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얼추 열흘 전, 지도교수에게 논문의 서론 중 일부를 제출했어요. 그리고 며칠 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서론을 읽다가 저에게 질문하거나 지적할 내용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결국, 가져가서 새로 써오란 얘길 들었어요. 흐. 선생님 연구실에 가서 제가 제출한 서론을 봤는데요…. 총 11쪽의 분량 중 2쪽까지 읽고 중단하셨더라고요. 그리고 그 두 쪽은 몇 문장을 제외하면 선생님의 지적을 피해간 곳이 없었습니다. 학과 사무실에 돌아와 몇 사람들에게 이걸 보여주니 기겁을 하더라는. 사람들은 저에게 괜찮으냐고 물었지요. 걱정은 서론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먼저 하셨어요. 다음날 아침에도 사무실로 전화해선, 저에게 충격 받아서 쓰러지지 않았나 걱정해서 전화했다고 하셨고요. 🙂

논문심사와 관련해서 선생님과 관련해서 제가 전해들은 두 가지 일화가 있어요.
선생님에게 논문을 쓰던 한 학생이 선생님께 논문 초고를 제출했는데, 선생님의 논평이 적힌 걸 돌려받곤 다음날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 하나. 석사학위논문 심사를 선생님께 부탁했는데, 박사학위논문 심사는 선생님께 부탁하지 않았다는 거, 둘.

그럼 저도 충격을 많이 받았냐고요? 아뇨. 전 너무 기뻤어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도끼를 만난 느낌이었거든요. 내가 조금이라도 대충 쓰면, 그걸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지적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거, 정말 든든하잖아요. 그래서 기뻤어요. 이 문장엔 주어 없고, 이 문장과 저 문장은 비슷한 내용으로 중복이고, 이 문장과 저 문장은 한 문장으로 줄이고, 이 두 문장은 논리적인 연결이 약하고…. 이렇게 지적받은 두 쪽을 수정하는데 세 시간이 걸렸지요. 그러며 석사논문은 글쓰기 훈련이란 말을 실감했어요. 전 지금 문장 쓰는 법부터 글쓰기 방법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고, 훈련하고 있어요.

선생님의 논평이 적힌 서문을 받아들고 나서, 초고를 제출하지 말고 일단 다 쓴 다음에 어느 정도 퇴고를 해서 제출할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이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면 나중에 조율하거나 수정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며 만약 자기와 처음부터 조율을 하고 논문을 쓰면, 나중에 논문심사 중에 자기와 조율한 부분이 문제가 될 때 지도교수 탓이라도 할 수 있지만 다 쓴 다음에 가져오면 그럴 수도 없다는 말을 덧붙였어요. ㅠ_ㅠ (제가 다니는 학과의 특성상 운영위원 교수들의 전공이 다 다르고, 전공마다 논문을 쓰는 방법이 달라 이런 고민을 해야 하죠. 근데 전 영문학 형식을 따른 것도 괜찮다고 고민 중이에요.) 너무 고마웠어요.

사실 전 석사가 끝나고 계속 공부를 한다면 어디서 할지 아직 결정을 안 한 상태죠. 근데 만약 한국에서 계속 공부를 한다면,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할 거 같아요. 물론 다른 곳으로 옮길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요. 이건 학제의 문제는 아니고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요. 하지만 계속 다니고 싶다는 고민도 해요. 유일한 이유는 지도교수죠. 하긴. 그러고 보면 한 때 지도교수 믿고 영문과 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죠.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