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편집 과정에서의 고민

며칠 동안 노트북(아직 이름을 못 정했다-_-;;) 화면과 데이트했다.;; 눈이 침침하고 아프고 어질어질하다. 내용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어쨌든 인터뷰 자료집의 초안을 완성해서 공동 편집자(?)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무려 이틀이나 늦게. 일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테면,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아울러 이런 경험을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소중하고 빼어난 성찰이라,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욕심을 앞세우다보면 그 말을 한 개인의 많은 부분을 폭로하게 되고, 볼거리로 만들 수도 있다. 이럴 때 어느 정도 수위에서 내용을 조율해야 할까?

ftm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고민을 했다. 여성성과 남성성, 성별, 남성문화라고 불리는 어떤 집단,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까지, 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좋아서 최대한 많이 실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많이 실을수록 그 말을 한 사람을 볼거리로 만들 위험에 빠지는 아이러니.

다른 한 편, 이 사람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려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다. 어떤 내용을 선택하고 어떤 내용을 버릴 것인가 하는, 선별 과정에서 경험하는 갈등. 어떤 내용을 선택하느냐는 철저하게 나의 입장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작업 하는 내내 이런 나의 욕망과 부대꼈다. 아울러 주인공들의 말을 조금만 더 다듬어서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고, 좀 더 맥락을 덧붙이고 싶은 유혹을 매 순간 느꼈다. 물론 이 작업은 처음부터 주인공들의 말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지만 상당한 윤문작업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한계에서 출발한다. (같은 질문에 따른 답이 여러 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조금만 더 세심하게 표현하면, 하고 싶은 말이 좀 더 잘 전달될 텐데, 라는 고민에 문장을 슬쩍 고칠까 하는 유혹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이런 고민 속에서 주인공들에게 예기치 않은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거.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 작업을 중단하고 싶은 갈등을 하곤 한다.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으니까.

소설

졸려서 커피를 탔는데, 커피를 타고 나서 잠이 온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텀블러엔 다 식은 커피가 남아있다.

요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구분을 비트는 내용의 소설과 추리소설을 주로 읽는 편이다(많이 읽었다거나 잘 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 작가는 대부분 일본어를 자국어로 쓰는 사람들. 그래서 위시리스트엔 관련 소설이 잔뜩 들어있다. 심지어 [판타스틱]이란 잡지를 정기구독 할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정도. 지금까지 정기구독을 해서 받은 잡지가 없다시피 하니, 요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지금까지 트랜스/젠더 이론, 퀴어 이론, 페미니즘 등과 관련 있는 책을 주로 사서 읽었고, 선생님은 영문학 전공인데, 석사논문주제로 일본(추리/환상)소설과 관련해서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까? 혹은 ‘루인스럽다’고 반응 할까?(‘루인스러운’ 게 뭔지는 모르지만.) 물론 농담이다. 아무려나 요 몇 년간 못 읽은 소설을 부담 없이 읽으니, 여러 가지로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기쁘기도 하고.

교보에서 놀다가,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가 나왔더라. 이 작가도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데. 그래도 기대 중. 아울러 벌써 오래 전에 읽겠다고 제본해선 읽을 시기를 가늠하던 [바이센테니얼 맨]을 시작했다. 물론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이번 주가 가장 바쁜 시기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일도 별로 없다. 띄엄띄엄 읽겠지만 시작부터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