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연 강의 끝

꽤나 긴장했다. 그래서 사실 인원수 부족으로 폐강되길 바라기도 했다. 흐. 그러나 저러나 강의는 끝났다. 아, 다행이야. 많이 긴장했는데, 어쨌거나 끝났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한국어로 된 자료가 참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이론의 역사를 개괄적으로나마 정리하는 것이 나중에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것도. 강의 내용은, 트랜스젠더 이론을 개괄적으로 훑어보는 것으로 했다. 19세기 후반 성과학은 개인의 행동을 관찰하며 변태나 도착(invert 혹은 pervert), 동성애(homosexuality)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들, 성과학자들이 설명한 동성애를 재해석하는 작업부터 출발했다. 당시 동성애의 범주, 동성애 현상은 젠더 변이, 젠더표현의 도착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증상으로 설명한 이들 중엔, 다른 성의 복장을 입고 싶어 하는 이들, 신체를 바꾸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 이럴 때, 동성애란 말을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런 역사에서부터 20세기 초반 성전환 수술이 가능해지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생기고.

1950년대 들어서면 트랜스젠더가 상당히 폭넓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런 역사 해석에서 개인적으로 초점을 맞춘 부분은 1969년 있었던 스톤월 항쟁 이전에 컴튼 항쟁Compton’s Cafeteria Riot이 있었다는 것. 컴튼 항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항쟁인데 미국 근대사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 항쟁/운동이다. 물론 상당히 오랫동안 이 항쟁은 잊혔다. 그러다 최근 트랜스젠더 역사학자와 활동가들이 이 일을 발굴/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1980년대 이후 트랜스젠더 이론이 등장하고 몇몇 인물들의 이론을 개괄하고 주요 논쟁을 소개하고.

이번 강의는 준비하는 내게 상당히 도움이 컸다. 한 번도 트랜스젠더 이론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없었다. 대충 알고는 있지만, 머리속으로 그릴 수는 있지만 문서로 만든 적은 없었다. 비록 내용은 엄청 부실하고 비문에 오탈자 만발하지만, 문서로 정리했다는 게 중요하다. 어쨌든 무언가 시발점을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
1. 한국에서 트랜스젠던라고는 부를 수 없다고 해도, 성전환 혹은 젠더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의 역사를 쓰는 것. 1920년대부터 성전환을 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물론 이 사람이 트랜스젠더인지 간성인지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그저 이와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사들, 자료들을 모은 것부터 그에 대한 분석까지.

2. 트랜스젠더 이론을 개괄하는 것과 여러 논문을 번역해서 모은 책. 영어 몰입식 교육이니 뭐니 해도 영어로 쓴 논문은 어쩔 수 없이 접근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그러니 조잡하더라도 읽을거리가 있어야지 않겠느냐고.

쓰고보니 예전부터 하고 싶다고 쓴 거네. -_-;;

두 가지 두서 없는 이야기

공간은 고정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내게 익숙한 공간, 낯선 공간은 물론, 시간에 따라 그날 기분에 따라서도 공간은 달라진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퀴어하게 변하는 걸 쓰고 싶었다. 쓰지 못 했다는 의미다. 성별이분법이 분명한 공간을 퀴어하게 바꾼다는 게 아니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나로 인해 퀴어하게 비틀린다는 걸 쓰고 싶었다. 이런 오만한 인식이라니. 하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결국 ‘나’ 아니던가.

내겐 내공이 부족했다. 전혀 무관한 것 같은 두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한없이 태만한 글을 보냈다. 부끄러운 일이다.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지난 월요일, 죽음을 애도하러 가기 전에, “젠더 스펙트럼”이란 전시에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왜 그런 경우가 있잖아. 너무 가고 싶은데, 자꾸만 망설이고 미루게 되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그곳에 전시한 작품 중에 나도 살짝 관련있는 작품도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흐. 하지만 가길 잘 했다. 많은 고민과 위로를 얻었다.

(성별)이분법으로 수렴할 수 없는 경험을 설명하는 방법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운동을 하며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이런 믿음이 단단한 건 아니다. 때로, 나의 고민들이 상아탑에서 하는 탁상공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소위 말하는 현실과는 무관한, 이론놀이에 빠지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다른 한 편으론 이미 남들 다 아는 이야기, 뒷북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모든 이론은 현실을 쫒아가기 바쁘다. 이론은 나의 살이지만, 또한 이론은 삶을 설명하기에 너무 뒤쳐져있다. 탁상공론이란 염려, 나의 오만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고민에 내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쓸모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란 점에서, 전시회에 잘 갔다고 느꼈다. 너무 고마웠다.

문서 포맷 형태

후치(노트북)를 사서 초기 설정을 끝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보안프로그램과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 설치였다. 그 다음엔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MS Office가 깔려 있는지 확인 한 것은 물론이고. 오피스는 60일 한정판이 깔려 있었다. 비단 후치를 샀을 때만의 일이 아니다. 컴퓨터를 새로 사거나 바꿀 경우, 가장 먼저 설치하는 프로그램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 워드 프로그램이 우선 순위를 차지하거나, 미리 확인하지 않았을 경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다른 누군가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파일은, 동일한 혹은 유사한 버전의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읽을 수 없거나 읽을 수만 있거나. 玄牝에서 사용하는 데스크탑인 나스타샤의 경우 아래아 한글 2002가 깔려 있다. 후치엔 2007이 깔려 있다. 2007로 작업한 문서를 별다른 설정없이 그냥 저장한다면 2002에선 읽을 수 없다. 문서가 열리는 것 같아도 금방 닫힌다. 호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새 버전이 나오면 새 버전을 팔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을 테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에서 작업한 문서를 버전이 다르다고 열 수 없다는 건, 당혹스럽다. 몇 달 전엔, MS오피스 최근 버전과 구 버전의 포맷 형식이 달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뭔가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인가 했을 정도.

지금은 아래아 한글에서 MS오피스 문서를 열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안 되는 듯 하다. 외국에 있는 사람에게 문서를 보낼 때 아래아 한글로 작업한 파일을 그대로 보내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자기 회사 제품을 널리 판매하려는 의도는 알지만, 상호 호환이 안 되는 문제는 여러 모로 불편하다. 만약 그 회사가 망해서 더 이상 프로그램을 구할 수도 없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시사인에 실린 민경배씨의 글(여기)은 음미할 부분이 많다.

다른 사람에게 보낼 목적으로 지금 쓰고 있는 원고를 StarSuite Writer란 프로그램으로 작업하고 있다. 구글 패키지로 다운 받을 수 있는 무료 문서 프로그램이다. 굳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유가 편해서는 아니다. 아래아 한글에 익숙한데 이 프로그램이 편할 리가 있나. 그저 새로운 프로그램이라 신기해서 사용하는 것일 뿐. 문제는 이게 아니다. 워낙 안 알려진 문서 프로그램이라 이 포맷(odt)을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상대방에 있다고 기대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래아 한글과 MS Office에선 안 열린다. 실수로라도 이 포맷 그대로 보냈다간 다시 보내 달라는 답장만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브라우저도 그렇거니와 문서 파일 포맷 역시 항상 자사에 대한 충성심만을 너무 강요하는 듯 하다. 익숙하면 편해도, 언제 어디서 불편함을 겪을 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txt 포맷을 사용하긴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적으나마 나름의 편집을 하는데, txt로 저장하는 순간, 모든 편집은 무시되니까. ㅠ_ㅠ 물론 메모장이 문서 작업의 기본기엔 충실한 거 안다. 하지만 너무 기본적인 것만 지원한다. ;;

그럼에도 상호 호환이 가능한 문제 포맷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일 터. 이건 팔만대장경은 지금도 읽을 수 있지만 아래아 한글 포맷의 문서를 100년 뒤에도 읽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문서를 공유와 기록보존이란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제약이 되면 안 될 텐데. 더 좋은 프로그램은 있을 수 있어도, 사용에 제약을 가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 웹 문서도 믿을 만 한 건 아니다. 파일이 저장되어 있는 서버가 사라지만 그만 아닌가. 종이로 출력한 파일만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포맷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책임지고 보관하면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가급적 종이로 출력한 형태론 문서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엉? 결론이 왜 이래?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