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커피, 참고문헌

하루에 커피믹스를 10봉지 정도씩 마시고 있다. 어라. 이거 좀 심각하다.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이렇게 마시면 커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_-;; 뭐, 커피를 많이 마시지만 아직은 속이 쓰리지 않다. 더 마실 수 있다는 의미. 흐. 다만 하루 종일 섭취하는 수분의 대부분이 커피라는 건, 신경 쓰인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시는 물을 제외하면 커피만 주구장창 마시고 있다. 그래서 커피를 줄일까 고민 중이다.

[하룻밤의 지식여행 – 기호학]을 읽고 있다. 논문에 직접 필요해서라기보다는(요즘은 논문과 관련 있는 책과 문헌들만 읽고 있다ㅠ_ㅠ) 그냥 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근데 진작 제대로 공부할 걸,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내게 필요한, 내가 알고자 했던 많은 고민들과 아이디어들이 가득해서. 그렇다고 지금부터 기호학을 공부할 건 아니다. 그랬다간 선생님(나의 지도교수)께 혼난다. -_-; 흐흐. 사실 기호학 관련해서 좀 읽고 싶은 욕심이 안 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관련 책과 논문을 잔뜩 찾아서 읽을 계획을 세웠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부족한 부분은 부족한대로 한계를 인정하고 쓰기로 했다. 그리고 논문이 끝나면 그때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 된다. 예전엔 이런 결정을 못 했다.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선생님에게 있다. 최근 제대로 만나서 얘기한 적은 없지만, 지금 상황일 때 선생님은 어떤 충고를 해주실까, 곰곰이 고민하니, 답이 나왔다. 선생님께, 너무 소중한 것들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

그래도 오늘 읽은 글(정확하겐 책의 일부)은 상당히 유용했다.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읽을까 말까로 많이 망설였다. 근데 읽으니 찾던 성질의 글이었다. 후후. 이렇게 아직 못 읽은 글들을 찾아 읽고 있지만, 잘 하는 건가 싶어 고민이다. 지금까지 읽은 것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고 지금까지 많이 읽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럴 리가! 빈틈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산더미다. 하지만 지식자랑하고 싶어서, 어쨌든 나 이 정도는 읽고 공부했다고 변명하고 싶어서 계속 읽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냥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계속 참고문헌만 읽어서 어쩌려고 이러나, 싶다. 그러면서도 읽을 목록을 추가하고 있다. -_-;; 적어도 이건 읽어야지 하면서. 멍청한 짓이다. 알면서도 이런다. 포기할 필요가 있을 땐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욕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이럴 때만 욕심이 발동해서 문제라면 문제.

“논문 어떻게 되어 가?”란 질문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부담은 좋은 거다.

[나의 미스테리한 일상]

일주일 전인가 열흘 전인가에 읽은 소설, [나의 미스테리한 일상]은 꽤나 흥미롭다. 일단 구성은, 1차 주인공이 회사 사보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근데 윗선에서 소설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익명의 작가에게 소설을 청탁한다. 고로 [나의 미스테리한 일상]은 익명의 작가가 쓴 소설 12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미스테리한”이라고 해서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들의 미스테리를 푸는 것이랄까. 일테면,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뒤돌아 뛰어 간다거나 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내가 읽은 많은 추리소설이 거창한 혹은 상당히 떠들썩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면, 이 소설은 미스테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미스테리하게 풀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정도의 내용이었다면(이 정도의 내용도 재밌긴 하지만) 그저 그런 소설로 평가했을 테다. 소설 연재가 끝나고 실린 편집자 후기는, 이 책의 구성 자체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그러며 “아, 정말 잘 썼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달까. 자세히 쓰면 스포일러라서, 이만 생략. -_-;;

그렇다고 이 정도의 감탄만으로 감상문을 쓰는 건 아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익명의 주인공은 대학 시절 습작을 했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다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는 상태다. 딱 이 시기에 마침 청탁을 받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물론 중간에 알바를 하지만. 아무려나 익명의 작가의 이런 상황이, 꼭 키드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흐. 소설 속 익명의 작가는 몸이 안 좋아서 회사를 그만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키드님도 마침 회사에 안 나가고 있으니까, 그럼 이 기회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혼자 했다. 흐흐. 어쩌면 지금 상황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뭐, 어차피 이건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에 비춘 상상일 뿐이지만… ^^;;

그러나저러나 한 시간이 아까운 요즘, 펜타포트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녹취 알바를 획득! 후훗. The Music은 만나야죠! 근데 현장구매 가능한가요? -_-;;

소문, 논문

01
내가 지렁이를 탈퇴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든다는 소문이 났다. 지렁이와 성격이 안 맞아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렁이를 탈퇴하고 좀 다른 성격의 단체를 만든다는 소문. 그 소문을 전해 듣고, “아, 그렇구나.”했다.

논문을 끝내야 하기에 상반기의 활동을 접고 하반기엔 논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인간은 도대체 논문을 몇 년이나 쓰는 것이냐! 이젠 논문을 쓴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민망할 따름이다. -_-;) 그러며 지렁이를 비롯한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운동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와 관련해선 여기로) 근데 이 얘기가, 지렁이를 탈퇴하고 새로운 단체를 만다는 것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꽤나 많이 퍼진 거 같다. 재밌다. 흐흐. 새로운 단체를 상상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을 뿐인데 기정사실로 소문이 나다니. 왠지 이런 소문을 배신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흐.

어쨌든, 그 형태가 무엇이건 간에, 홍보는 된 건가? -_-;; 크크크

02
쓰려는 주제도 그렇고 논문의 의도도 그렇고, 논문을 통해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너무 이기적이거나 제멋대로인 걸까….

활동을 하며(오래 한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계를 느끼고, 어떤 답답함을 풀고 싶은 욕심이 들고, 좀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하고 싶은 바람을 품는다.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테다. 아마 거의 모든 활동가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이런 거 말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며, 당장은 필요 없을 거 같지만 결국 필요한 일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욕심. 물론 이런 욕심이 때론 부담스럽다. 그건 현재의 여건 때문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운동을 표방하는 단체가 지렁이 하나이지만 않아도, LGBTQ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다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정도의 인원만 되어도 내 욕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을 테다. 밀려오는 무수한 안건들 속에서, 당장 이런 의제들과는 다소 무관한 것 같은, 궁극적으론 밀접하지만 당장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운동을 하고 싶을 때, 나는 나의 이런 욕심이 솔직히 부담스럽다. 부담스럽다고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_-;;

지난 상반기 동안,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는 활동에 좀 더 집중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한 편으론 논문과 관련해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런 이기적인 욕심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며 책상에 앉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활동과 논문의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았다. 논문과는 전혀 무관한 일만 한 것 같았다. 활동과 “책상에서 하는 공부”의 조화를 모색했지만 결국 별개의 것이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주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모색하면서, 목차를 대충이나마 그려가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완전 별개의 짓(딴 짓? -_-;; 흐흐)을 했던 게 아니었다. 활동을 하면서 꿈꿨던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의 방향과 논문의 주제가 서로 만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논문에서 내가 사용할 방법은 인터뷰와 그 해석이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질적 연구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이론을 검토하고 좀 다른 이론을 모색하고자 한다. (내가 사회학보다는 인문학을 좀 더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건 아니다. 정말? -_-;;) 그리고 이왕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한다면, 제도나 법에 제약을 받지 않는 상상력을 펼치고 싶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선 “비현실적”이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제도와 법이 포착할 수 없는 경험들을 통해 다른 상상력을 모색한다는 점에선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뭔가 엄청난 걸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알고 있음”과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고민하지 않음”의 괴리가 상당해서, 그 간극을 메우려 할 뿐이다.

장점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의 방향에 필요한 이론적인 토대를 내가 한다는 것. 즉, 다른 누군가가 나의 지적 욕심과 상상력을 충족시켜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다. 하지만 한계는 너무 자명하다. 혼자서 “쑈”한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ㅡ_ㅡ;;

03
아무려나 욕심은 거창한데 어떻게 되려나. 용두사미가 될는지 화룡점정이 될는지. 심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