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와 나

퀴어락 급여로는 생활비가 부족하다. 그래서 매달 허덕이며 살고 있다. 물론 10여년 전엔 50원 단위로 생활비를 계산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1000원 단위로 생활비를 계산하니 그때에 비해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일까? 물론 그때와 지금의 생활물가가 다르니 좋아진 건지 여전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어떤 최소 단위로 생활비를 끊임없이 계산하며 살고 있다. 돈 천 원에 전전긍긍하고 통장 잔고를 끊임없이 신경 쓰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이것이 나의 삶이고 내 모습이다. 다른 모습은 그냥 다른 사람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라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다.
트랜스젠더퀴어로 살며, 트랜스젠더퀴어 이론과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활동가로 살며, 국가 지정 자격증을 받지 않은 퀴어 아키비스트로 살며, 나는 늘 전전긍긍하고 생활비 부족에 시달린다. 그 와중에 덕질은 하겠따고, 한 푼이라도 생기면 덕질에 투자하려 한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도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10년 전엔 10년 뒤의 내가 어떻게 살지 상상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한두 달만 여유가 있으면 대충 어떻게 살겠거니 했다. 지금도 나는 10년 뒤의 나를 상상하지 않는다. 다만 10년이 지나도 지금처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을까란 고민 정도는 한다. 10년이란 세월을 살며 변했다면 나름 변한 부분이고, 배웠다면 나름 배운 부분이다. 물론 10년 뒤에 내가 살아 있다는 보장도 없다. 늘 죽음 혹은 자살을 고민하고 내 삶의 가능성으로 여기고 있기에 10년은커녕 한 달 뒤의 삶도 모르겠다. 내일은 있는 걸까?
이 블로그는 2019년 어느 순간까지는 계약이 되어 있다. 호스팅을 그때까지 결제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때까지는 지속될 거란 의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물론 사람마다 전전긍긍하고 생활비가 어려운 방식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래서 내가 가장 불행하지는 않다. 나는 늘 어정쩡하고 고만고만해서 별 것 아닌 삶일 뿐이고 그래서 내가 매우 잘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반성을 잠시라도 놓지 말아야 하지만, 가끔은 그래봐야 전전긍긍하는 삶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다 무슨 소용일까.
그냥 기분이 그저 그런 날이라 이렇게 구시렁거린다. 비염이 터져서, 약을 쏟아부어서 정신이 몽롱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사무실 화장실에서 미끄덩하며 넘어졌다. 나는 신음소리만 낮게 냈다고 생각했는데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왔다. 넘어진 당시엔 바닥에 부딪힌 부위만 아팠다. 그래서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 온 몸이 서서히 아파왔다. 퇴근한 지금은 드러누워있다. 온 몸이 다 아프다. 끄응… 올해 왜 이러는 것이냐. 흐흐흐.

체력, 아픔, 나이듦, 혐오폭력 – 이런저런 잡담

지난주 금요일 강의에 가려고 3시간만 자고 일어났더니 그 후유증으로 이번 주 내내 피곤하고 졸렸다. 나이가 들 수록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나이가 들면(30대 중후반부터 40대 즈음부터라고 한다… 여전히 젊은 나이 같지만…) 연구자의 연구 성과는 머리가 아니라 체력이 좌우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엔 그저 잘 먹어서 체력을 관리하는 문제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허리 근육통으로 고생을 하면서 깨닫기를 그건 단순히 잘 챙겨 먹는다, 밥심이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평소 스트레칭 등을 해서 아프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5월에 허리 근육통이 생기면서 책도 제대로 못 읽고 글도 제대로 못 쓰고 있으니, 그 말을 더 실감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어떤 형태로건 몸은 아플 것이다. 수전 웬델은 나이듦은 장애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어떤 형태로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함께 하고 있는 다른 만성질환(그리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증상)과는 다른 형태로 몸이 변할 것이다. 이 상태에 나는 어떻게 새롭게 적응할 것인가? “예전에는 이 정도 즈음 금방이었는데…”라는 말을 하는 날이 나의 일상이 될 것이다. 나이 드는 몸으로 사는 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삶에 안정감이 생긴다는 말은 다 구라다. 물론 내가 아직 이런 말을 할 시기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내 나이가, 많거나 젊거나라는 기준에 따를 때 무척 어정쩡하다고 고민한다. 어떤 집단에선 아직 어린 연구활동가고 어떤 집단에선 무척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연구활동가다. 그래서 늘 이 애매한 나이가 고민이다. 하지만 20대를 훨씬 지난 지금도 내 삶은 별로 안정적이지 않다. 그냥 이런 불안정함이 내 삶이라고, 또 하나의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요즘 사람을 만나면 자주 ‘여성혐오’란 말을 고민한다. 근래엔 시우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부터 부쩍 여성혐오란 말이 늘었는데 왜 그 말이 그토록 폭발력이 있는가란 고민. 왜냐면 동일한 현상을 성폭력, 젠더폭력과 같은 용어로 오랫동안 명명하고 있었다. 많은 여성단체, 페미니즘단체, 페미니스트/연구자 등이 이를 둘러싼 고민과 논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 모든 것이 여성혐오란 용어로 포섭되는 느낌이다. 왜일까? 여성혐오는 지금 상황에서 사람들의 무엇을 건드린 것일까? 어떤 정동이 발생했기에 이토록 적극 채용되고 쓰이는 걸까? 정말 궁금해서 누가 분석해주거나, 이미 이를 설명한 글이 있는데 내가 못 찾은 것일 수도 있으니 아시는 분은 관련 문헌을 알려주시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구한 세 권의 잡지 혹은 자료집이 있다. [에이로그 북],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퀴어페미니스트 매거진 펢], [동성애, 차별금지법, 에이즈… 우리가 알아야 할 바른 진실들]을 읽었거나 읽고 있다. 읽으면서 몸이 복잡하다. 하지만 이런 이런 자료집 혹은 잡지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에서도 이런 책자를 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