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쓰면서 느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쓰는 글의 독자는 누구인가였다. 학위논문이기에 심사위원들이 대상인지, 석사논문을 쓰고 있기에 관련해서 공부하려는 학부생들이 대상인지, 아님 석사논문에 요구하는 수준으로 여성학과 혹은 젠더 이론에 기여할 어떤 막연함인지 헷갈렸다. 학위논문이란 점에서 예상 독자는 모호했고, 나의 욕심 속에서 독자는 분명했다.
나는 이론으로는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천을 하지 않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다. 외국에선 상당히 풍성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이론의 일부를 정리한 나의 글은, 바로 이런 이유로 누군가에겐 진부한 이론이다. 젠더 이론과 관련한 책을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한없이 태만하고 진부할 내용일 테다. 그럼에도 나는 이 얘기를 해야 했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그 얘기를 트랜스젠더나 비규범적인 방식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이들과 관련해서 얘기하거나 고민할 땐 별개로 감안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젠더는 고정되지 않은 것이라는 걸 안다고 말하면서도 트랜스젠더들은 왜 성을 바꾸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는 말하지만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과 관련해선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바로 이 욕망은, 내가 상상하는 또 다른 독자들 때문에 진부하다. 트랜스젠더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나의 글에서 하는 얘기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을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비규범적인 방식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비비꼬아서 하고 있으니 웃길 따름이다. 이 부분이 나의 고민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의 소심함이 발동했다. 지금까지 쓴 나의 글들처럼,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심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진부할 수밖에 없다. 너무도 익숙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이 진부함을 문자로 표현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결국 나의 글은 내가 원하는 독자들 모두에게 진부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진부한 얘기를 몇 달이나 생색을 내며 썼다는 사실이 좀 웃길 뿐이다. 아마 내가 상상하지 않은 어떤 사람들에게만 낯선 얘기일 테다. 물론 내가 상상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낯설거나 새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익숙하다고 말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논문에서 요구하는 언어 말고, 대화 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설명하면 “그건 너무 당연하잖아”라는 반응이 나올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 주제를 학제나 논문의 언어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간결하게 설명했을 때 그의 표정은 ‘당연하지’였다. 난 그 표정에서 용기를 얻는 동시에 걱정도 얻었다. 이 진부한 얘기를 꼭 이렇게 풀어야 할까, 하고.
이론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Run To 루인]에 오시는 분들에겐 새로울 것 없는 이론/언어로 설명하고 있고, 커뮤니티건 운동이건 관련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겐 바로 이런 이유로 진부하고. 나는 이 사이 어딘가에서 조율하는데도 실패하며 이도저도 아닌 상태란 걸 깨닫고 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하긴 항상 새로울 필요가 없다는 건 알면서도, 그냥 내 고민을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중얼거리면서도, 변화에 강박이고 진부함을 못 참는 나는 나의 진부함을 못 견디고 있다. 물론 진부함과 새로움은 나의 몫이 아니다. 내게 진부한 내용,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이건 진부하다고 느낄 거라고 가정했던 내용인데 새롭다는 반응이 돌아온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너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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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는 아무려나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고 재판관의 엄지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다. 다음 주 수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