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공사를 시작한 후, 사람들은 멀리 돌아가야 했다. 건설업체는 원주민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년 *월부터 **년 *월까지 공사를 진행합니다. 통행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란 일방적인 문구가 불편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트럭, 레미콘 차량, 그 외에도 각종 공사 차량이 들락거렸다. 먼지 발생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시공법이라고 건설업체는 광고했다. 빨래를 실외에 널면 흙먼지로 지저분해 새로 빨아야 했다. 아울러 예전 같으면 5분 걸릴 거리를 30분 이상 돌아서 다녀야 했다. 주민들은 항의했고 업체는 외면했다. 자신들의 공법 자랑만 반복했다.

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높이 20층. 가장 작은 곳이 50평이란 소문도 있고, 80평이란 소문도 있었다. 주민들 중 이와 관련해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델하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분양을 하기는 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공사로 인해 발생한 흙먼지가 얼마나 심했는지만 알 수 있었다.

공사가 끝나고 조경정비도 끝나자 이삿짐을 실은 트럭들이 하루에도 몇 대 씩 도착했다. 벽걸이 TV와 같이 금액이 상당한 짐들이 기본 옵션처럼 달린 이삿짐 트럭이었다.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깔끔한 차림이었고 일처리는 처툴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밤에 불이 켜진 집이 서넛 늘어났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빈 집을 꼽을 정도였다.

아파트 공사가 끝났지만 원주민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다니던 길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시공업체는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이라며 외부인에게 단지 개방을 거부했다. 아파트 입주자의 확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다. 아파트 주변은 2미터 정도의 철망으로 막혀 있어 샛길로 드나들기도 쉽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강하게 항의했지만 아파트 관리업체는 표리부동, 복지부동이었다. 항의하는 원주민들 앞에선 웃는 낯으로 당장 시정할 것처럼 행동했지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불만은 단지 개방 뿐만 아니라 일조권 침해와도 맞물렸다.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인근 주택 주민 중 일부는 하루 종일 불을 켜고 살아야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조망권을 침해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더이상 옥상에서 한강과 산을 바라볼 수 없었다.

아파트 입주자들 역시 불만이었다. 입주자들은 원주민들의 항의를 기득권 행사로 이해했다. 그 동네는 전통적으로 이주자들에게 배타적이라는 소문이 많았다. 집성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4대째 혹은 그 보다 더 오래 그 마을에서 살았다. 근래에 우연히 이사 온 사람들 중 6개월을 버틴 사람이 없었다. 새로운 얼굴 중 6개월 이상 버틴 사람은 하숙생이거나 자취생이었다. 그런 마을에 세운 아파트가 분양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마을의 특성을 고려하여 집값을 인근 시세보다 1% 정도 싸게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집을 사기에 적기다.”고 언론에서 떠들었고 은행대출조건이 일 년 전보다 수월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래서일까? 입주자들은 시공업체와 관리업체가 원주민들의 항의에 제대로 대처를 못 한다고 불만이 많았지만, 정작 원주민들의 항의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을의 분위기가 급 냉각된 사건이 발생한 건 그 해 여름,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되고 사흘 정도 지나서였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한 명이 아파트 근처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그 초등학생 근처에선 마을 원주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분위기가 유독 험악했다. 확성기를 사용하는 건 기본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새총과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내키면 언제든 아파트를 향해 새총을 쏘거나 소주병을 던질 기세였다. 몇몇은 철망을 넘는 시늉을 했다.

나중에 경찰이 확보한 증언 중엔 소주병을 실제로 던졌다는 주장이 있었다. 주민들이 시위를 하는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깨진 소주병이 발견되어 그 증언에 신빙성을 더했다. 물론 원주민들은 2미터가 넘는 철망으로 막혀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항변했다. 경찰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미터 높이의 철망으로 막혀 있지만 물건을 던지거나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었다. 아파트 경비 중 한 명은, 원주민의 아이들 중엔 철망을 넘다가 자신에게 들킨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몇몇 입주자들은 원주민들이 당일 아파트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를 매수했다고 주장했다. 경비는 창백한 표정으로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했고 원주민들은 경비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당일 시위에 참여한 원주민들 중 몇몇은 그날 아파트 단지에 정장을 입은 이가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인상착의는 입주자들 중 한 명과 비슷했다. 입주자 대표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단언하며 원주민들이 자신들을 이간질하려고 없는 사실을 조작한 거라고 주장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정말 있었다면 오히려 원주민 중 한 명과 닮았다며 누군가를 지목하기도 했다.

경찰은 석 달에 걸쳐 원주민들과 입주자들을 설득한 끝에 그들 모두의 집을 구석구석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고, 나중엔 증언이나 제보 모두 카더라 통신 같아, ‘사실’과 ‘카더라 통신’의 경계가 모호했다. 정밀조사가 끝나고 다시 6개월이 더 지났다. 사건 이후에도 간간이 원주민들이 진행하던 시위는 조용히 중지되었다. 증언과 제보에 열성인 아파트 입주자들 중 몇몇은 야반도주하듯 다른 마을로 떠나갔다.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록 마을은 조용해졌고,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도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독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라고만 지칭하며 은밀히 얘길 나눴지만 드러내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은밀한 눈빛만 오갔다. 원주민이건 입주자건 ‘그 사건’을 직접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한 시라도 잊고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그건 마치 폭풍의 전야 같았다.

경찰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그건 ….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 이제 시작

얼추 한 달 전인가요? H님을 만났을 때, “Six Feet Under”란 미국드라마를 추천받았어요. 가족, 섹슈얼리티와 같은 주제로 상당히 재밌다면서요. 당시 제가 사용하던 사이트에선 관련 파일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지요. 그러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사이트에 있더라고요. 오오.

“Six Feet Under”, 즉 ‘6 피트 아래’는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는 깊이 같아요. 드라마가 장의사 가족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니까요. 뭐, 이렇게 말해도 사실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 밖에 안 봤어요. 이제 막 시작한 거죠. 그런데도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첫 편에서부터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하더라고요.

주인공 중 한 명이 게이로 나와서 그런 건 아니에요.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 드라마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이 나오는 건 이제 놀랍지 않아요(라고 쓰지만 제가 미국 드라마를 접한 건 이번이 처음-_-;;).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고 일상 생활에서 혐오 폭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남편 장례식장에서 자식들에게 자신이 바람 피웠다고 고백하는 엄마의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었죠. 후후.

제가 이 드라마에 꽃히기 시작한 장면은 따로 있어요. 남편/아버지가 고통사고로 즉사하여 가족들 중 일부가 시신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죠. 아내/어머니는 남편의 시신을 확인할 엄두를 못 내고 아들이 도착하길 기다리죠. 확인할 엄두를 못 내는 이유가, 죽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서?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아니에요. 시신을 보는 순간 일거리로 대할 것 같아서라고 얘기해요. 전 이 말이 슬픔을 회피하는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고 느꼈어요. 아들이 시체를 확인하고 오자, 엄마의 질문은 시체의 훼손 정도였어요. 그리고 관 두껑을 열어 둘 수 있는 정도인지를 물었죠. (미국의 장례식은 관 뚜껑을 열어 둬서 고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걸 상기하시길.) 행여나 시체 수습을 제대로 못 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나서, 사업(장의사)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한 거였어요.

전 바로 이 장면에 단박에 반했어요. 흐흐. 전 이런 게 좋거든요.

장례식을 치룬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장례식장엔 슬픔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장례식은(비단 장례식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행사엔) 일정 하나하나에 돈이 들죠. 손님을 대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인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까지, 모두. 적어도 제가 경험한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부조에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았어요. 그 금액이 결코 적지 않으니까요. 어떤 장례식장에선 고인의 빈소를 지키는 건지 부조가 든 통을 지키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죠.

전 이 풍경이 장례풍습까지 자본주의에 찌들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데 동의하지 않아요. 마치 돈과는 무관한 척 하는 태도는 좀 웃기지 않나요? 전 그런 태도가 무척 가식적이라고 느껴요. 그래서일까요? 드라마에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편, 사업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하는 태도가 너무 좋았어요. 가장 와 닿는 장면이랄까요? 슬퍼하는 태도 역시, 남편이 죽어서 슬픈 건지, 죽은 남편이 영혼이 되어 자신이 바람 핀 걸 알게 될까봐 슬퍼하는 건지 모호하고요.

아, 물론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안 했는데, 파트너가 장례식장에 찾아 와서 당황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도 좋았어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죠. 제가 다 불안하더라고요.

암튼, 이 드라마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네요. 전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에피소드 하나에 20분 정도라고 예상했지요. 근데, 한 시간-_-;; 그리고 이 드라마 이미 4시즌인가 5시즌까지 나와 있다는 거. ㅠ_ㅠ 암튼 언젠간 끝내겠죠.

트랜스/젠더화, 외모.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이번 달에 다 읽기로 한 영어 책이 이제 4쪽 가량 남았다. 낮엔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저녁에 한 시간 정도 읽으면 다 읽을 거 같다. 다 못 읽을 거 같아 걱정이었는데, 요 며칠 힘껏 달렸더니 간신히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읽은(?) 혹은 읽고 있는 책은 Reclaiming Genders: Transsexual Grammars at the Fin de Siecle로, 1990년대 후반, 트랜스젠더와 관련 있는 책들이 한창 출판되기 시작하던 무렵 나온 책이다. 특징이라면 영국에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이론가/활동가들이 편집했고,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글들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후반 즈음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과 관련해서 중요한 논문모음집이 많이 나왔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필자들의 글이 많이 실려 있어 반갑다는 게 더 정확한 평일까?

이 책엔 편집자 중 한 명인 케이트 모어(Kate More)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인터뷰한 글도 실려 있다. 이 글도 꽤나 괜찮다. 무엇보다도 내가 읽은 글에서 나타난 버틀러는 글을 쓸 때 어느 정도 감정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인터뷰에선 직접 표현하는 부분들이 상당하다. 일례로 “나는 ~~을 혐오한다.” “그건 정말 아니다.”란 식이다. 이게 인터뷰를 읽는 매력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Judy”와 관련해서다. 버틀러의 경우 워낙 유명하고 인기 가 있어서, 팬진이 있을 정도인데, 팬진의 이름이 “Judy”다. 내가 팬진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역시 버틀러야!’였다. 팬진이 있을 만하다고 느꼈고, 팬진을 구해서 읽고 싶어 종종 구글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구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버틀러는 Judy란 이름에 느끼는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Judy란 이름이 상당히 여성적인 뉘앙스이며, 사람들이 종종 “Ju~~~dy”라고 부를 때 나타나는 여성화 때문이다. 즉, Judy라는 이름은, 버틀러가 실천/수행하고 있는 규범적이지 않는 어떤 젠더를 규범적 ‘여성’의 틀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버틀러에게 느끼는 불안을 Judy란 이름을 통해, “결국 여성”으로 만들려는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틀러는 자신에게 유머감각이 없다고 비판한다 해도, Judy란 별칭이 내키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이 표현이 나의 어떤 경험과 닿았기에 내 몸에 울림을 줬다. 나 역시 어떤 특강에 가고 나면 비슷한 얘길 듣는다. 처음엔 ‘이성애 남성’처럼 여겨지는 이가 단상에 올랐는데, 그 자리에서 말하길 자신이 ‘레즈비언 트랜스’란다. 어떤 이들은 나의 일시적인 범주화를 부인하며 계속해서 ‘이성애 남성’으로 이해하려 든다. 또 다른 이들은 내가 ‘트랜스’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또 여러 반응이 있지만, 그 외의 무수한 반응을 직접 얘기해 주는 이들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튼, 나를 ‘트랜스’로 이해하기 시작한 이들은 강의가 끝난 후, 내게 다가와 “가까이서 보니 눈이 예쁘다.” “예쁘게 생겼다.”는 식의 말을 한다. 오프라인으로 날 아는 이들이라면 이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 테다. 트랜스여성은 “여자보다 예쁜” 존재란 이해가 만연하단 점에서 “예쁘다”는 식의 수식어는 “트랜스여서다움”을 지시한다. 나의, 소위 남자같은 부분은 “예쁘다”는 말 속에서 부정되거나 은폐된다. 버틀러가 Judy에 느꼈을 불편함이 나의 불편함과 비슷한 것만 같아, 공감하면서 읽었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했다. Judy란 이름의 의미를 고민하지 않고 너무 간단하게 고민했다는 점이.

누군가의 외모를 특정 젠더 혹은 특정 범주로 수렴하는 언어들은 만연하다. “결국 여성” 혹은 “결국 남성”이란 표현은 ‘나’의 다른 가능성들을 모두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삶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조금 다른 상상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굳건한 현재 사회의 이분법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상상력이 가능할까?

5월 중순에 긴장감 백배인 발표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서 이 고민을 공유하고 싶다.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일단 해보는 거다. 뭐, 어떻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