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체감 시간으로 아득한 옛날이라 할 수 있는 1900년대 초반, 하이데거가 감정상태(mood)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걸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감정과 이성을 분명하게 잘라서 구분하며 감정이란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 것만 같은 그 시대에 감정이 사회 속에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란 걸 지적하다니…. 물론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인지 긍정적인 의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난 다른 글에서 인용한 부분을 읽었을 뿐이니까. 글에선 다소 긍정적인 맥락으로 사용했으니, 그러려니 한다.

그럼에도 종종 나의 감정은 외부와는 무관한 어떤 것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내 몸 안에서, 오랜 시간 침잠해 있던, 근원 조차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몸을 휘젖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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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혼자 신나서 이것 저것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싶었던 블로그 개편안은 폐기되었습니다. 흑흑.
차마 runtoruin.com 호스팅으로 실험은 못 하고, 놀고 있는 호스팅으로 이곳과 동일한 조건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모색했지요. 일단 동일한 조건을 만들고, 이곳의 데이터를 백업시키는데… 백업이 안 된다는…. 허억. ;;;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거란 점인데요. 혹시나 누군가 이곳을 해킹한다면, 이곳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으하하. ㅡ_ㅡ 조금 불안하긴 하네요;;; 정말 뭔가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겠어요.

플라나리아, 정체성

야마모토 후미오. 『플라나리아』 양윤옥 옮김. 서울: 창해, 2006.

#전 분명 인터넷교보에서 구매했는데, 제게 도착한 책은 “증정본”이네요. 기념으로 그냥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ㅡ_ㅡ;;

아옹 님의 리뷰를 읽으며, 근래 읽었던 논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성형수술, 몸 변형, 외과의술의 발달과 같은 주제의 논문들이었습니다. 그 중엔 장기이식수술을 다룬 논문도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장기이식수술이 필요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 “선물”과 같은 표현을 한다네요.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걸 읽은 적이 있어요. 몰랐습니다. 이런 표현이 사실은 수술이란 제한된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란 사실을. 장기이식수술을 경험한 이들은 이식한 장기와 기존의 몸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합니다. 타인의 장기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걸린다네요. 그래서 종종 이식한 장기를 얘기할 때 “나의 장기”와 “그의 장기”란 표현을 동시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몸의 경계를 새롭게 고민하는 계기였습니다. 이식한 장기, 혹은 의학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병든 부위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요? 내 몸은 어디까지 일까요? 전,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비염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습니다. 비염약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죠. 몸 근처에 비염약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비염이 터질 것만 같아 불안해요. 코가 조금만 간질간질하고 불안해도 비염약을 먹고요. 몇 시간 가볍게 외출해서 비염약이 든 가방을 챙기지 않을 때면, 그냥 비염약을 먹고 나갑니다. 이런 상황이니, 주변 사람들은 수술을 권합니다. 어렵지 않게 수술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하지 않아요. 돈이 없기도 하지만 꼭 그래서는 아닌거죠.

『플라나리아』란 소설집에 실린 단편, 「플라나리아」의 주인공은 유방암을 자신의 정체성,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로 설명합니다. 아옹 님의 설명을 읽지 않았다면 잠시 당황했을 거 같아요. 의사들은 제거(‘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여기고, 주변 사람들은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금기로 여기는 무언가를 ‘정체성’으로 부르다니요. 아, 그렇지요. 사실 ‘정체성’이란 그런 거지요. 그러고 보면 전 이곳, [Run To 루인]에 저의 비염 경험을 참 많이 적었습니다. 비염은 저를 설명하는 중요한 경험이죠. 그럼에도 이것을 ‘정체성’이란 식으로 상상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 전 수술을 할 것 같지 않아요. 그렇다면 평생 비염과 함께 살아 가겠죠. 가장 고전적인(!) 의미에서, 제게 비염이 ‘정체성’이 아니면 무엇이 ‘정체성’이겠어요. 타고났고, 평생 변하지도 않을 것 같잖아요. 😛

비염은 저에게 무엇일까요? 비염이 터질 때마다 구시렁거리고 언제나 피하고 싶지만, 비염은 바로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럼 내 몸의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나는 나를 어디까지로 제한하고 상상하는 걸까요? 부인과 인정이란 과정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영역,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어딘가가 경계려니 하면서도 아득해요.

이런 고민들과 별개로, 이 소설집은 무척 좋아요. 하루는 밤 늦게까지 읽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다음 날 오전엔 저도 모르게 졸았고요. 흐흐.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좋아요. 「네이키드」란 작품도 무척 좋아요. 다 읽고 나서 저자 이름으로 검색하니, 꽤 많은 책이 번역되어 있어 놀랐습니다. 도서대출증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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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분투(xubuntu)에서 AbiWord란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했습니다. 즉, 오랜 만에 나스타샤로 글을 쓰고 있다는 거죠. 흐.

영생(?), 맥 어드레스 수집

01
만약 내가 죽고 나면 이곳, [Run To 루인]은 어떻게 될까, 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아마도 온라인에서 생산한 글은, 도메인 계약 기간이 끝나면 사라지겠거니 했다. 다시 내용을 확인할 만한 성질의 글이 아니라, 확실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 결론을 수정해야 한다. 난 아마 내가 죽은 뒤에도 영생하리라. 나의 일부는 내가 아는 어딘가에 있고, 나의 일부는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다. 구글은 매 순간 나의 일부를 백업하고 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곳에 저장되고, [Run To 루인]은 사라져도 구글을 통해, 검색사이트를 통해 나는 계속해서 출현하겠지. 내 일부는 온라인 어딘가를 떠돌고 있으리라. 검색봇의 서버 속에서 영생하리라.

02
윈도우가 아닌 운영체제로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선 맥 어드레스를 제공해야 한다. 맥 어드레스가 컴퓨터에 부여한 고유 번호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게 정확하게 무언지 알아야, 학교에 조공(!)을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맥 어드레스를 제공하면 이를 통해 개인 컴퓨터를 관리하려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했다. 학교라면 충분히 그럴 테니까. 하지만 귀찮아서 정확한 내용을 찾길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

최초 출처는 여기( http://openweb.or.kr/?p=975#comment-23759 )
최초 출처에서 링크한 곳은 여기(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3/28/3344345.html?cloc=nnc )

인터넷으로 은행업무를 비롯하여 금융결제를 하려면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할 것을 강제하는 건 다들 아실 듯. 이상한 프로그램 설치하라고, 동의하지 않으면 결제 안 된다는 팝업 창이 마구마구 뜨는 데, 그게 소위 말하는 보안 프로그램. 이들 프로그램이 정말로 보안 능력이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설치한 프로그램들의 보안 능력에 회의적이라는 것은 언급하자. 물론 나로선 잘 모르는 영역이다. 그러니 여러 글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주장을 믿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난 보안 능력에 회의적인 주장을 믿기로 했다. 심심찮게 인터넷 뱅킹을 해킹하여 자신의 돈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예전에 암호학 수업 시간에 살짝 들은 내용도 있고 해서.) 동의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 하는 과정에서 각 컴퓨터의 고유 맥 어드레스를 수집한다는 것이 기사의 첫 번째 내용. 그럼 맥 어드레스가 어디에 쓰이냐고? 맥 어드레스를 알면, 당신이 인터넷으로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단다. 이것 역시 기사에서 설명하고 있다. 바로,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학생들 개인 컴퓨터에 설치할 것을 요구한 프로그램과 같은 성질이라 할 수 있다.

03
요즘은 그날 그날 읽어야 할 분량의 논문이나 영문 책 읽기, 소설 책 읽기, 그리고 웹 서핑 하면서 컴퓨터/인터넷/보안 등과 관련한 글 찾아 읽기, 학회 일 하기, 프로젝트 숙제 하기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픈소스와 관련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글들을 읽다 보면, 이런 분야를 조금은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흐흐. 내가 개발자가 될 건 아니니 자세히 알 필요는 없을 터. 다만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조금은 알고 싶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컴퓨터와 관련해서 중얼거리는 일이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