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기어이 나왔습니다. ㅠㅠ
아 민망해.
이제 열심히 팔아야지요. 흑흑.

이전에 메일로 예약해 주신 분들껜, 너무 늦게 나와서 정말 죄송해요. 관련 내용을 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 주세요.:)

+교보엔 아직 안 떴어요. 조만간에 뜨지 않을까 해요. 도서관을 통해 여러 권 주문해 주시면 무척! 감사해요. 흐흐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기획: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위그(WIG)
출판: 도서출판 사람생각, 2008
가격: 15,000원 (저자에게 직접 사시면 20% 할인한 12,000원)

목차
용어설명

1부 성전환
1장 번호이동과 성전환: 주민등록제도, 국민국가, 그리고 트랜스/젠더 – 루인
2장 의학화의 과정 속에서의 성전환 욕망, 성전환수술, 성전환자 – 한영희
3장 성전환자가 자기이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의 경합 – 김준우

2부 젠더 위반
4장 젠더 위반과 정체성: 부치와 성전환남성 간의 남성성을 둘러싼 긴장들 – 나영정
5장 다른 세상 읽기: 1960년대의 여장남자와 남장여인 – 김일란
6장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 – 루인

3부 법
7장 성별전환의 법담론 비판 – 한상희
8장 성전환자의 성별결정에 대한 국내외의 법적 기준과 그 흐름 – 이현

대담: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함

나의 정치학과 나의 윤리

여성운동에선 너무도 빈번하게, 단지 적절한 페미니스트 수사를 차용하는 것만으로 자신은 성차별적인 생각에서 자유롭다고 가정했다. 그것은 더욱이, 피억압자로 자신을 동일시하는 건 자신이 억압자와는 무관하다고 가정했다.
-벨 훅스(bell hooks, 1980:9)

한땐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정체성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얘기들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면서 레즈비언이고 채식을 하고 환경운동을 하고 등등. 페미니스트, 혹은 정치적인 올바름의 측도라는 말로, 이런 기준들을 말하곤 했다. 이런 말이 단순히 농담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심각한 상처를 주었을 정도로 진지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식의 분류기준에 나는 거의 다 속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올바르냐면 그렇진 않다. 채식을 한다는 것이 올바른 행동은 아니며, 어떤 식의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지 말하지 않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장 올바른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다고 쉽게 단언할 수 없으며, 내가 트랜스젠더 혹은 레즈비언 트랜스라고 해서 내가 가장 억압받는 위치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트랜스라는 나의 상황이 내 모든 삶의 다른 모든 상황을 압도할 정도로 절대적일 수도 없다.

누군가의 상황이 정치적 올바름의 지표/기준이 되는 건, 끔찍한 일이다.

바이센테니얼 맨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실버버그, [바이센테니얼 맨], 박상준, 이영 옮김, 서울: 좋은 벗, 2000

관련 글: 아옹, “바이센테니얼맨”

아직도 그런데, 누군가 추천해준 책은, 읽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향이 있다. 이건 마치 그냥 읽으면 무척 재밌는 소설도, 시험을 위해 읽으려면 선뜻 읽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지만 이런 경향은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산 책들도 마찬가지이니, 딱히 이런 부담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그 책을 읽을 몸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한 것. 그래서 당장 읽어야지 하고 산 책 중엔, 몇 달이 지나서야 집어 드는 경우도 빈번하다.

[바이센테니얼 맨]도 어김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2월 초에 아옹님 블로그에서 보고, 너무 재밌을 거 같아서 책을 제본했다. 출판사에도 재고가 없는 상태라 제본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리고 얼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정말 잠들기 전 한 시간 정도를 활용해 읽었는데, 일단, 무척 재밌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침에 잠에서 깨니 스탠드도 안 끄고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을 정도로. 그러니까 책을 읽다가 스스륵 잠든 적이 별로 없는데, 이 책은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선 꽤나 당황하기로 했고. 흐흐.

재밌으면서도 무척 흥미로운 건, 이 책의 내용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 앤드류 마틴의 역사는 마치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와 흑인해방 운동의 역사를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페미니즘 운동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동성애운동이나 트랜스젠더 운동의 역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운동들이 앤드류라는 어떤 한 개인의 성과로 치환할 순 없지만. 자신의 욕망, 자신이 원하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앤드류 마틴의 노력은, 아옹님의 지적처럼, 이런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힘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한 편,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로봇공학은 “인간”을 질문할 뿐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효과적으로 허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로봇공학이 추구하는 목적이 인간처럼 보이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는 프랑켄슈타인의 욕망처럼 로봇을 통해 인간을 만드는 과정일까? 그렇다면 이는 인간을 공학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의 반영일 텐데, 이것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둘 다 동일한 욕망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기준이라는. 그렇다면 그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기준도 특정 나이나 인종, 신체조건에 근거하기 마련이고, 이럴 때 인간의 조건은 “정상적인 인간”의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이라면, 사고능력이 없다고 얘기하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는 인간이 아닌가, 와 같은 질문들, 이와 유사한 질문들을 통해 “인간의 조건/특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결국 특정한 누군가의 경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담,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결국 인간을 어떤 식으로 정의하고자 하는가, 라는 욕망 혹은 두려움의 논쟁으로 슬쩍 바꿀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외과수술이건 다른 어떤 식이건 간에, “구성”되지 않은 몸이 가능은 할까?

나중에 다른 주제로 한 번 더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지만, 사실 내용 전개에 있어 조금 허술한 부분은 아쉬웠다. 일테면, 자신의 마지막 욕망을 위해 앤드류가 취한 조치에 사람들이 감동 받아 결국 원하는 만장일치의 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식은, 좀 유치하다는 느낌. 좀 더 섬세하게 묘사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내용 자체는 재밌다.

“로봇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 권도 없어요, 조지. 로봇이 쓴 로봇의 역사, 확실히 그런 책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나는 로봇이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설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처음으로 로봇이 세상에서 일하며 살게 된 이후, 인간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싶습니다.” (155)

: 로봇과 인간을 다른 용어들로 바꾸면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데, 이게 이 책의 매력. 일테면 로봇에 트랜스젠더를, 인간에 의사를 대입해도, 로봇에 “여성”을 인간에 “남성”을 대입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로봇의 정신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감정도 느낀다는 거요. 그렇다고 해도 난 사람이 될 순 없소. 다만 불행한 로봇이 될 뿐. 내가 내 몸 속에 있는 로봇적 요소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해도 난 인간이 될 순 없을 거요. (…후략…)” (304)

: 이 구절이, 특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