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포맷 형태

후치(노트북)를 사서 초기 설정을 끝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보안프로그램과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 설치였다. 그 다음엔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MS Office가 깔려 있는지 확인 한 것은 물론이고. 오피스는 60일 한정판이 깔려 있었다. 비단 후치를 샀을 때만의 일이 아니다. 컴퓨터를 새로 사거나 바꿀 경우, 가장 먼저 설치하는 프로그램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 워드 프로그램이 우선 순위를 차지하거나, 미리 확인하지 않았을 경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다른 누군가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파일은, 동일한 혹은 유사한 버전의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읽을 수 없거나 읽을 수만 있거나. 玄牝에서 사용하는 데스크탑인 나스타샤의 경우 아래아 한글 2002가 깔려 있다. 후치엔 2007이 깔려 있다. 2007로 작업한 문서를 별다른 설정없이 그냥 저장한다면 2002에선 읽을 수 없다. 문서가 열리는 것 같아도 금방 닫힌다. 호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새 버전이 나오면 새 버전을 팔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을 테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에서 작업한 문서를 버전이 다르다고 열 수 없다는 건, 당혹스럽다. 몇 달 전엔, MS오피스 최근 버전과 구 버전의 포맷 형식이 달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뭔가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인가 했을 정도.

지금은 아래아 한글에서 MS오피스 문서를 열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안 되는 듯 하다. 외국에 있는 사람에게 문서를 보낼 때 아래아 한글로 작업한 파일을 그대로 보내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자기 회사 제품을 널리 판매하려는 의도는 알지만, 상호 호환이 안 되는 문제는 여러 모로 불편하다. 만약 그 회사가 망해서 더 이상 프로그램을 구할 수도 없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시사인에 실린 민경배씨의 글(여기)은 음미할 부분이 많다.

다른 사람에게 보낼 목적으로 지금 쓰고 있는 원고를 StarSuite Writer란 프로그램으로 작업하고 있다. 구글 패키지로 다운 받을 수 있는 무료 문서 프로그램이다. 굳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유가 편해서는 아니다. 아래아 한글에 익숙한데 이 프로그램이 편할 리가 있나. 그저 새로운 프로그램이라 신기해서 사용하는 것일 뿐. 문제는 이게 아니다. 워낙 안 알려진 문서 프로그램이라 이 포맷(odt)을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상대방에 있다고 기대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래아 한글과 MS Office에선 안 열린다. 실수로라도 이 포맷 그대로 보냈다간 다시 보내 달라는 답장만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브라우저도 그렇거니와 문서 파일 포맷 역시 항상 자사에 대한 충성심만을 너무 강요하는 듯 하다. 익숙하면 편해도, 언제 어디서 불편함을 겪을 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txt 포맷을 사용하긴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적으나마 나름의 편집을 하는데, txt로 저장하는 순간, 모든 편집은 무시되니까. ㅠ_ㅠ 물론 메모장이 문서 작업의 기본기엔 충실한 거 안다. 하지만 너무 기본적인 것만 지원한다. ;;

그럼에도 상호 호환이 가능한 문제 포맷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일 터. 이건 팔만대장경은 지금도 읽을 수 있지만 아래아 한글 포맷의 문서를 100년 뒤에도 읽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문서를 공유와 기록보존이란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제약이 되면 안 될 텐데. 더 좋은 프로그램은 있을 수 있어도, 사용에 제약을 가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 웹 문서도 믿을 만 한 건 아니다. 파일이 저장되어 있는 서버가 사라지만 그만 아닌가. 종이로 출력한 파일만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포맷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책임지고 보관하면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가급적 종이로 출력한 형태론 문서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엉? 결론이 왜 이래? 흐흐.

먼 길, 돌아가는 길

01
분쇄기가 윙, 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02
나는 죽음에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싶었다. 축복하고 싶었다. 망자를(산자를) 애도하기 위해, 곡소리를 내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며 축가를 부르고 싶었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식이 아니라, 체화하고 싶었다. 이별이나 헤어짐은 당연하지 않은가.

바람을 체화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03
이틀 동안 밤을 지새우다 시피 했다. 잠을 자긴 잤다. 자는 시간이 극히 짧았거나 자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깨어났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건, 나의 슬픔이다. 살아 계셨다고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뵈었겠는가. 살아 계신다고 내가 몇 번이나 안부 전화를 했겠는가. 그러니 순전히 나의 슬픔이다. 나의 죄송함이다. 어금니를 앙다물며 울음을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났다. 향년 94세면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세라고 슬프지 않겠는가.

꿈에서 뵙진 않았다. 마지막 인사는 화장장에서 했다. 기다리던 중에, 불현 듯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다. 그저 환청일 뿐이다. 환청일 뿐이다. 환청일 뿐이다.

04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다 부질없다. 모두 나의 애도일 뿐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은 쉬 전염된다. 때론 잠복기도 길고 증상도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난다. 그러니 발을 헛딛는 것 정도는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