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알바

01
어제 저녁엔 어떤 기획회의를 했다. 본격 기획회의를 하기까지 6개월 정도 뜸을 들였다. 많이 부담스러운 일이라 걱정이다. 회의를 하면서, 이제야 구체적으로 시작하는 건가 싶었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대가 크다. 아직은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고, 공개에도 순서가 있다. 근데 공개하는 게 가장 어렵다. 나야, 이것 저것 하겠다고 말하고선 중간에 엎은 게 많으니 부담스럽지 않지만. 흐흐. 사실 이렇게 본격 기획회의를 하고 나선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아울러 나의 허접한 번역 실력과 문장 실력부터 어떻게 좀 해야 한다. ㅠ_ㅠ)

한동안 지렁이 활동을 쉬었다. 계기는 논문이었다. 근데 논문이 끝나도 다른 어떤 일이 있어 계속 쉬었다. 그 어떤 일과는 별개로 돌아가기 두렵기도 했다. 다시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활동이란 어떤 걸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카이브와 이야기 듣기(?) 프로젝트에 함께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지. 현재 표면적으로 두 개(잠재적으로 두 개 추가 예정-_-;)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면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약했다. 두 개의 프로젝트 역시 무척 즐겁고, 소중한 일인데도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기분이지, ‘활동’이란 그 무언가를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두 개의 프로젝트 역시 상당한 활동인데도, 그랬다. 이유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몸 한 켠이 무거웠고, 언제나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어제 기획회의를 하면서, 이번 주부터 지렁이 회의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엄밀하겐, 참여 해도 되냐고 물어야 하지만;;). 지렁이 활동을 하지 않고선,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공간, 기억이란 이렇게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다.

꼭, “돌아온 탕자” 같은 기분이다.

근데 여기서 두 가지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는, 이번 지렁이 회의는 일요일 저녁이란다. 두둥. 그 시간엔 다른 프로젝트의 선약이 있는데? ㅠ_ㅠ

02
5월 중으로(시작하는 날짜 미정-_-;;) 저녁 알바를 할 거 같다. 개인적으로 무척 선호하는 곳이다. 첫 한 달은 일주일에 6일을 나가기로 했고, 그 다음부터는 3~4일 정도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생계에 도움이 되니 잘 된 일이다. 근데 활동은? 회의는? 두 번째 반전은 이것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제

오후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분주하게 준비했던 행사가 한창인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비가 내리는 풍경을 구경했다. 가장 바쁠 법한 시간에 의외로 여유가 있었고, 긴장이 풀렸다. 어떤 글을 읽으며, 때때로 비가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며 조금은 어두운 복도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맞은 편 엘리베이터의 문에 비췄다. 어색했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 나왔고, 복도는 떠들썩 했다. 그 와중에 한 선생님께서 나의 이름을 확인하며 아는 척 해주셨다. 다름 아니라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에 실린 글을 잘 읽었다고, 대학원 수업 시간에 사람들이 재밌게 읽었다고. 고마우면서도, 솔직히 놀랐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고백하자면, 난 이 책에 실린 다른 분들의 좋은/흥미로운 글과는 별도로 나의 부끄러운 글로 인해, 읽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은근히 이 책을 읽거나 수업교제로 다루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고선, 놀라기 바빴다. 하긴, 어차피 이제 그 글은 나의 글이 아닌 걸. 누군가가 해석하는 글인 걸. 그럼에도 마치 나의 일부가 들킨 것처럼 겸연쩍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도 모두 방으로 들어가고, 복도에 혼자 남았다. 복도에 남길 원했다. 잠시나마 혼자 있고 싶었다. 정적의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편지를 읽으며.

글쓰기, 일상

웹서핑을 하다 “가해망상”이란 단어를 접했다. 어느 애니에 등장하는 용어란 말도 있고, 의학용어란 말도 있다. “피해망상”이란 용어와 대조를 이룬다고 이해하면 쉬울 듯 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망상과 달리, 누군가에게 가해하고 있다는 망상. 요즘의 내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용어 같아 웃음이 났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가해하고 있다는 인식. 그렇다고 가해망상이 있는데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일상이니까. 정말 피곤한 건 주변 사람들이다. 그러니 ‘실질적인 가해’는 “가해망상” 그 자체다.

나는 또 이렇게 별 내용 없는 글을 쓴다. 무언가를 쓴다는 건, 내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쓴 글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웹에서, 비단 웹만이 아니라 특정 기기를 통해 연결된 관계에서 글은 생존 여부를 알리는 신호다. 수신자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전파를 송신하는 행위다. 내가 그 어디에건 글을 쓴다는 건, 난 아직은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며, 특정 공간을 매개로 알고 지내는 이들은 그 글을 통해 나의 생존을 알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건, 그 내용이나 글이 풍기는 느낌과는 별개로 ‘난 여전히 잘 살고 있다’고 알리는 행위기도 하다. 글쓰기는, 그 신호를 수신하는 이들에게, 어쨌거나 아직은 글을 쓸 여력이 있음을 가장 먼저 알려 준다. 아울러 그 소재를 얘기할 수 있고, 그 소재를 얘기하려고 분투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알려 준다. 블로그 본문에 쓴 글이 건, 댓글로 쓴 글이 건 상관없이.

나는 살아 있고, 또한 잘 살고 있다. 몇 가지 피곤한 일들은 있지만, 그건 내 진부한 일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 체념이 아니라 부인할 필요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 단조롭고도 또 단조로운 일상. 이 정도면 무척 잘 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