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 님 블로그에서 가져왔어요.
1. 잠자는 곳은?
– 침대 혹은 매트리스. 암튼 내 몸이 익숙한 玄牝. 낯선 곳에선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MT나 캠프 같은 걸 무척 꺼린답니다.
2. 누구와 자는가?
– 나… 랑? ㅡ_ㅡ;; 또 모르죠. 제가 잠들고 있는 사이 무언가(누군가?)가 스르륵 왔다 갈지.
3. 잠버릇은?
– 익숙한 공간이라면 잠들기 직전의 상태를 깨어날 때까지 유지함. 후후. 그냥 일자로 눕거나 소심한 대(大)거나. 흐흐흐.
4. 자면서 울어본 적은?
– 그… 글쎄요. 기억이 안 나네요. 눈물은 자주 흐르는 편인데 그게 운건지, 그냥 눈물이 흐른 건지 애매해서요.
5. 최장 몇 시간까지 자봤는가?
– 15시간? 전날 밤 새고 오후에 잠들었는데 깨어나니 다음 아침이더라고요. 흐흐. 근데 어지간하면 피곤해도 잠을 많이 안 자는 편이에요. 몰아서 자면 오히려 더 피곤하더라고요. 그냥 일주일 정도 평소보다 20~30분을 더 자면 몸이 피로가 대충 풀리더라고요. 그 일주일이 괴롭지만요. 으하하.
6. 자주 꾸는 꿈은?
– 자주 꾸는 꿈은 아니지만 가장 인상적인 꿈은 벌레가 나오는 꿈. 참고로 [Run To 루인]의 인기 검색어는 “벌레가 나오는 꿈” ㅡ_ㅡ;; 기억의 왜곡을 감안하면 무척 어릴 때부터 벌레가 나오는 꿈을 꿔서, 벌레를 무척 무서워해요. 기겁하죠.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갈 때도 있고, 순간적으로 숨이 멎을 때도 있고요. 으하하. 여름을 싫어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벌레라는. ;ㅁ;
7. 필요한 이불은 몇 개?
– 응? 한 개면 충분해요. 물론 겨울에 보일러 안 틀고 버틸 땐 이불 말고 여분의 덮을 거리가 필요하지만요. 흐흐.
8. 필요한 베개는 몇 개?
– 베개는 낮을수록 좋으니 한 개. 높은 베개는 목이 아파서 싫어한답니다. 근데 베개가 없으면 또 잠을 잘 못 자요.
9. 평소 몇 시에 자는가?
– 좀 많이 피곤한 시기엔 11시 30분 즈음. 그렇지 않으면 12시 전후. 논문을 쓰는 시기처럼 몸을 특정한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땐 무조건 11시에 잠들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11시 30분 즈음 잠들고 6시에 일어나는 건데, 잠들 시간이 되면 피곤해도 억지로 버티면서 늦게 자려고 해서 문제라면 문제랄까요.
10. 잠잘 때 꼭 필요한 3가지는?
– 잠들기 직전까지 읽을 수 있는 무언가(만화책이건 책이건 논문이건 잡지건 상관없음). 베개. 그리고 온갖 상념. 불을 끄고 잠들 때까지 상념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할까요!
11. 알람은 몇 시?
– 핸드폰의 최초 알람 시간은 6시 2분. 그 후로 몇 분 간격으로 여러 번 울림. 흐흐. 지지(mp3p)의 라디오 알람은 6시 13분. 대충 이 시간 즈음 잠에서 깨지지만, 특별히 바쁜 일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불에서 나오는 시간은 7시 직전. 어쩌다보니 아침마다 라디오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6시 55분 즈음 김종배의 시사브리핑이 끝나요. 시사브리핑이 끝나면 그제야 이불 밖으로 나온답니다. 아주 가끔 손석희와 김종배가 만담을 하는데, 이게 은근히 재밌거든요. 하하.
12. 가장 빨리 일어나는 가족은?
– 혼자 살고 있으니… 나? 연례행사로 부산에 가는데 그때도 가장 빨리 일어나는 건 나. 아주 가끔 캠프나 MT 비슷한 걸 가는데 그곳에서도 가장 빨리 일어나는 건 나. ㅡ_ㅡ;; 근데 6시에 일어나는 게 결코 빠른 건 아니라고요!!
13. 가장 늦게 일어나는 가족은?
– 혼자 살고 있으니, 역시 가장 늦게 일어나는 가족도 나. 훗.
14. 꿈속에 꼭 나왔으면 하는 사람
– 꿈에 사람이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죽기 직전 제게 들린 경우라… 흠. 자자, 누굴 찍을까요? 케케. 나오길 바란다고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15. 바톤 넘길 분 5명?
– 알아서 받으세요. 🙂
수순밟기? : 인권위원장 사퇴 + 카더라 통신
수순밟기에 들어간 걸까요?
7월 초나 중순 즈음 사퇴할 줄 알았는데 6월 마지막 날 사퇴하네요. 명분도 그럴 듯 해요. 그 명분을 믿는 사람이 없을 뿐이죠.
시중에 떠돌고 있는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네이버를 노리고 있다 합니다. 인수하거나 주식을 다량 매입해 지배권을 확보할 계획이라네요. 뭐, 지난 번처럼 카더라 통신입니다.
이태원, 트랜스젠더 역사 찾기
요즘 이태원 관련 자료를 찾으며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유추하고 있다. 1980년대 이태원에 트랜스젠더들이 상당했음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럼 1970년대엔? 이 시기의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막연한 추측은 할 수 있다. 1970년대 박정희는 미군을 붙잡기 위해 미8군 지역 근처에 성매매 지역을 조성하고 “사회정화운동”을 펼쳤다. 이 당시 비트랜스’여성’만이 아니라 트랜스여성들도 같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시기의 사람들을 트랜스젠더로 부를 수 있는가와 같은 논의는 별개로 하자. 일단은 현재의 트랜스젠더와 비슷한 1970년대의 사람들을 트랜스젠더로 수렴해서 부르자. 임시방편이란 항상 가장 위험한 방편이지만, 그래도 일시적으론 효과가 있으니까.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현재의 조건을 과거에 강제로 적용하는 것도 때로 유용하니까.
어제 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 무척 흥미로운 일화를 전해 들었다. 물론 선생님의 일화는 아니고 선생님의 지인이 전해준 일화. 그 일화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커플, 게이 커플은 이태원에서 익숙한 이웃이라고 한다. 문제될 것 없는, 그냥 내 이웃.
일화를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여자 커플 같은데 한 명은 여자처럼 옷을 입고, 다른 한 명은 남자처럼 옷을 입은 도배장이 커플이 이태원에서 도배 능력으로 꽤나 잘 나갔다”고 한다. 이들이 비트랜스 레즈비언 커플인지, 이성애-트랜스남성과 이성애 여성 커플인지, 이성애-트랜스남성과 레즈비언 여성 커플인지, 바이 커플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모든 명명과 구분은 현재의 것이다. 그 당시 이태원에선 이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을 터.
이 일화에서 명확하게 유추할 수 있는 건 매우 적다. 주변 사람들이(혹은 이태원 외부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길 법한 이들이 이태원엔 빈번했음이, 이 일화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다. 이 유추를 통해, 현재의 의미로 트랜스젠더라 부를 법한 이들이 1970년대에도 이태원에서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일화를 전해 들으며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 일화와 유사한 일들을 전해 줄 수 있는 분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 고백하자면, 한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 한 건지, 중요한 증언을 들을 기회가 사라져 안타까운 건지 헷갈렸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조금 부끄럽게도, 증언을 들을 기회가 사라져 안타까웠다.
+그냥 덧붙이는 근황+
계단을 오를 때마다 뒤로 넘어갈 뻔한다. 아차 하는 순간 뒤로 넘어가겠다는 위기를 느낄 때도 있다. 이 여름. 어쨌든 살아 남는 게 최우선이다. 작년보다 올해 여름은 더 덥고, 나는 더 쉽게 지친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먹고 있는데, 몸은 더 빨리 지친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여름이니까. 내 몸은 여름마다 항상 이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