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통 기록

근육통 장기 경험자의 조언에 따르면 근육통은 2~3년에 한 번씩 재발한다고 한다. 나는 실제 2년 전에 처음 근육통이 생겼고 지금 다시 겪고 있다. 2~3년 뒤에 다시 근육통을 겪지 않길 바라지만 어쨌거나 나중을 위해 남겨두는 기록이다.

5월 6일 처음 아팠는데 얼추 열흘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통증을 겪고 있다. 첫 며칠은 정말 꼼짝도 못 하는 수준으로 아팠다. 그러다 월요일(5/9)에 간신히 병원에 갔고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약간의 차도가 있었고 화요일에도 물리치료를 받고 나니 꽤나 괜찮다고 느꼈다. 그래서 수요일(5/11)에 출근을 감행했다. 돌이켜 곱씹으면 수요일에 출근하지 않고 그냥 쉬는 게 맞았다. 이 날 출근을 하며 세 번의 후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과정에서 ‘그냥 돌아가서 쉴까?’란 고민을 했다. 괜찮겠거니 하고 출근했는데 어쩐지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근을 하고 싶기도 해서 그냥 갔다. 두 번째는 지하철 안이었다. 출근시간의 경의중앙선은 무척 복잡하다. 사람이 적은 칸을 고른다고 해도 콩나물처럼 서서 가야하는데 근육통인 상황에서 콩나물처럼 가려니 허리에 무리가 심했다. 세 번째는 지하철역에서 하차하고 나서였다.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가 가는 길에 반드시 계단과 오르막길을 거쳐야 한다.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허리에 무리가 왔다. 출근을 하고 나서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출근길이 좀 많이 무리였는지 근육통이 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엔 시간이 애매해서 병원에 가지도 못했다.
다음날 목요일(5/12) 아침 허리가 무척 많이 아팠다. 집에서 쉬어야 할 것 같았는데 오후에 회의가 있어 그냥 출근하기로 했다. 물론 회의를 미룰 수도 있었지만 이미 한 번 미룬 상황이라 그러기가 애매했다. 물론 다시 미루자고 제안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미뤘겠지만 그냥 내가 어쩐지 미안햇다. 고작 이 정도 아픈 걸로 회의를 미뤄도 되는 건가란 고민도 있었다. 병원에 들렸다가 가기 위해 집에서 일찍 나와 병원으로 갔는데 가는 속도가 어제보다 더 느렸다. 근육통으로 평소보다 속도가 2배 정도 느려졌는데 그날은 더 느렸다. 정형외과에 갈까하다 한의원에서 약침을 맞으면 좋다고 해서 한의원으로 갔다. 진단을 받고 물리치료를 했고 약침을 맞으면서 ‘오, 차도가 있어! 덜 아파!’라고 느꼈다. 하지만 침대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다시 아팠다. 어떻게 출근은 했고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회의도 했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좀 버거운 수준이었다. 조퇴를 했고 집에 와서는 계속 누워있었다.
금요일(5/13) 아침. 전 날 이미 집에서 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반드시 내가 출근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 금요일 상태는 그냥 집에서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였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여러 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힘들어서 주저 앉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 역시 버거웠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가는 시간은 평소의 두세 배 정도 걸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닥에 드러눕는 일이었다. 침대나 매트리스가 없어 누워 있는 것도 편하진 않았지만 눕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상태였다. 어쩐지 통증은 갈 수록 심해졌고 그날 꼭 처리해야 하는 일을 하고 나서는 바로 조퇴를 했다. 조퇴를 하고는 병원에 들렸다가 집에 갈까 했지만 근육통이 너무 심해 집에서 좀 쉬다가 간신히 병원에 갔다. 그냥 집에서 쉴까 고민했지만 물리치료를 받는 게 좋을 듯했다.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와서 드러누웠고 주말 내내 가급적 누워 지냈다.
주말 내내 집에서 가급적 누워 있었지만 근육통 통증이 완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제약을 먹기도 했다. 약은 월요일에 병원 갔을 때 처방받았다. 2년 전에 약을 먹고 피를 토한 적이 있어 이번엔 좀 약한 걸로 처방받았는데 두 번째 약봉지를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현기증과 매스꺼움을 느꼈다. 그래서 약 먹기를 중단했는데 통증이 완화되지 않아 약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 끄응.
이렇게 근육통 통증에 차도가 없자, 만약 평생 근육통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재구축해야 할까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차도야 있겠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차도가 없다면 나는 이 통증을 내 삶의 기본값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변할까? 지금까지 7~8년 가량을 장애-퀴어 세미나에 참가했음에도 장애 이슈를 깊이 있게, 폭넓게 다루지 않았다. 만약 근육통이 일상으로 변한다면 나의 퀴어 정치학, 트랜스젠더퀴어 이론은 어떻게 재구축될까란 고민을 했다.
아울러 예전 어느 만화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조연급 인물 ㄱ은 자신이 정말 아플 땐 회사에서 조퇴하지 않는다고 진짜 아프면 회사에서 앓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회사에 있으면서 동정 받는 게 낫다고. 대신 아프다고 조퇴를 할 때는 사실 전혀 안 아플 때라고 했다. 조퇴해서 회사를 쉬는데 아파서 집에서 누워 있는 게 얼마나 억울하냐, 회사를 쉴 땐 놀러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만 병가로 집에 누워 있는게 결코 편하지 않다. 아니 누워 있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고 책이나 글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 일이다. 누워서 책을 읽으면 제대로 안 읽힌다. 누워 있을 때 등을 받칠 수 있는 기구가 없기 때문에 그냥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나 직장을 쉬려면 안 아플 때 쉬어야지 아파서 쉬면 그게 아픈 것과 별개로 괴롭다. 지난 금요일에 퇴근/조퇴하며 사람들에게, ‘다음주에 꼭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건 진심이다. 그냥 출근할 수 있으면 출근하는 게 낫다. 아파서 누워있는 일은 편한 일이 아니라 더 힘든 일이다.
아무려나 나는 오늘부터 며칠 다시 병가를 냈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고 그나마 어제보단 좀 나은 상태다. 그럼 나는 언제 출근할 수 있을까? 이게 참 어렵다. 지난 수요일, 출근할 수 있겠거니 하며 호기롭게 나섰다가 목금 이틀 간 후유증이 심했던 일을 겪고 나니 어느 정도로 차도가 있을 때 출근하는 게 좋을지 가늠이 안 된다. 이제 좀 괜찮다 싶을 때 출근하는 게 맞는지, 그냥 확실히 괜찮다 싶을 때 출근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무엇보다 근육통 통증의 차도가 느린 점도 고민이다. 내 삶의 기본값을 바꿔야 하는 순간인지, 그냥 일시적 현상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출근하고 싶다.
+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
“내 세대의 여성주의자에게는 자기를 희생하는 하위문화가 있다. 훌륭한 여성주의자는 착한 여자들이 어디서나 그러는 것처럼 아플 때까지 일해야 한다. 모두가 진이 다 빠질 정도로 과도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우리들’은 아플 시간이 없고 자기 몸을 귀하게 챙길 시간도 없다.”(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강진영, 김은정, 황지성 옮김. 서울: 그린비, 2013. 27)

아무것도 안 하는 와중에 출판…: 트랜스페미니즘, 트랜스규범성

어쩐지 올해는 뭘 특별하게 하지 않는 상황에서 뭔가 출판되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의 역사]가 그러한데, 물론 3월에 집중해서 작업을 하긴 했지만 사실상 몇 년 전 작업물이 이제 나오다보니 뭘 했다는 느낌없이 공동 번역 책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논문 하나가 나왔다. 작년 초에 영어로 글을 써서 투고했고 게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후 정말 여러 번 편집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한국에서 논문을 투고하면 겪는 절차나 과정과는 많은 점이 달랐다. 한국은 게재하기로 결정이 나면 큰 절차가 없다. 수정해야 하는 사항이 있긴 하지만 그러고 나면 며칠 안 지나 논문이 나온다. 하지만 TSQ만 그런지 미국의 여타 학술지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댓 번은 편집자와 메일을 주고 받은 듯하다. 정말 꼼꼼하게 다 확인하더라. 그 중 하나가 이름인데 이름 표기를 어떻게 하길 원하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도 몇 번 메일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꼼꼼하게 작업하니 논문과 편집의 질이 올라갈 수밖에. 어쩐지 많이 부러웠다.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시스템부터 다른데 미국 학술논문은 출판사와 결합해서 나오는 듯하다(일반화할 순 없을 것이다). 한국 학술논문은 학회에서 자체적으로 출판한다. 급여도 제대로 못 받는 연구조교가 한두 명 있고 그가 관련 작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연구조교에게 편집이나 교정을 요구할 수도 없다. 많이 배운 일이고 많이 아쉬운 일이다.
아무려나 TSQ: Transgender Studies Quarterly 최신호(3권 1-2호)에 트랜스페미니즘 관련 글이 실렸다. 트랜스페미니즘과 트랜스규범성을 다룬 논문인데 많이 부족해서 좀 많이 부끄럽다.

내가 누리는 특권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425023207005

[중앙일보] 시리아 난민 28명, 창 없는 방서 5개월째 햄버거로 끼니 2016.04.25.
송환 대기실에서의 생활은 열악하다. 출입국장 2층의 470㎡ 공간에는 창문이 없다. 나무 평상과 샤워실, 남녀 화장실이 있지만 잠잘 공간은 없고 담요 한 장씩만 제공된다. 식사는 삼시세끼 햄버거·콜라만 준다. 세탁시설이 없어 폐렴·호흡기질환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전염병 위험마저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화상 인터뷰를 한 무하마드는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내다가 스마트폰 와이파이(wifi)가 잡혀 가족들과 연락이 될 때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리아인 A(23)는 “주로 치킨버거가 제공되고 ‘할랄 푸드’가 없어 치킨을 빼고 빵만 먹으며 5개월째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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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리는 특권의 효과를 고민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인종이슈, 이주민 이슈 등을 나는 적극 사유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에 별로 소개가 안 되는 시리아 내전이나 난민 이슈 역시 적극 공부하거나 사유하지 않는다. 그래도 당장 내가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이것은 내가 한국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특권이다. 한국인으로 인식되는 외모, 한국인 신분증은 내가 인종차별이나 한국에서 미등록/이주민, 난민이 겪는 차별에 무감해도 큰 문제가 없다. 내가 이런 이슈에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나는 내가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망각하며 살 수 있다. 나의 망각, 사유 없음은 기사에 나온 상황을 유지하는데 강력한 지지기반이 된다. 내가 이와 관련한 글을 써왔다고 해서 사회가 별로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공모한 현실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니까 출입국사무소의 관행이나 한국 정부, 혹은 끔찍한 내용의 글을 쓴 댓글러를 비난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출입국사무소나 한국 정부를 살벌하게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그 비판이 나를 심판관으로 만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명백하게, 이런 식의 난민 대우가 지속되는데 나는 무지했고 방관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 더 많은 권력과 제도 운용 능력을 갖춘 가해자를 어떻게 비판하는 것이 좋을까? 비판하되, 나를 심판관으로 만들지 않는 언어는 무엇일까? 분노할 일이면서 반성할 일이라서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