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주인의 태도 변화

아, 그러니까, 원래 학교의 매점주인은 나를 싫어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야 결코 알 수 없지만,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니기 시작한 그 언제부터가 아닐까? 돈을 계산할 때마다 그 사람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봤고, 그 어느 순간부터 섬뜩해 하는 반응을 보였다. 혹은 상당히 낯설어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종종, 자기 딴엔 상당히 멸시하는 듯 한 눈빛이기도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날은 친절하기도 했다. 학교의 매점이니 자주 갈 수밖에 없고, 주인도 나를 알아본 것이리라. 하지만 구태여 알은 체 할 필요가 없기에 그냥 무심했다. 그렇게 무심하고도 흔해빠진 구매자의 한 명으로 지냈다. 굳이 아는 체 하는 것도 싫으니까.

하지만 가볍게 인사라도 하는 사이였다면, 뭔가 좀 달라졌을까?

매점의 주인은 계산이 빠르기로 유명해서, 여러 개의 물건을 한꺼번에 가져가도 금방 물건 값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였을까? 다른 사람들이 계산할 땐 물건 값을 말하는데 내가 계산할 땐 물건 값을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사는 물건은 거기서 거기고, 구매하는 제품의 가격은 거의 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예 힐끔 쳐다만 볼 뿐, 응대할 태도 자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제 저녁.

그 이유를 금방, ‘아하!’ 하고 깨달았다. 그 사람은 한겨레신문 구독자였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애독자였지. 아하하. 그랬구나.

진짜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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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반드시 이런 이유에서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 간의 정황에 비추면 이렇게 해석할 여지가 너무 크달까. 풋

[IS(아이 에스)] 01~10

로쿠하나 치요 [IS (아이 에스)] 01~10

며칠 전 읽으며 두려움을 얘기한 책은 바로 이 책이다. [IS (아이 에스)]. Intersexual의 약자로, 번역하면 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번역할 지는 항상 고민이다. 트랜스젠더라면 한국의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에 “성전환자”로 번역하는 게 이상하다. 아울러 미국에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란 용어와 한국에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란 용어의 의미가 다르기도 하고. 하지만 “간성”은,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운동차원에서 어떤 용어를 채택할지 몰라, intersex를 간성으로 곧장 불러도 될 지 잘 모르겠다.

아무려나 임시로 간성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면, 이 만화는 제목 그대로 IS 혹은 간성과 관련한 만화다. 이 만화 역시 [방랑소년]처럼 꼼꼼하게 조사를 한 동시에 최대한 쉽게 그리려고 애쓴 작품. 그래서 무척 괜찮다. 읽는 내내 눈물이 난다.

어떤 작품을 읽다가 눈물이 난다면, 불쌍해서가 아니라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1권은 두 명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고, 2권부터 가장 최근에 나온 10권은(아직 완간 아님) 주인공, 하루 한 개인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태어나기 전 부모들의 고민, 하루가 성장하며 겪는 고민들, 간성 모임에 참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길 강요하는 의학과 자신을 간성으로 설명하고 “남성”이나 “여성”이 아니라 “간성”으로 살아가겠다고 주장하는 모습 등등. 하루는 호적상으론 “여성”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족들은 모두 하루가 간성이란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언제나 솔직하게 얘기하고, 하루는 간성인 남성으로 자신을 인지한다. 하지만 첫사랑을 만나고, 첫사랑은 자신을 여성으로 알다가 나중에….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내용 설명은 여기까지. 절대 줄거리 요약에 자신이 없어서 중단 한 거, 맞음. -_ㅜ;;)

하루는 자신이 간성이란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간성인 남성으로 사람들이 대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자료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을 설명한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울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지점이었다. 처해있는 상황의 유사함만이 아니라, 하루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하고,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간성임을 얘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설명할 때, 다른 사람들에겐 자신만만하고 별 고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자신만만하고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에도 불안하고 무수한 고민으로 머뭇거리는 모습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만화 역시, 삶의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물론이고, 성관계에 있어 간성인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는지를 꽤나 세심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만화에 등장하는 모습이 간성인 사람들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