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혹은 주절주절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에 씻으려고 화장실에 가다 비가 내리는 걸 깨달았다. 라디오에서 전하는 일기예보를 제대로 듣지 않아서 일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하루 종일 방에 콕 박혀 있고 싶지만, 몸은 이미 습관에 따라 움직였다. 습관이란 무서운 거다.

학교에 잠시 들렸다가 카페로 이동하는데, 신발이 축축했다. 아, 이런. 물이 새는 것 같다. 아니 물이 샌다.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물이 많은 거리를 걸었는데 양말이 푹 젖었다. 아직 3년 밖에 안 신었는데, 이러면 곤란하다고! ㅡ_ㅡ;; 좋아하는 신발이라 아쉬움만 가득하다. 새로 하나 사야할까? 녹취 알바를 할 듯 하니, 그 돈으로 사면 될 것 같다. 뭐, 어차피 조만 간에 조리를 신을 테니, 당장 새로 살 필요가 없긴 하고.

어제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하루 가서 알바할 때와 장기간 알바를 할 때의 차이는 단 하나. 내가 원하는 음악을 트는지 여부다. 하루 가는 경우엔, 매장에 있는 CD를 틀거나 음악을 안 듣는 편이다. 하지만 장기간 알바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몇 장의 CD를 준비했다. 처음엔 니나 나스타샤(Nina Nastasia)의 You Follow Me. 일단 혼자 신나서 두 번 연달아 재생했다. 후후. 그 다음은 장필순의 6집, Soony. 기뻤던 건 손님 중 한 명이 이 앨범의 곡들을 거의 모두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는 것!!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좋았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은 건, 괜히 이런 걸로 친한 척 하는 걸 상대방이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하지만 내가 재생하는 앨범을 누군가 안다면 그 보다 기쁜 일이 어딨겠느냐고. 후후. 언젠간 니나의 앨범을 알아 듣고 먼저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톰 요크(Thom York)의 독집. 가사에 욕설이 나와서 당황했다는;;;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유난히 길게 반복하는 느낌이었달까.

비염의 계절이 돌아왔다! ㅠ_ㅠ

[f] 『저주 받은 왕』, 『오이디푸스 외전』: 오이디푸스 재해석

디디에 라메종의 소설 『저주 받은 왕 – 오이디푸스 렉스의 재구성』은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를 말 그대로 재구성했다. 이야기는 그대로 두고 형식을 추리소설로 바꾸는 식으로. 라메종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추리소설의 효시는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en Poe)가 아니라 소포클레스 같다. 범인과 탐정이 동일한 추리.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떠올리면 쉬울 거 같다. 라메종의 소설은 분명 신선하지만 내용은 그대로여서, 냉정하게 말해서 원작이 낫다.

반면 1971년 출간한 이디스 에밀톤의 『그리이스 로마 신화 편역』에 실린 『오이디푸스 외전』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전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상당히 많은 희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몇 편 안 된다. 에밀톤에 따르면 『외전』은 1963년 이집트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그가 글을 쓸 당시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발견 당시엔 상당히 떠들썩 했지만 이후 잠잠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소포클레스 작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필사본이라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내용이 기존 『오이디푸스』 뿐만 아니라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들과 너무도 달랐다. 소수의 학자들이 진위 여부를 검토하며, 관련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에밀톤은 『외전』이 진본이라고 확신하는데, 소포클레스의 희곡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외전』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특징의 반복만으로 진본이라고 확신하는 건 논리의 근거로서 약하다. 하지만 그 특징을 처음 발견한 것이 1901년이라고 알려져 있고, 너무도 강력한 특징이라 적잖은 학자들이 수긍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외전』의 공개를 학자들이 꺼린 건 어차피 공개되어도 사람들은 기존의 『오이디푸스』만을 기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창조한 인물의 성(빅터 프랑켄슈타인)인데도 영화의 영향으로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대명사가 된 것과 같은 이치랄까.

암튼 1963년에 발견한 『외전』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테가 신탁을 들은 후 서로 다른 고민을 하는 장면을 기술한다.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현명하고 통치를 잘 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라이오스가 테바이로 돌아오기 전 헤라의 저주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신탁은 불길했다. 신탁은 주지하다시피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라이오스가 이 신탁에 두려움을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명한 동시에 교활한 왕은 신탁이 자신에게 유리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신탁이 실현되기까지는 적어도 20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데, 그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자신의 아들 손에 죽지 않더라도 자연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니, 아들이 자신을 죽일 정도로 장성하기 전에 다른 원인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게 당시 그리스의 상황이었다. 만약 현명함으로 통치를 무난히 하고 자연사한다면, 성군으로 기록되겠지만 자신을 기억하는 건 기껏해야 100년이다. 더구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아테네나 스파르타의 왕이 아닌 이상, 테바이와 자신이 기억될 리 없었다. 반면, 자신의 아들이 자기를 죽이며 신탁의 비극이 실현된다면, 그는 신화로 영생하리란 걸, 후대의 기억 속에 영생하리란 걸 간파했다.

라이오스는 도박을 건 셈이다. 그는 일부로 아이를 좋아하는 양치기를 선택했다. 자신의 명령이 아무리 중해도 아이만은 결코 죽이지 않을 양치기로. 그 양치기는 아이를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넘겨 주고선 라이오스에게 아이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이 말이 거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아이를 죽였다는 양치기의 보고에 지은 미소는 안도의 미소이자 회심의 미소였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와는 다른 고민을 했다. 10대 초반에 결혼한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와 테바이의 가족제도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영원히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이 늘 불만이었다. 그는 학문을 배우고 한 나라를 통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민은 성인 남성만을 의미하는 그리스와 테바이에서 여성이 한 도시국가를 통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라이오스가 싫었지만, 그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건, 왕과 결혼하여 왕비가 된다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았다. 라이오스는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정확할 때에도 라이오스는 제 주장만 고집하며 이오카스테의 의견을 무시했다. 이오카스테는 계속해서 통치와 정치에서 밀려났다. 이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질 무렵, 아이가 태어났고 신탁을 들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라이오스를 죽이고 자신과 결혼한다고? 이건 일종의 기회였다.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였고,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들과의 결혼은 가급적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혼한다고 해서 대수겠는가. 그리스, 테바이의 관습이 자신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제도와 근친상간금기가 그토록 강력한 관습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금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고민 속에서, 가끔은 아들과 결혼하는 게 대수겠는가 싶기도 했다. 라이오스와도 결혼했는데!

『외전』은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처음부터 오이디푸스를 알아 봤다고 한다. 라이오스의 경우, 갈림길에서 오이디푸스와 대면했을 때, 발목을 보고 단번에 눈치챘다. 그는 일부러 오이디푸스를 도발했고, 죽어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 미소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에 대한 미소이자,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헤라를 향한 미소였다. 헤라의 저주가 결국 자신을 영생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오카스테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오이디푸스』엔 이오카스테가 사건의 전말을 깨달은 후 목을 매어 죽었다고 적었지만, 이는 비극을 위한 장치라고 에밀톤은 분석한다. 이오카스테가 목을 매단 것을 가까이서 확인한 유일한 사람은 오이디푸스 뿐이다. 『외전』에 따르면 목을 매단 사람은 이오카스테가 아니라 대리인이라고 한다. 대리인이 사람인지 인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오카스테는 10년 간의 치적을 뒤로 하고 테바이를 떠나 은신했다고 한다.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가 결혼한 후 10년 간 테바이는 상당히 번성했다. 그럼에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염병이 돌고 기근이 발생한 건 어째서 일까? 이와 관련해서 에밀톤은 『외전』에 근거해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전염병이나 기근은 없었다.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통치자의 훌륭한 정치행위가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이오카스테에게서 나왔다는 걸 시민들이 깨달았을 뿐이다. 여성의 통치와 정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테바이 시민들은 분개했고, 이때부터 갖은 소문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갑자기 피를 흘리며 죽는다, 비가 안 온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 …. 에밀톤의 지적을 받아 들인다면, 비극은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점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협소한 시민 개념이다. 오직 성인 남성만이 통치할 수 있고, 정치 논쟁을 할 수 있다고 인식하며 훌륭한 통치자를 모함으로 몰아낸 것이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혹은 ‘진정한’) 비극이다.

우리 마을 이야기2

사건일지 1: 김씨. 아파트 입주자. 1-1603 거주.
그날도 꽤나 시끄러웠다고. 사실 원주민들의 성격 나쁜 건 알고 있었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래도 정도 껏 해야지. 어떻게 만날 시위를 해. 참나.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고층이라 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잘 들리잖아. 중간층에 사는 게 좋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냐. 정말, 그들이 떠들면 어지간한 소리는 다 들려. 그날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더라고. 그래, 내, 신경질이 나서 베란다로 나갔지.
응? 아, 그 애? 글쎄. 자세히 본 건 아냐. 그냥 시위꾼들 한테 한 소리 할까 하고 내다 본 거니까. 성질 같아선 물이라도 한 바가지 퍼 붓고 싶었는데, 괜한 빌미 잡히기 싫었서 참았지. 사람들이 단지 출입을 개방하라고 떠드는데, 술이라도 마셨는지 유난히 시끄럽더라고. 소주병을 손에 든 사람들도 많고. 아, 기억난다. 그들이 시위하고 있는 철망 근처에 어린 애가 주저 앉아 있는 거 본 거 같아. 확실한 건 아닌데, 누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거 같아. 나야, 조경으로 만든 물건이겠거니 했으니까. 근데 다시 생각하니 그 자리에 바위나 다른 물건이 있을리가 없잖아. 더구나 시위꾼, 그네들 완전 꾼인 거 같은데, 시위꾼들이 그 애가 앉아 있는 쪽으로 손지껌을 하는 거 같더라고. 술병을 그곳으로 던져 화풀이라도 할 것 같았거든. 아, 이제야 알 거 같네. 그들이 왜 그렇게 그곳을 향해 요란했는지.
암튼 그 자식들 모두 잡아 들여야 해. 그 놈들이 한 짓거리가 맞다니까.
이봐, 근데 형사님은 어디 출신이요? 원주민은 아니죠?
특이사항: 그는 사건이 발생한 후 입주자들 중 몇 명이 원주민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을 때 동조한 바 있으나, 조사 과정에서 발뼘하는 태도를 취함.

사건일지 2: 최씨. 아파트 입주자. 2-302 거주.
요란했죠. 제가 사는 집에선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아파트 단지가 그렇게까지 넓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베란다 창문을 닫으려고 나갔다가 우연히 본 거죠. 원주민들 몇 명이 철망을 넘으려고 하더라고요.
무슨 생각을 했냐고요? 솔직히 뭐하는 짓인가 싶었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철망을 넘어 들어오는 건, 아파트 입주자들을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뭐겠어요. 더구나 그들 손엔 술병이랑 새총도 있었다고요. 무슨 의도겠어요. 신고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몇 집은 유리창이 깨지고 털렸을 걸요. 확신해요. 이곳 원주민들 성질은 유명하잖아요. 아, 진짜, 다른 곳보다 집값이 싸서 입주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돈 좀 더 주고 다른 곳에 갈 걸 그랬어요.
그 애는 못 봤어요. 내가 사는 곳에선 안 보이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암, 그러고 말고.
특이사항: 경찰서에 해당 사건을 신고한 인물로 추정. ‘추정’은 주지하다시피 경찰서 전화에 발신번호가 뜨지 않았으며 전화국 조회에서도 확인되지 않음.

사건일지 3: 이씨. 원주민. 48-11 거주.
이봐, 김형사. 우리들 성격이 순하단 건 자네가 더 잘 알잖아. 물론 그 날 사람들이 다른 날보다 더 흥분하긴 했어. 그렇다고 욕설을 하고 누굴 공격할 사람들이 아냐. 자네, 여기서 하루이틀 산 것도 아니니 잘 알 것 아닌가.
뭐? 아니, 자네 도대체 왜 이래. 여기서 갑자기 내 술버릇은 왜 들먹여. 자네 이러긴가? 그래, 내 술버릇이야 좀 험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아파트 시공할 때부터 시공하고 나서도 계속되고 있는 피해를 생각 해봐. 그게 말이나 돼? 아니 어떻게 우리들에겐 말도 없이 갑자기 아파트 신축을 허가하더니, 공사 중에 받은 피해에 대해선 한 마디도 안 하고 말이야. 진정을 몇 번이나 넣어도 반응도 없고 …, 고발을 해도 기각이나 하고. 혹시 자네 뭐라도 받은 거 아냐!
아, 미안하네. 아니, 내가 말 실수를 한 거야. 미안해. 그간 시공업체에 쌓인 게 너무 많다보니 그만 …. 자네가 청렴한 건 내가 잘 알지. 아니, 화 풀게. 내가 정말 실수했네.
아무튼, 그날 아파트 단지 안엔 아무도 없었어. 내가 분명히 봤다니까. 사람들을 모으고 자리를 만드는데 그 정도도 확인 안 했겠나. 단지엔 개미 한 마리 없었어. 내 장담하네.
어디를 보고 있었냐고? 당연히 우리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시위를 진행해야 하니까. 그러면서 간간히 단지를 향하고.
특이사항: 원주민 대표. 당일 술을 마시고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경범죄로 고발된 상태.

사건일지 4: 방씨. 원주민. 48-13 거주.
글쎄. 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내 평생 술이라곤 입에도 안 댔네, 이 사람아. 허허, 사람들이랑 같이 있었어. 그 자리에 빠질 수는 없잖은가. 그날 따라 분위기가 좀 고조되긴 했지만 특별할 건 없었고.
글쎄, 사람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한 건 아니지만, 워낙 사람이 없는 곳이잖은가.
그쪽에? 글쎄. 난 주로 다른 쪽을 보고 있었네만…
특이사항: 마을 원로. 유난히 말을 아끼는 분위기. 숨기는 것인지 평소처럼 말을 아끼는 것인지 모호함. 곤란한 질문엔 허허, 웃고 넘어감.

사건일지 5: 윤씨. 아파트 경비원.
전 그날 지하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뭐, 그러죠. 평소에도 원주민들이 시위를 자주 했죠. 어떤 날은 한 시간 정도 하다가 흩어지고, 또 어떤 날은 서너 시간 정도 했죠. 아마 매일 했을 거예요. 격일제 근무에다, 근무 장소도 돌아가면서 하거든요. 지하주차장, 아파트 지상 출입구, 아파트 단지, 내부 시설 관리. 그래서 어떤 날은 시위 장면을 못 보기도 해요. 지상 출입구에서 근무할 때만 확실하게 알 수 있죠. 지하에 있을 경우, 잠깐 바람 쐬러 나오는 경우에나 볼 수 있는데, 시간대가 안 맞으면 못 볼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경비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매일 시위를 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이들이요? 단지에서 근무를 할 때면 원주민 아이들이 종종 철망을 넘어 오거나 틈새로 들어와요. 아파트에 사는 애들과 친한 애들이 몇 명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근데 어른들 사이가 안 좋으니까, 정문으로 오긴 힘들죠. 몰래 오는 거죠. 보는 족족 다 쫓아 내요. 그게 제 일이기도 하니까.
철망 보수를 해야 하긴 하는데 시공업체와 관리업체에서 계속 미루는 중이죠. 자칫 원주민들을 더 자극할 까봐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다는 거겠죠. 진작 공사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 아, 아뇨. 그냥 혼잣말이에요.
아뇨. 걔는 본 적 없어요. 사람들이 입주를 시작할 때부터 근무했지만, 사람들을 모두 아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대충 얼굴은 다 알아요. 하지만 출입구에 근무할 때면 거주자들 사진이 있어서 대조할 수 있거든요. 시간이 걸려서 욕 먹지 않냐고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금방 찾죠.
얼굴을 잘 모르긴 하지만. …. 그게, 사실은, 아, 이거 절대 비밀이에요. 절대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인데요. 출입구에 카메라가 있어요. 그래서 카메라가 사람들 얼굴을 자동 인식해요. 사람들이 출입카드를 찍어야 하긴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거죠. 얼굴 형태와 카드가 일치해야 문이 열려요.
주민들이 아냐고요? 설마요. 관리업체에서 이번에 시험 운영하는 거라, 아직은 비공개예요. 절대 아는 척 하시면 안 돼요. 여기서 짤리면 곤란하거든요. 가족 생계가 이 일에 달려 있거든요.
이런 것도 말해야 해요? …. 파트너와 같이 살아요. …. 그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지 않나요?
아무튼 안면자동인식장치 때문에 제가 사람들 얼굴을 일일이 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걔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다들 학교 끝나면 학원 가느라 단지에서 노는 애들도 거의 없으니, 근데 그 자리에서 있었던 건 확실한 거죠?
특이사항: 관리실과 경비실에서 관리하는 사진을 확보할 필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