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단체를 지속한다는 건 잘 한 선택이겠지? 그렇게 믿고 있어. 그래야 할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좀 더 집중해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했어.
한 단체의 구성원들이 욕심을 내는 것과는 별도로, 실제 그 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해마다, 그 해 할 사업을 정하고 그 사업과 관련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운동을 진행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도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고, 그래서 어떤 이슈와 관련한 단체가 여럿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트랜스젠더와 직접 관련 있는 단체가 하나뿐이라는 건, 혹은 단체 이름에 트랜스젠더를 걸고 있는 단체가 하나뿐이란 건 정말 말도 안 된다.
다른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수하고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제기할 수 있는 이슈 역시 무수하다. 이건 말하나 마나인 상식. 그리고 활동가들마다 각자 좀 더 집중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적다는 점에서, 실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기 마련.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단체 이름에 반드시 트랜스젠더란 단어를 쓸 필요가 없는 그런 운동이다. 정확하게는 젠더 표현과 관련한 운동.
내가 누구이건, 내가 트랜스젠더건 레즈비언이건 게이건 이성애자건, 나이가 몇 살이고 출신지역이나 국가가 어디건 상관없이 나의 젠더 표현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일. 주민등록번호가 1번이어도 치마를 입건 뭐를 입건,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건 상관없는 환경, 주민등록번호가 2번이어도 수염이 나고 바지를 입고 “남성처럼 보여도” 상관없는 환경, “여성”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활동. 그리하여 굳이 주민등록번호를 바꾸지 않아도, 주민등록번호상의 성별과 자신이 표현하고 자신을 설명하는 성별과 “일치”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환경을 만드는 일. (GenderPAC과 비슷할 수도;;) 나는 이것이 트랜스젠더 운동의 주요 방향 중 하나라고 보는 한편,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않고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동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운동이라고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논문이 끝나면, 정말로 관련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예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