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현

“토룡마을 주민이에요.”
‘토룡마을?’ 순간적으로 지렁이의 애칭인가 했다. -_-;; 이제는 활동단체로 바뀌었는데, 지렁이 회원들끼리 토룡마을이란 모임을 만들었나 했다. 아 부끄러워.

대충 기억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예상하지 않은 곳에선 아무리 익숙하고 친한 사람을 만나도 얼굴이 긴가 민가 하는 경향이 있다. 일 년을 더 만난 활동가라도 회의도 아니고 집회나 행사도 아닌 자리에서 만나면 ‘내가 아는 사람과 닮은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느끼거나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사실 좀 심하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와도 잠시 잠깐 고민하고.

아무려나 여성영화제 기간이니, 영화제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상당히 제한적이겠거니 했다. 예전에 같이 페미니즘 공부를 했거나 활동을 했던 사람, 요즘 활동을 통해 만나고 있는 사람. 뭐 이 정도? 활동을 한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딱히 누군가를 더 만날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런 기대가 없었지만 지난 토요일엔 반가운 만남이 있기도 했다. 🙂

온라인으로 아는 사람을 온라인으로 만나는 걸 조금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냥 마구마구 어색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흐흐. 그냥 혼자 하는 상상 중에, 토룡마을 주민들이 모두 만나는 어떤 자리가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상상 속에서, 과연 나는 참가할까, 하는 질문엔 선뜻 고개를 주억거리기가 힘들다. 온라인의 만남이 너무 좋아서, 선뜻 오프라인으로의 만남을 망설인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자전거모임을 하는 토룡마을 주민들이 부러우면서도 항상 온라인으로만 만나겠구나, 했다. 그런데… 어제 알현의 기회가!!!

만날 인연은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되어 있고 만나지 않을 인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못 만난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만남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운명론을 말하려는 건 아니고-_-;; 흐흐) 아무튼 어제도 부스를 설치하고 책을 팔다가 저녁 즈음 아는 사람이 밥을 사준다고 하여 일찍 부스를 접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하며, 비빔밥 파는 곳을 찾다가 가장 먼저 보인 가게로 갔다. 밥을 먹으며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는 길에, 한 일행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당연히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인 줄 알았다. ;;; 행사나 집회 같은 일이 있으면 앞에 나가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발언을 한 적이 몇 번 있어서,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은 나를 아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먼저 인사를 해주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그런 경우려니 했다. 그래서 “루인님 맞으시죠?”란 말에, 어느 단체에서 혹은 어떤 활동에서 만난 분일까 하는 고민을 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러니 토룡마을이라는 말에 지렁이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_-;;;;;;;;;;;;;;;

근데!! 키드님과 벨로님과 지다님이었다!!! 이때부터 너무 반가워서 정신을 놓는 상황이. 흐흐. 정말 반가웠어요.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것 같아 많이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지난번의 우연과는 거의 일 년만인 거 같네요. 🙂

키드님을 보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차마 그땐 못 한 말이 있었는데, 이 캐릭터들과 정말 닮았어요. 흐흐.

{영화} [IWFFIS] 영화 중간 정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중간 정리. 흐흐.

2008.04.11.금 17:00 아트레온 6관 I-5
[도플갱어] : 반전이 정말 재밌었던 애니. 움직임은 조금 어색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았음. 하지만 가슴 아프기도.
[슈프로슬링] : 아이를 자신의 몸으로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과 영양분을 주문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의 클레이메이션. 출산을 이렇게 상상할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선 흥미로웠다. 감독의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식을 소유물로 간주하는 한국에선 정말 의미심장한 영화.
[메모리 이펙트] : 단편이지만, 정말 섬뜩한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하지만 살짝 진부하기도.
[워터] : 서사는 약하지만, 상상력만은 일품. 매력적이다.
[블러드 시스터즈] : 자신의 단짝이라고 믿었던 친구가 다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자신에겐 차갑게 대한다면? 이 영화는 이런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고 있는데, 아이들 연기부터 내용구성까지 정말 빼어나다. 루이스 N.D 프리드베르(Louise N.D. Friedberg)란 감독이름을 기억할 것.

2008.04.11.금 21:00 아트레온 1관 1층-G-7
[부치 제이미] : 한편으론 부치와 관련한 영화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이와 관련한 영화이기도 하다. 대체로 재밌기도 하고. 문제는 감독과의 대화 때 나온 질문들이 참… 듣기 민망하다 못해 참고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저열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질문들이기도 하지만 질문하는 방식이 예의가 없달까.

2008.04.12.토 11:00 아트레온 4관 I-5
[XXY] :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한 작품 중 하나. XXY는 성염색체를 의미하는데, 간성인 주인공의 성염색체를 말하는 듯. 간성인 자녀(알렉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의 모습과 알렉스를 괴물 취급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그리고 있다. 간성(그리고 트랜스젠더)들에게 몸의 형태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이지만, 꼭 저렇게까지 찍어야 했나 싶을 때가 많았다. 좀 많이 괴로웠다.

2008.04.12.토 18:00 아트레온 1관 1층-G-8
[3×FTM] : 이미 가편집본을 한 번 본적이 있으니, 영화 보다는 관객의 반응에 좀 더 신경을 쓴 다큐/영화. 내용 자체는 무척 괜찮음. 문제는 다른 관객들이 웃는 장면에서 나는 웃을 수 없었다는 것. 분명 웃을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울고 싶을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아무튼 책도 조만간에 나올 예정.

2008.04.13.일 17:00 아트레온 5관 G-5
[여자를 사랑한 트랜스젠더] : 아, 정말이지 너무 잘 만든 다큐. 레즈비언 트랜스인 감독이 자신의 삶을 다큐로 찍었는데, 가족 4명과 결혼했던 파트너, 친구, 이렇게 6명의 인터뷰와 약간의 애니, 어릴 때의 홈비디오와 사진을 적절히 편집해서 진행한다. 결혼하고 나서도 자신이 레즈비언 트랜스인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아온 삶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다큐의 매력은 그래서 “내가 괴로웠다”가 아니라 이런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괴로움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자 매력이다. 이유도 없이, 중간에 갑자기 울음이 왈칵 터지려고 했다. 이건 시작일 뿐. 아무려나 확실히 캐나다 다큐구나 싶었다. 목요일에 한 번 더 찾을 예정.

2008.04.14.월 11:00 아트레온 4관 I-5
[그가 사는 법] : 대만 다큐. ftm 관련 내용. 호르몬을 하기 전부터 촬영을 시작해서 호르몬 투여를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솔직히 재미없었다. 편집이 다소 산만하고 감독이 이 다큐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상당히 모호하단 느낌.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거나 수감을 경험한 트랜스여성들이 경험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큐. 호르몬을 장기간 투여해서 가슴은 발달했지만, 외부성기수술을 하지 않아 페니스가 있다는 이유로 “남성”교도소에 수감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수감자들이 성폭력을 가하고 교도관들은 트랜스여성들이 호르몬 투여를 할 권리를 박탈하는 등, 여러 상황들을 꽤나 괜찮게 풀어가고 있다. 물론 가끔씩 볼거리로 전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심히 불편했지만.

+트랜스젠더 영화/다큐를 볼 때마다, 갑자기 목 놓아 울고 싶었다.
++ 그 외의 시간은 책 판매 부스에서 보냈음.

서울여성영화제와 위그 부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이에요. 영화에 불타고 있어요. 흐흐.
영화 일정만 있으면 괜찮은데 금/일/월/수요일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책 판매 부스도 열어서(20% 할인하고 있어요. 흐흐) 일주일간은 인터넷을 할 시간이 거의 없을 거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