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학교에서 문화제가 있어 하루 종일 준비와 진행을 함께 했다. 다음날은 오랜 만에 특강을 했다. 자학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종일 특강 후유증에 시달렸다.

참 이상하지. 나는 특강을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단순히 운동차원에서, 트랜스젠더 이슈와 운동의 저변을 넓히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강연 자체가 재밌다. 준비하고 막상 그곳에 가면 떨리고 두렵지만 그래도 배우는 게 많으니까. 하지만 강연만 하고 나면, 강연이 끝난 시간부터 계속해서 자학을 한다. 너무 못 했다는 기분, 제대로 한 걸까하는 기분, 그리고 사람들 시간만 애매하게 뺏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 그리고 제대로 못 했다는 기분.

그러면서도 일주일 간격으로 두 개의 특강 혹은 그와 유사한 자리에 가기로 했다. -_-;;

참, 그리고 오늘,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발족이 있다.

후원중단

가장 오랜 시간을 후원했던 단체에 후원을 중단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단 한 번도 단체 후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상상을 안 해봤는데, 후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참으로 건조한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며칠 전 어떤 회의에서, 꽤나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내용들이긴 하지만, 후원을 중단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건만으로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한 건 아니다. 그 전부터 그 단체에서 발행하는 월간지가 껄끄러웠다. 환경단체인데 환경과 친하지 않은 기업의 광고를 싣는 건 항상 당혹스러웠다. 아울러 운동을 하는 방식이, 일테면 고래와 관련한 캠페인일 때 아이들에게 “고래야 돌아와”란 피켓을 들고 있게 하는 식인데, 유치해도 이렇게 유치할 수가 있나.

물론 이런 건 각 단체의 성격과 방향에 따른 것이니, 이런 것 가지고 일일이 뭐라고 하긴 그렇다. 다만 나와는 안 맞는다는 것. 그래서 작년부터 후원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고민을 줄곧 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발생한 어떤 사건을 전해 듣고 중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며 홈페이지에 찾아갔을 때, 꽤나 당혹스러운 문구가 나를 맞이했다. 광우병과 관련한 집회를 알리며 “미친소”란 구절이 들어간 광고창. 그 구절을 읽는 순간, 확실하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미친소”란 구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이 좀 충격이었다.

미쳤다는 것, 미침(狂)이 문제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비정상적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이지. 그렇기에 미친 소란 말은 문자 그대로 소의 어떤 상황을 드러내는 구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미친 소는 상당한 혐오발화이다. 소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이 문제임에도, 질병의 원인, 공포의 원인을 소에게로 돌리면서 사용하는 말이 “미친 소”인데, 다른 단체도 아니고 환경운동단체라면 이런 용어와 관련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아냐?

이런 용어를 분별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홈페이지 메인에 노출하는 것. 나는 이 단체가 표방하는 환경운동의 성격과 방향도 이젠 정말 모르겠다. 그런데 다른 환경단체에 새로 가입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거의 모든 단체에서 이런 식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어렵고 머리 아프다. 아옹님의 말처럼, 정말 지금은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눈 뜬 자들의 도시]를 합쳐 놓은 상황인 것 같다.

트랜스젠더 교육 혹은 성교육

인권교육캠프에 참가해서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건,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별개의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엔 저변이 너무 없다는 점이었다. 일테면 인권일반이나 노동권 등과 관련한 이슈는, 별도의 인권교육이 가능하고 학교 제도에서 실행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저변이 있긴 하다. 개별 활동가, 각각의 단체들에게 저력이 있는 점과는 무관하지만 어쨌든 “그게 왜 필요해?”라는 답변은 듣지 않을 정도의 저변은 형성되어 있다. 실제 시행하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럼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해선?

특강을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나의 욕심과 청자들의 바람이 일치하지 않는 걸 많이 느낀다. 나의 경우, 같은 혹은 비슷한 얘길 또 하는 건 재미가 없어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 욕심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A라는 집단에서 강의를 했으면, B라는 단체에선, A에서 한 내용을 출발점 삼아 얘길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A는 반응이 괜찮지만 B는 그렇지 않다. 아니 망하기 딱 좋다. 나는 트랜스젠더 이슈를 개개인들의 젠더 경험과 관련한 이슈로 전환하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여전히 트랜스젠더 이슈를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내용을 하면 되겠지만, 이런 강의를 백 번 해서 무엇하랴 싶을 때가 많다. “트랜스젠더란…”과 같은 내용은 강의를 아무리 잘해도 트랜스젠더를 구경거리, 호기심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만들 뿐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통해 제기하고 싶은 질문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울러 자신의 몸 경험, 성별경험을 질문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그래서 나의 경우 트랜스젠더를 말하기보다는 성별이분법에 따른 몸 경험과 성별경험을 말하는데 좀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데 이 역시 쉽지는 않다. 이해도와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 이상, 이런 특강은 망하기 마련.

워크숍에서 나온 이야기, 워크숍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 이야기 중엔 “부른다고 다 가지는 말자”는 요지의 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부르면 어디든 가고 청탁하면 어디든 글을 쓰자는 주의다. 어느 정도 기반과 저변이 있느냐, 없느냐. 여전히 트랜스젠더하면 “하리수”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전부인 상황에선, 안 불러주고 관심이 없어서 문제이지 부르는 곳이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한 강의를 초·중·고등학교에서 기본 강의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워크숍을 통해 깨달았다.

여성(주의)단체들의 경우 학교에 성교육을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성교육을 하는 강사가 별도로 있고 그래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면 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텐데, 최근 한 단체에서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는 얘길 들었다. 대상은 초등학교 4~5학년. 이 단체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성교육 자료집이 가진 한계에서 출발한다. 일테면 “여성성과 남성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요구하고 지속적인 배움을 통한 효과이다”란 식의 내용을 다루는 자료집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여자는 원래 이렇고 남자는 원래 저래”란 식의 내용이 대부분이라,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래와 같은 인식은 교육의 효과이다”라는 내용이 있기만 해도 훌륭할 정도라나. 그 단체의 목적은 이런 정도의 인식을 확대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여성성-남성성”, “여성의 몸-남성의 몸”이란 이분법에 따른 설명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기획인가. 고정적이지 않은 몸을 얘기하면서도 기존의 폭력을 동시에 얘기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트랜스젠더 이슈를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고민을 얘기해준 사람에게 너무너무 기대된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욕심은 많은데 너무 힘들어서 잠수탈 수도 있다는 대답을 하더라는. 흐흐.

너무 힘든 건 이런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겐 너무 익숙하게 어떤 사람에겐 낯설지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다. 힘든 건, 이 프로그램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연령대가 초등학교 4~5학년 이란 점. 이 나이대의 사람들이 재밌게 느끼면서도 재미 그 이상의 고민을 던질 수 있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 트랜스젠더 이슈를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얘기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면 될까, 하는 고민을 잠시잠깐 했는데, 모르겠더라. -_-;; 마치 미지의 세계처럼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경험한 초등학교 4~5학년 시절과 지금 초등학교 4~5학년들은 경험하고 있는 문화부터 몸의 변화까지 너무 다르단 점 때문이다. (혹시 이들과 소통할 때 좋을 법한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ㅠ_ㅠ)

아무려나 이 기획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는데, 트랜스젠더 이슈를 직접 얘기하진 않아도 성교육을 통해 트랜스젠더 이슈, 비이성애 이슈를 제기할 수 있다는 건 너무 큰 깨달음 때문다. 그렇다면 성교육 자료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관건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