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나는 숨을 죽이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으로 붉은 꽃이 피는 장면을 본다. 은빛 은은한 냄새가 코끝을 스쳐가고, 붉은 꽃은 내 삶의 한 사건을 기록한다. 한 송이 화사하게 피어난 붉은 꽃. 찬 공기 속에서도 붉게, 더 붉게 물드는 꽃 핀 자리. 나는 붉은 꽃 내음을 맡으며 시간을 기록한다.

추억은 완강하게 과거를 붙든다. 나는 피고 진 자리만 화사하게 남은 기록을 쓰다듬는다. 흔적만 남아 해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기록들.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이미 해석인 기록들.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서 나는 달콤한 향을 맡으며 지난 흔적을 해석하고 지금의 시간을 기록한다. 언젠가 희미해질 기록들. 붉은 꽃이었다는 것이 낯설어질 시간 정도가 흘러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기록들.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서 나는 쌩긋이 웃고 있다. 하루하루 희미해질 붉은 꽃 피고 진 자리에서, 단절과 이음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자리에서, 나는 어색한 듯, 반가운 듯 웃고 있다.

2009 겨울 KSCRC 아카데미 강좌 소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이번 겨울 처음으로 강좌를 연다고 해요. 주제가 다들 흥미로워요. 전 두어 강좌를 들을 거 같아요. 훗. 회원의 특적은 이런 식으로 누려야죠. 흐흐. 🙂

출처: http://kscrc.org/academy/ (공식 웹페이지라고 해요.)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관련 연구자, 그리고 인권과 퀴어 이론 등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위한 “생각나눔, 지식나눔, 배움나눔”의 장 – <2009 겨울 KSCRC 아카데미>가 열립니다.

<강좌1>
이론입문: 주디스 버틀러 읽기

강사: 권김현영 (국민대학교 강사)

이 강좌는 퀴어와 페미니즘 판에서 누구나 알고 듣던 이름이지만, 난해하기로 자자했던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을 함께 읽어보는 입문자들을 위한 기초 이론 강좌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이론화하는데 초기의 주디스 버틀러가 제안한 핵심적 개념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9·11 이후 정치와 사회, 윤리에 대한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변화에 대한 토론을 이루어지는 수업이 될 것이다.

총 5강 : 1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6만원 (센터회원 30% 할인)

1강 한국에서의 버틀러 읽기의 의미 (1월 8일 /목)
2강 퀴어, 페미니즘을 만나다. (1월 13일 /화)
3강 경계지대에서의 자아/주체/정체성 (1월 15일 /목)
4강 이 우울한 사회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1월 20일 /화)
5강 보편성을 근본적으로 해체한다는 것의 의미 (1월 22일 /목)

<강좌2>
십대 이반 워크샵: 페미니즘은 나의 힘

진행자: 타리(진보신당 성정치기획단, 순천향대 강사)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를 질문하기 전에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그것이 나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자. 실은 페미니즘 없이도 우리는 한동안 ‘잘’ 살아왔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나아가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십대이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날까? 페미니즘이 나에게 힘을 준다면 그것은 나의 삶을 좀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하도록 하고, 그래서 쉽게 좌절하거나 쉽게 분노하거나 쉽게 행복하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총 5회, 매주 금, 저녁 7~9시, 수강료 3만원 (* 이 강좌는 22세 이하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1. 브래지어를 푼 페미니즘 ( 1월 2일/ 금)
2. 가출을 일삼는 페미니즘 (1월 9일/ 금)
3. 수염을 단 페미니즘 (1월 16일 / 금)
4. 침대 위의 페미니즘 (1월 23일 /금)
5. 행동하는 페미니즘 (1월 30일 / 금)

<강좌3>
논쟁과 이슈: 남성성

지금까지의 젠더 연구는 대부분 여성을 분석해왔다. 이때 남성성은 여성을 타자로 놓아두면서 자기를 구성해왔다. 하지만 여성을 ‘타자의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남성성은 이와는 다른 의미체계 안에서 작동된다. 이번 강좌에서는 남성성이란 무엇인지, 왜 남성성 연구가 필요한지에 대한 개론적 접근부터 한국 근대 남성성의 형성과정,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그리고 남장여자까지를 통해 기존의 남성성 개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남성성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총 6강 : 2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7만원 (센터회원 30% 할인)

1강) 남성(성), 성차에서 분석 범주로 (2월10일/화)
— 정희진(<페미니즘의도전> 저자)
2강) 한국남성성의 역사적 형성: 식민지 자본주의와 이성애주의의 이중주 (2월12일/목)
— 권김현영(국민대 강사)
3강) 트랜스젠더: 외모로 해석하는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모호한 경계 (2월 17일/화)
– 루인(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4강) 남장여자배우의 남성성에는 뭔가가 있다? : 1950년대 여성국극을 중심으로 (2월 19일 /목)
— 김신현경(시립대 강사)
5강) 레즈비언의 남성성: 공존, 반전, 경쟁, 갈등하는 정체성 (2월 24일/화)
–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6강) 남성동성애와 남성성, 그 불안한 동거 (2월 26일/목)
— 박진형(중앙대 강사)

<강좌4>
흐름읽기: 신자유주의와 성적시민권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넘쳐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고 또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흐름읽기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쉽고 명쾌하게 강의하기로 유명한 강상구 진보신당 기획실장을 모시고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한국 사회의 앞날을 가늠해보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시민권 논의는 이제 성, 사랑, 관계, 가족을 빼고 논의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서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인 동성결혼 찬반 법안들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동성결혼 법관련 박사논문을 쓰고 돌아온 우주현 박사와 함께 성적시민권이 차별에 대항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인지, 이론적 공상적 개념으로 그칠 것인지, 한국 사회에 어떤 응용이 가능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총 4강 : 2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5만원,(센터회원 30% 할인)

1강) 대체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역사적 흐름과 금융세계화까지 (2월 4일/ 수)
2강)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명박정부의 정책평가 (2월 11일/ 수)
강상구(진보신당 기획실장)
3강)성적 시민’됨’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몇가지 이론적 서사 (2월 18일/ 수)
4강)성적 시민됨의 패러독스(paradox) – 영국을 중심으로 본 법개혁의 성과와 한계 (2월 25일/ 수)
우주현(영국 요크대학)

분리 불안, 관계, 불안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엔 언제 연락을 할지 알 수 없는 애인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청소를 할 때도 청소기 소리에 전화벨을 못 들을까봐 얼른 끝내고, 잠시 외출하러 간 사이에 전화가 올까봐 재빨리 달려갔다 오고. 어떤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 에르노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집착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이유’나 ‘원인’을 기술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나는 에르노의 모습에서, 특정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분리 불안을 읽었다. 단지 떨어져 있길 싫어하고 떨어져 있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연락이 없으면, 간단한 인사라도 없으면 이미 관계가 끝난 거라고,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관계가 끝날 거라는 불안. 이런 불안을 읽었기에, 나는 에르노의 소설이 무척 좋았다. 소설 속 화자, 혹은 에르노 자신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언젠가 이곳, [Run To 루인]에도 쓴 거 같다. 초중고등학생 시절 해마다 반이 갈리면 이전 해 같은 반이었던 사람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한동안 난 이런 나의 행동이 무심함, 냉혈한 같은 성격 때문이라고 믿었다. 사람에 무관심해서 이런 거라고 스스로 납득하고 살았다. 근데 아니다. 전혀 아니라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난 반이 바뀌면 관계가 끝나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던 거 같다. 더 이상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데 굳이 인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던 거 같다. 상대방이 굳이 내게 인사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연락 없는 동안 관계가 끝난 상황, 연락 없음 자체가 이미 관계 종식으로 이해하는 상황, 상대방은 이미 끝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상황, 난 아직 안 끝났는데 상대방은 끝냈을 지도 모른다는 상황. 에르노가 그토록 불안했던 이유는(에르노만의 상상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이런 상황들 때문이 아닐는지.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건 한순간이란 것을, 가장 기쁜 순간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지금 즐겁게 인사하고 헤어졌지만 몇 시간 떨어져 있는 순간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불안했던 게 아닐까.

이런 말 하면 어떤 사람은 신기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경악하겠지만, 난 연락 없음은 곧 관계의 종식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난 친한 친구와도 몇 달 씩 연락 없이 지내곤 하는데 한동안은 이런 연락 없는 상태에 무심해서 신경을 안 쓰는 것으로 믿었다. 근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나의 맥락에서 연락 없음, 인사 없음은 곧 관계의 종식을 의미하기에 누군가 내게 연락이 없다면, 의도적으로 무심하게 지나친다면 그건 곧 관계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어제 즐겁게 지냈다고 오늘도 즐거울 거라고 믿지 않는 나는, 어제의 만남과 오늘의 만남 사이 시간동안 마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나 같은 인간이야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물론 모든 관계를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친밀한 관계일수록 불안은 강하다. 친하다고 믿는 관계일수록 불안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매일 이별하고 새롭게 만난다.

날마다 새롭고 낯설지만 낯익은 관계. 언젠가 누군가에게, 어제 만난 그 사람이 오늘도 같은 사람일 이유가 어딨냐고, 내겐 때로 완전히 낯선 사람같다고 말한 적 있다. 상대방은 기이한 소릴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날마다 이별하고 날마다 새로 만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는 단절과 이음의 연속을 반복한다. 그래서 나의 관계엔 언제나 삐걱거리는 소리,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제와 오늘의 불연속, 매끄럽지 않은 이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난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이별을 고하고 있다. 혹은 이미 이별을 고했다.

사실은 이런 이유다.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 무심하려고 애쓰는 건. 내가 “쿨”하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의 불안이 버거워서 들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