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무력감

새벽 4신가 5시부터 계속해서 눈을 떴다.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길 반복했다. 어젠 좀 많이 늦게 자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40분. 늦잠을 잤다. 근데 늦잠을 잤으니 서둘러야겠다는 다급함보다는 지겹다는 감정이 앞섰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었다. 매일 6시 좀 넘어서 일어나 씻고 학교에 가고, 다시 잠들고. 하긴. 요즘은 모든 지겨움과 무력감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이젠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무력하다. 날이 더워서일 테다. 난 더위에 무척 약하니까. 얼른 가을 아니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이사를 가지 말고 또 일 년을 연장할까 고민 중이다. 월세를 좀 올려 주더라도 그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사하는 게 귀찮다. 어찌나 욕심과 미련이 많은지, 지난 번 이사 때보다 짐이 두 배로 늘은 것 같기도 하고. 지난 자취방엔 없던 세탁기와 냉장고가 생겼고, 책은 거짓말 좀 보태서 두 배로 는 거 같다. 아등바등 붙잡고 사는 게 한심한데, 버리질 못 한다. 이렇게 악착같이 붙잡고 산다고 뭐하나 싶다. 여름이다. 그래서 이렇게 무력할 따름이다.

근데 보통 원고를 보내주면, 일단 잘 받았다는 형식적인 답장을 보내주지 않나? 지난 월요일에 원고를 보냈는데 받았다는 답장이 없다. 지메일gmail이 수신 확인이 안 돼서 살짝 불안하다. 제대로 갔는지 발송사고가 일어났는지. 몰라. 알아서 하겠지. 처음 이틀 정도는 답장이 없어서 신경 쓰였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다. 도착 안 했으면 먼저 연락을 주지 않을까 하면서. 아님 글이 너무 엉망이라 감당을 못 하고 있는 걸까? 흐. 사실 이 쪽에 한 표. 원고를 발송하고 한 동안 이 글이 떠올랐다. 차마 다시 읽을 엄두는 안 나고 이미지만 떠올렸다. 근데, 이 글이 참 기묘하다. 아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상한 느낌이다. 이런 글도 있구나, 싶은 느낌이랄까. 잘 썼다는 게 아니라 뭔가 기묘한 느낌.

몸 한 곳이 빈 거 같다. 텅, 빈 느낌.
아직도 이러고 있다.

여이연 강의 끝

꽤나 긴장했다. 그래서 사실 인원수 부족으로 폐강되길 바라기도 했다. 흐. 그러나 저러나 강의는 끝났다. 아, 다행이야. 많이 긴장했는데, 어쨌거나 끝났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한국어로 된 자료가 참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이론의 역사를 개괄적으로나마 정리하는 것이 나중에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것도. 강의 내용은, 트랜스젠더 이론을 개괄적으로 훑어보는 것으로 했다. 19세기 후반 성과학은 개인의 행동을 관찰하며 변태나 도착(invert 혹은 pervert), 동성애(homosexuality)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들, 성과학자들이 설명한 동성애를 재해석하는 작업부터 출발했다. 당시 동성애의 범주, 동성애 현상은 젠더 변이, 젠더표현의 도착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증상으로 설명한 이들 중엔, 다른 성의 복장을 입고 싶어 하는 이들, 신체를 바꾸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 이럴 때, 동성애란 말을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런 역사에서부터 20세기 초반 성전환 수술이 가능해지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생기고.

1950년대 들어서면 트랜스젠더가 상당히 폭넓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런 역사 해석에서 개인적으로 초점을 맞춘 부분은 1969년 있었던 스톤월 항쟁 이전에 컴튼 항쟁Compton’s Cafeteria Riot이 있었다는 것. 컴튼 항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항쟁인데 미국 근대사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 항쟁/운동이다. 물론 상당히 오랫동안 이 항쟁은 잊혔다. 그러다 최근 트랜스젠더 역사학자와 활동가들이 이 일을 발굴/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1980년대 이후 트랜스젠더 이론이 등장하고 몇몇 인물들의 이론을 개괄하고 주요 논쟁을 소개하고.

이번 강의는 준비하는 내게 상당히 도움이 컸다. 한 번도 트랜스젠더 이론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없었다. 대충 알고는 있지만, 머리속으로 그릴 수는 있지만 문서로 만든 적은 없었다. 비록 내용은 엄청 부실하고 비문에 오탈자 만발하지만, 문서로 정리했다는 게 중요하다. 어쨌든 무언가 시발점을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
1. 한국에서 트랜스젠던라고는 부를 수 없다고 해도, 성전환 혹은 젠더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의 역사를 쓰는 것. 1920년대부터 성전환을 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물론 이 사람이 트랜스젠더인지 간성인지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그저 이와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사들, 자료들을 모은 것부터 그에 대한 분석까지.

2. 트랜스젠더 이론을 개괄하는 것과 여러 논문을 번역해서 모은 책. 영어 몰입식 교육이니 뭐니 해도 영어로 쓴 논문은 어쩔 수 없이 접근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그러니 조잡하더라도 읽을거리가 있어야지 않겠느냐고.

쓰고보니 예전부터 하고 싶다고 쓴 거네. -_-;;

두 가지 두서 없는 이야기

공간은 고정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내게 익숙한 공간, 낯선 공간은 물론, 시간에 따라 그날 기분에 따라서도 공간은 달라진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퀴어하게 변하는 걸 쓰고 싶었다. 쓰지 못 했다는 의미다. 성별이분법이 분명한 공간을 퀴어하게 바꾼다는 게 아니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나로 인해 퀴어하게 비틀린다는 걸 쓰고 싶었다. 이런 오만한 인식이라니. 하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결국 ‘나’ 아니던가.

내겐 내공이 부족했다. 전혀 무관한 것 같은 두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한없이 태만한 글을 보냈다. 부끄러운 일이다.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지난 월요일, 죽음을 애도하러 가기 전에, “젠더 스펙트럼”이란 전시에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왜 그런 경우가 있잖아. 너무 가고 싶은데, 자꾸만 망설이고 미루게 되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그곳에 전시한 작품 중에 나도 살짝 관련있는 작품도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흐. 하지만 가길 잘 했다. 많은 고민과 위로를 얻었다.

(성별)이분법으로 수렴할 수 없는 경험을 설명하는 방법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운동을 하며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이런 믿음이 단단한 건 아니다. 때로, 나의 고민들이 상아탑에서 하는 탁상공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소위 말하는 현실과는 무관한, 이론놀이에 빠지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다른 한 편으론 이미 남들 다 아는 이야기, 뒷북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모든 이론은 현실을 쫒아가기 바쁘다. 이론은 나의 살이지만, 또한 이론은 삶을 설명하기에 너무 뒤쳐져있다. 탁상공론이란 염려, 나의 오만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고민에 내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쓸모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란 점에서, 전시회에 잘 갔다고 느꼈다.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