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초기 감상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거의 항상 어둡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배경이 밝은 영화도 많지만, 이상하지, 내겐 이 시기를 다루는 영화는 다 어둡다는 편견이 있다. 일례로, 『스위니 토드』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정확하게 몇 년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읽으며, 틀림없이 19세기 후반일 거라고 단언했다. 내게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서유럽은 『스위니 토드』 속의 풍경, 느낌과 거의 일치한다.

이틀 전에 쓴 글에서, 『드라큘라』를 읽고 있다고 썼다. 사실, 그 글을 쓰고 나서 다른 책을 읽었다.-_-;; 얼른 다른 책을 읽고 『드라큘라』를 다시 처음부터 읽다가 문득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읽었다는 걸 까먹었다는 건 아니고. ;;;

이 소설은 자연환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주인공의 감정,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소설을 읽다가 나는 이 책이 언제 처음 나왔는지를 확인했다. 1897년.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설의 초반은 동유럽에 위치한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하커(소설 속 화자)는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러 마차를 타고 가는데, 가는 곳에 울창한 전나무나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린 건, 이 풍경이 영국 런던의 산업화에 따른 공장의 증가가 연출하는 분위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스위니 토드』만이 아니라, 산업화에 따른 어두운 풍경이라면 어떤 풍경이라도 무방하다. 『드라큘라』의 작가 스토커(Bram Stoker)는 의도적으로 자연의 풍경을 산업 도시의 어두운 모습과 겹치도록 묘사한 건 아닐까 싶을 뿐.

물론, 책을 끝까지 안 읽었으니 쉽게 단언할 수는 없다. 영국의 풍경은 어떻게 연출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재밌는 부분은 (어쩌면 이 시기 소설의 특징일 지도 모르는데) 귀신, 요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하커의 태도다. 이런 태도는 그 시대 인간상의 전형일 터. 인간을 어떻게든 합리적인 존재로 설명하려는 당시의 맥락에서 하커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하다. 합리성을 강조하던 시대에 비합리적인 존재로 여기는 흡혈귀가 등장한 것이 흥미로울 뿐. 이건 그 전, 몇 백 년에 걸쳐 일어났던 마녀사냥의 환기일까? 아님 ‘과거의 유물’을 어떻게든 없애려는 기획일까?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 방법이 산업 사회를 떠올리게 한 건, 저자의 의도일 수도 있다.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던 당시의 분위기, 알 수 없는 자연을 알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당시의 분위기가 자연과 도시를 겹치게 한 건 아닐는지.

아무려나, 또 한 권의 무척 매력적인 책을 읽고 있는 기분이다. 후후. 『프랑켄슈타인』과 『투명인간』에 이어, 『드라큘라』도 글을 쓸 때마다 활용할 거 같다. 흐흐.

+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은근슬쩍 ‘퀴어’한 분위기는 어쩐담. 후후.

책, 글, 계획

요즘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학회 간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즈음이면 벌써 몸에 익어 능숙해야 하지만, 삽질을 핑계로 늦게 시작했더니 아직도 어색하다. 낯설고 새로운 일이다보니 매 순간, ‘뭔가 잘못 처리한 건 아닐까?’ ‘뭔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이라면 ‘제가 아직 잘 몰라서요.’라고 어물쩍 넘기기라도 하겠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넘어갈 수 없는 단계다. 그러니 불안에 불안이 겹치고 있다. 아마 이 모든 불안 없이 어느 정도 능숙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고, 1년의 일정을 조망할 수 있을 즈음 일이 끝나겠지. 1년만 일하는 거라 그렇다. -_-;;

이런 불안과 조바심이 유발하는 문제는 업무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일을 못 하게 한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조금 불안해서, 책을 읽거나 빈둥거리는 걸 제대로 못 하게 한다. 일종의 (말도 안 되는)죄의식이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기도 하다. 아직은 완벽하게 혹은 깔끔하게 일처리를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불만이 가득해서 생기는 ‘죄의식.’

그런 와중에도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하루에 한두 쪽을 읽더라도 책을 놓지 않고 읽으려 애쓰고 있다. 형식적이라 해도, 습관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니까.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드라큘라』. 예전에 『프랑켄슈타인』과 『투명인간』을 읽었는데, 일종의 연장선상에 있는 독서랄까. 괴물, 낯설고 기괴한 존재를 다루는 책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이자 주제다. 물론 내가 호러나 추리와 같은 장르 소설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흐흐. 아마도 나는 드라큘라란 인물에 초점을 맞출 것 같다. 언제 다 읽을지 알 수 없지만 다 읽고 나면 『뱀파이어 걸작선』도 읽을 거 같다. 『뱀파이어 걸작선』은 19~20세기에 출간된 뱀파이어 관련 단편소설들을 모은 것.

(자세한 주제는 절대 밝히지 말라는 당부가 있어 말할 수 없지만, 요즘 나의 선생님도 『드라큘라』를 읽고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접근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논문을 쓰기 전까진 내가 글로 쓰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서야 대충의 주제를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얼른 논문을 쓰기만 기다릴 수밖에. 『드라큘라』만을 분석하는 건 아닌데, 이 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어떻게 할지 몰라서 이곳에 쓰는 게 부담스럽지만, 소문만 무성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올 한 해 논문 세 편을 쓰는 계획을 세울까 보다. 이런 식의 계획이라도 세워야 글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처음엔 분기별로 한 편씩 총 네 편을 쓸까 했는데, 1~2월은 학회 일에 적응하느라 산만할 거 같아서 세 편으로 줄였다. 이렇게 변명을 하다보면 결국 한 편도 안 쓰겠지? 흐흐. -_-;;

첫 번째 글의 소재는 있다. 주제도 대충 있다.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관련해서 읽어야 하는 책도 많고. 용어의 변천과 관련해서 쓰고 싶은 게 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시기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조금 길게 잡으면 1970년대까지? 사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면 너무 방대해서 부담스럽지만, 다룰 내용에 따라선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

논문을 세 편 정도 쓰겠다는 계획이 어디에 발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퇴고하는 훈련을 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그동안 글을 너무 서둘러 쓴 거 같아서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 올해가 기회인 거 같고. 세 편이 목표가 아닌 건 확실하다. 그저 천천히, 충분한 퇴고를 거친 글을 쓰는 훈련을 하고 싶은 게 나의 목표다.

…어랏. 쓰고 보니, 올해 계획? -_-;; 끄아악~!!

공간과 이별을 준비하기

어젠 빈 강의실을 배회했다. 후치(노트북)가 담긴 가방을 매고, 손엔 책을 한 권 들고 두어 시간마다 자리를 옮겼다. 이래저래 일이 겹쳐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학과 사무실은 때마침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이런 이유만으로 빈 강의실을 배회한 건 아니다. 어차피 2월이면 일주일에 사나흘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 예행연습이었달까.

이제 곧 졸업한다. 이 말은, 이제 곧 3년 반을 머물던 여성학과 사무실에서 떠나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머물던 곳이 연구실이었다면, 그리고 남는 자리가 있었다면 그냥 머물 수 있었으리라. 헌데 지금까지 머물던 곳은 공식적으로 행정사무실이다. 다만, 대학원생들 연구실이 없어 연구실을 겸했을 뿐. 그나마도 책상이 몇 없어, 사무실 겸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내게 자리를 비워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리를 비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내심 떠나고 싶기도 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무려 3년 반을 그곳에 머물렀다. 중간에 학교 정책에 따라 이사를 해야 했지만, 명패는 동일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썩기 마련. 몇몇 사람들은 내가 졸업해도 머무는 게 당연하단 듯 반응했다. 이런 반응을 한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건 내가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증거다. 한 공간이 한 개인에게 ‘당연함’으로 받아 들여 지는 순간이 바로 떠나야 할 때라고 나는 믿는다. 좀 더 일찍 벗어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다른 구성원들에게 미안할 뿐.

아쉽지 않은 건 아니다. 난,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한 곳에 머무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 이렇게 머물 곳이 없다. 이건 너무도 큰 아쉬움이다. 카페 같은 곳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 이젠 일주일에 사나흘을 어디서 머물까? 아무려나. 지금까지 고정된 자리에서 머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복이었다. 여성학과에서 살기 전에도 어떻게든 살았으니까. 그냥 살아가면 된다. 살다보면 새로운 길이 나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