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다른 글을 쓰려다가 내일 즈음 쓰는 게 좋을 거 같아 대체한 글;;

01
만우절을 앞두고 이곳, [Run To 루인]에 어떤 장난을 칠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귀찮아서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오늘 아침 불현듯 어떤 장난을 치고 싶었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저의 의지가 아니라 호환성의 여부에 있습니다. 후후후. 더 늦기 전에 해결할 필요가 있는 일이기도 한데 그 시기가 우연히 만우절일 뿐입니다. 😛

02
올 해도 생계와는 거리가 먼 프로젝트를 몇 개 할 것 같아요. 또 다시 생계비는 바닥. ㅠ_ㅠ 전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습적인 회의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여건이 고정적인 알바를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인데요, 문제는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알바를 하나 더 해야 한다는 거죠. 일당제 알바 환영합니다. 흐흐. 시키는 일은 뭐든지 최선을 다 할 자신은 있어요. 결과물은 보장할 수 없지만. 케케.

알바 자리를 고민하다가, 제가 상상하는 알바의 대부분은 인터넷 서점에서 책 포장 알바, 편의점 알바와 같은 종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편의점 알바를 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제가 한 알바의 틀에서 못 벗어 나네요. 저도 모르게 특정 계급, 특정 위치의 양식을 몸에 익힌 거죠. 전 제가 단순 알바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죠. 이건 어린 시절 제가 살았던 집의 계급도 반영해요. 흐흐. 재밌어요.

03
똑똑하게 하루에 두어 시간 연습하는 것보다 무식하게 매일 열 시간을 연습하는 게 낫다. 어느 기타리스트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문장을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니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었습니다. 전 똑똑하지도 않는데, 무식하게 연습하지도 않네요. 이렇게 쓰면서, ‘난 지금 반성하고 있다고!’ 우기며 어물쩡 넘어가는 나날입니다. 켁.

04
기어이 봄이 오네요….

우분투로 무선인터넷을 하다!!!

어제부터 우분투(엄밀하게는 Wu-bi)로 무선인터넷을 하고 있다. 으하하!!! 그동안 상당한 시간을 들여 무선인터넷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사흘 전 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나의 무선랜카드는 atheros 802.11이고 우분투는 8.10버전인데, 이 사이트(http://opensea.egloos.com/4755568)에서 제공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으하하. 다만, 이틀 전엔 이상하게도 무선인터넷 연결이 끊겨 포기했는데, 어제부턴 잘 된다. 지금은 학교에서도 우분투로 무선인터넷을 하고 있다. 히히. 물론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무선인터넷은 아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선인터넷은 윈도우 계열의 OS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OS를 사용하려면 관련 부서에 신청해야 한다. 근데 가능한 무선인터넷을 검색하니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잡히더라. 우히히.

우분투가 무엇이 좋으냐면, 글쎄. 다른 건 모르겠고 해킹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전하단 점이랄까. 연일 터지는 해킹, 보안, 바이러스 문제가 거의 다 윈도우 계열에 해당하니 이제 조금은 안심이다. 윈도우 계열을 사용하지 않기에 발생하는 불편함은 내가 감수하면 그만이다(물론 결제를 해야 할 땐 윈도우 계열을 사용해야 하지만). 조금 더 불편해도, 조금 더 안전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다고 믿으니까. 어쩌면 리눅스 계열이 좀 더 안전하다는 믿음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다. 어떤 환상을 더 믿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다. 다만, 우분투를 사용함으로써 학교에서 나의 후치(노트북)를 더 이상 감시할 수 없는 건 확실한 거 같다. 그래서 조금 더 기쁘다. 후후.

아울러 곤란하고 낯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제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문제를 해결할 차례. 그리고 우분투용 방화벽을 설치하고 설정하는 방법을 배울 차례. 일반 사용자에겐 방화벽을 설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흐.

사실은 왕자가 무서웠던 거죠.

「가시장미 공주」(Little Briar-Rose) 혹은 「숲 속의 잠자는 미녀」(The Sleeping Beauty)란 제목으로 알려진 동화를 읽었습니다. 성인용과 아동용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동용으로 읽었어요. 재밌더라고요. 제가 기억하는 내용과 달라 더 흥미로웠어요. 전 막연하게, 마녀의 저주로 잠이 든 공주를 왕자가 구하는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재수 없었죠. 근데 아니었습니다. 아동용이란 점을 감안하고 읽어도 무척 흥미로운 텍스트였습니다.

어느 나라의 왕과 왕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납니다. 둘은 너무 기뻐 큰 잔치를 엽니다. 그 나라엔 열세 명의 현명한 여인들이 있었는데, 요리를 대접할 금접시는 열두 개 뿐이라네요. 그래서 한 명을 안 불렀습니다. 열두 명의 여인들은 차례로 공주에게 선물을 합니다. 열한 번째 여인이 선물했을 때 초대받지 못 한 여인이 와서 복수합니다. 열다섯 살이 되면 물레에 찔려 죽을 거라고. 아직 선물을 주지 않은 여인이 죽지는 않고 100년 동안 잠만 잘 거라고 저주를 바꿉니다. 저주를 피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저주는 실현되기 마련. 공주의 미모가 유명하여 많은 왕자들이 공주를 보러 갑니다. 성 주변이 장미가시덩굴로 쌓여 실패합니다. 어떤 왕자는 가시에 찔려 죽었다네요. 그러다 한 왕자가 뒤늦게 소문을 듣고 시도합니다. 그때가 마침 100년이 지난 때라 쉽게 들어갑니다. 왕자는 잠든 공주의 미모에 반해 제멋대로 키스합니다. 공주는 깨어나고 둘은 결혼해서 잘 산다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왕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마법이 풀릴 시기에 성에 들어갔으니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왕자가 공주를 구했다는 식으로 이해된다면 웃긴 거죠. 공주를 구한 사람은 죽음을 백 년 동안의 잠으로 바꾼 여인이지요. 사실 접시가 모자라다고 초대하지 않은 왕과 왕비가 더 웃겨요. 아무래도 코미디 같네요.

「백설공주」(Little Snow White 혹은 Snow-White)라고 알려진 동화도 읽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로 더 유명하지요.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이 창틀처럼 까만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왕비가 말하니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왕비는 죽고 새엄마가 들어왔습니다. 그 유명한 거울도 나옵니다. 왕비는 여러 번 시도하여 공주를 죽이려 합니다. 사냥꾼, 허리띠, 독빗, 독사과를 이용하는데 독사과에서 죽은 것처럼 잠듭니다. 죽지는 않습니다. 난장이들은 슬퍼하여 유리관에 공주를 눕히지만 매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 모습에 반한 왕자가 공주가 누워 있는 유리관을 자신의 성으로 가져 가려 합니다. 짐꾼들이 이동하는 와중에 유리관이 흔들리자, 공주의 목에 걸린 독사과가 “툭 튀어”나옵니다. 왕자는 그간의 정황을 얘기하고 결혼합니다. 그 후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이 창틀처럼 까만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왕비가 말했는데, “피부는 눈처럼 희고, 입술은 피처럼 붉고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검”은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림형제가 유럽인이란 게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피부색이 검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왜 딸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이상적인 미인상이 눈처럼 흰 피부와 피처럼 붉은 입술, 검은 머리카락이었을까요? 사실 전 여기서 다른 어떤 이미지를 상상했습니다(관련 글을 쓸 계획이라 여기선 생략하지요). 암튼 여기서도 왕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공주의 목에 걸린 독사과를 빼낸 건 왕자가 아니라 왕자의 짐꾼이지요. 근데도 왕자가 공주를 구한 것 같아요. 계급과 신분 정치죠. 공은 상관에게 벌은 부하에게.

제가 두 편의 동화를 읽은 건, 어제 읽은 어떤 논문때문이지요. 이 논문은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잠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논문이에요. 이 논문에서 위에서 언급한 두 편의 동화를 같이 분석하고 있어서, 저녁에 도서관에서 복사하여 玄牝에서 읽었습니다.

앞서 썼지만, 다시 읽으니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왕자는 언제나 마지막에 뜬금없이 혹은 우연히 등장하지만 마치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려진다는 걸 깨달은 것도 즐거운 경험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결말이 재밌어요. 일부 페미니즘 비평은 이 구절을 결혼이 여성의 삶의 종착지로, 궁극의 행복 단계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합니다. 동화를 다시 쓰는 작가들은 결혼을 거부하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공주의 모습을 그린다거나, 공주를 흑인으로 그리기도 하죠. 전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말이 공주에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왕자에게 해당하는 내용이지 않을까 의심했습니다.

프로이트란 양반은, 건강한 상태에선 시각적 쾌락이 접촉 쾌락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눈으로 보았다면 그 다음엔 만지고 싶어 한다는 건가요? (일전에 유사한 내용의 광고문구가 등장하여, 뜨악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화의 내용으로 돌아가면, 왕자는 언제나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습니다. 공주가 저주 받아 깊은 잠, 죽은 것 같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잠에 빠진 이후에야 왕자가 등장합니다. 왕자들이 발견하는 공주는 침대 위에서 잠들거나 유리관 속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사진에서 얘기하는 피사체라고 할까요? 「백설공주」의 경우엔 오직 시각으로만 접근 가능하고 접촉이 불가능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왕자들은 미모라는 시각 경험에 대한 욕망으로 공주들에게 접근합니다. 아동용이란 점을 감안해야 겠지만, 이 동화들에게 흥미로운 점은 시각 경험은 무척 많지만 신체 접촉과 관련한 경험을 기술하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공주와 왕자가 만나는 장면도 눈을 마주친 후 반한다는 식이죠. ㅡ_ㅡ;;

이쯤되면,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실제 지시하는 인물은 왕자일 가능성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죠. 왕자는 시각적 쾌락을 원할 뿐 신체 접촉을 바라지 않는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피사체로서, 죽은 것만 같은 공주를 바라보고 싶을 뿐이죠.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공주를 원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론은, 공주가 결혼하여 행복했다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왕자는 공주가 말을 하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자 너무도 무서워요.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가 아니며 시각적 쾌락 이상의 존재로 다가오는 게 두려운 거죠.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성급한 결론은 왕자의 두려움, 공포를 은폐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그림 형제가 1800년대 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이 혐의는 더 짙어지네요. 당대는 시각 경험을 중시하는 한편, 공장제 도시 산업화 과정에 따라 노동의 성별분업을 기획한 시기거든요. 이성애 결혼은 당대 사회를 유지케 하는 주요 제도였죠. 아울러 여성 해방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이 발생하고 활발히 전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남성들’이 움직이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여성’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결혼이 ‘여성’에게 최고의 행복이란 함의가 담긴 구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피사체로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 공포를 은폐하는 구절일 가능성이 더 크네요.

뭐, 어제 밤에 이 동화를 읽으며, 그 전에 읽은 논문의 내용을 떠올리며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이러고 노는 걸 좋아해서, 어제 밤엔 무척 즐거웠습니다. 흐흐.

※한글 번역판은,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그림 동화집』 이민수 옮김. 서울: 노블마인, 2005(제가 읽은 건 초판 4쇄의 2006년 1월 10일 발행판).
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