보상금은 농사로만 살기엔 불안했던 삶에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시간, 나뭇잎들이 얼굴 표정을 바꾸는 시간, 무화과가 입술을 벌리는 시간, 그리고 보상금이 익어가는 시간. 가을 하늘은 높고, 보름달은 크고 환했습니다. 저만 혼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있습니다. 외부자라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