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잔치, 대운하 건설

다른 목적으로 썼다가, 아무래도 그 공간에 적절하지 않아 폐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 자체가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서, 남겨둔다는 의미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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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누군가와 전화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고향처럼 지내던 동네(모계혈족과 부계혈족 모두가 이 동네 언저리에 살았고, 살고 있다)가 경부대운하를 건설하면 파헤쳐질 수 있다는 말. 이 말을 듣는 순간, 다소 막연한 질감이었고, 환경파괴를 반대한다는 다소 막연한 논리로 반대했던 대운하건설이 아주 구체적인 질감과 장소로 다가왔다.

대선 당시 2MB를 반대한 이유가, 747과 같은 성장 중심의 공약, LGBTQ, 장애인, 노동자 등을 향한 혐오 발화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운하건설 때문이기도 했다. 나의 채식이 반드시 환경과 관련 있는 건 아니지만 무관한 것만은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CMS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곳은 환경단체였다. 이런 개인적인 맥락에서 LGBTQ 이슈들만큼이나, 환경 이슈 역시 내겐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른 활동을 다 접고 대운하건설반대운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했다.

고향처럼 여기는 그 동네가, 현재 신공단조성 예정지인 동시에 경부대운하 건설에 따른 개발예정지란 말을 듣고 상당히 먹먹했고, 분노의 질감은 더욱더 두터워졌다. 헌데 이 말을 전해준 사람, 그 사람이 전해준 그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대운하건설 반대가 아니라 찬성이자 환영이었다. 그 사람은 ㅎㄴㄹ당 지지자이자, 이번 대선에서 2MB를 찍었지만, 이 사람의 이런 정치적 성향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맥락들이 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부산은, 지리적으로 강서지역과 강동지역의 상황이 너무 달라, 다른 도시인가 싶을 정도다. 강동지역이 도시라는 공간으로서의 특징들을 드러내는 동시에 공장이 밀집해 있기도 하다면, 강서 지역은 시골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하고 농사를 짓는 땅이 대부분이다(물론 이건 몇 년 전의 지식이라, 현재는 상당히 변했을 수도 있다). 강서지역은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기도 했다. 최근에야 사는 집 건물들을 개보수하거나 기존의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것이 가능했고. 그래서 몇 년 전에도 “뒷간”이라 불리는 이미지에 적합한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도 있었다.

다른 한 편,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나이는 대체로 50~60대 즈음인데, 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았던 건 아니다. 이들의 부모세대들이 거의 다 죽은 현시점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얼추 10년 전 즈음, 쓰레기매립지가 들어서면서 보상금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그 동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쓰레기매립장이 바로 옆인데 그곳에 살기 시작했다고? 뭔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그 동네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을 땐 격렬한 반대가 있었고, 그래서 공공건물에 방화를 할 정도로 시위의 수위가 상당했다. 반대 이유는 쓰레기매립장이 “혐오시설”이란 점, 환경파괴란 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는 산에 조상들의 묘가 있는 있다는 점 등이었다. 하지만 정작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선 이후엔 분위가 바뀌었다. 쓰레기매립장은 있지만, 우선 냄새가 심하게 나진 않았고, 매립장 건립에 따른 각종 개발들과 함께 매달 나오는 보상금이 적지 않았다. 얼추 10년 전이면 IMF가 터졌을 때란 점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IMF로 부산의 도심지에서 일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해야 했고, 얼추 40대 즈음의 나이였기에 새로 취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생활비가 없는 상황, 아울러 많은 이들이 적잖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달 꾸준히 나오는 보상금은 매력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신공단조성이란 소식, 경부대운하건설이란 소식은 일종의 ‘희소식’인 셈이다. 쓰레기매립장을 반대하던 이유 중 하나인 조상들의 묘는, 화장장으로 이장하면 된다는 반응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런 변화는, 화장이 더 이상 “불효”나 “못 할 짓”이 아니란 인식, 화장장에 모시면 훨씬 편하다는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는 현재 분위기와 맞물린다. 이제 사람들의 반응은 기존의 집을 좀 더 값나가게 개보수하고,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보상금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기에, 경부대운하가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며 싫어하지 않는 반응에 갑갑하면서도 어떤 식의 개입도 하기가 힘들었다. 당장 올 연말부터 집이 뜯겨 나갈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아쉬움이 표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딱히 반대하는 것도 아닌 분위기를 감지하며 기분은 정말 복잡했다. IMF 이후 빚잔치와 실직이 일상인 상황에서, 이런 반응은 너무도 자연스러울 수 있고, 이것을 단순히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경부대운하건설이 환경파괴이기에 반대해야지 않겠느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운하건설이 장기적으로 이들의 삶에, ‘우리’들의 삶에 상당히 악영향을 끼칠 거란 건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당장 빚잔치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환경보호라는 논리는 공염불로 느껴질 수도 있다. 행여나 이들이 반대시위를 한다고 해도, 그 이면엔 반대 시위를 통해 보상금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고.

물론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찬성한다는 건 아니다. 그 동네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만나 의견을 물은 건 아니니까. 아울러 그 동네에서도 찬반논쟁이 뜨거운데, 내게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찬성하는 사람이라 내가 이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찬성을 하는 이들을 간단하게 ‘돈독에 올랐고 환경보호와 관련한 의식이 없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과 같은 반응은 과연 그 동네에서만의 일일까? 대운하를 건설할 예정인 지역의 상당 부분에서 그 동네와 같은 반응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이들이 대운하건설을 반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선 어떤 논리가 가능할까? 나는 대운하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에 어떤 형태로건 참여하겠지만, 그 동네에 사는 이들을 어떤 식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당위로 움직이는 건 독재만큼이나 위험하다. 아울러 환경보호가 모든 사람들에게 당위이지도 않다. 고향을 지켜야 한다느니, 조상의 묘를 보존해야 한다는 식의 지극이 보수적인 논리 말고, 상당한 빚을 지고 살아가며 보상금이 아니면 생계비가 막막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논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운동가들, 활동가들의 논리 말고,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운하건설반대 시위를 주도할 수 있는 논리나 모델은 어떤 것이 있을까?

뒤늦게 찾아 온 거

일테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일이 떠오르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상황도 없다. 반면, 포기하고 들어올 리 없다고 믿었는데, 고료나 강의료가 들어와 있으면 이보다 기쁜 일도 없다.

마감을 까맣게 잊을 리는 없으니(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우는 있어도;;;), 후자의 경우다. 얼추 두 달(엄밀하겐 넉 달)이 지난 시점에서 돈이 들어와 있는 걸 확인하곤, 마치 공돈이라도 생긴 것 마냥 좋아하고 있다. 히히히. 그래봐야 여이연 수강료 나가고, 생활필수품 사면 남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기쁘다. 히히.

+
여이연 강좌에 반가운 사람이 세 명이나 있어서, 무척 기뻤다. 🙂

온다 리쿠, ‘도코노 이야기’ 세 편

01
학교 네트워크 관련 팀에서 문제를 일으켜 연구실 컴퓨터에선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 지난주 월요일부터 안 되었으니, 일주일 내내 연구실에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주로 연구실 컴퓨터로 블로깅을 비롯한 인터넷을 했으니, 덕분에 인터넷 사용 시간은 줄었다. 대신 책은 여유있게 읽었다.

02
온다 리쿠의 ‘도코노 이야기’ 연작 3권([빛의 제국],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을 읽으면서, 마지막 권에선 살짝 소름 돋았다.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나로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구성.

굳이 세 권을 연작으로 부를 필요는 없는데,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란 점에서만 연작일 뿐, 각각은 다른 얘기이다. [빛의 제국]은 10편의 단편들을 모은 것.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은 듯 한데, 온다 리쿠는 확실히 장편에서 빛을 발한다. [민들레 공책]은 살짝 통속적인 스토리인데 이런 통속적인 스토리도 괜찮지만, 시간 구성이 흥미롭다. [엔드 게임]은 단연 압권. 자칫 줄거리를 쓰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불안이나 어떤 문장, 그래서 쉽게 잊을 수 있는 일들을 포착해서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 작품 역시 시간 구성이 흥미롭다.

온다 리쿠의 시간은, 특히나 이번 작품들에선, 결코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에서 미래로, 혹은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과 만나고, 미래의 시간을 과거에 만나고, 미래보다 과거가 더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세계. [엔드 게임]에서 이런 시간 구성이 특히 두드러지고, 이런 시간 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이런 활용은 단순히 판타지 요소가 있어서는 아닌 듯 하다). 얼룩덜룩해서 농도가 다른 기억들, 그래서 어떤 기억은 확실한 듯 하고, 어떤 기억은 불확실하고, 어떤 기억은 의도적인 삭제를 통해 전혀 떠오르지 않고. 이런 기억들이 엉키면서 시간은 다시 한 번 엉킨다.
(쓰고 다시 읽으니, 책을 읽어야지만 알 수 있을 내용이다-_-;;;)

03
오랜 만에 여이연 강좌를 들으러 갈 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