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8.01.17. 15:00 아트레온 2관 3층 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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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근에 있는 백화점의 식품관에 갔다가 델리카트슨이란 이름의 정육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육점 이름을 델리카트슨으로 지은 사람은 영화를 봤을까?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엔 정육점이 나온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는 다름 아니라 사람고기. 그 건물에 처음 오는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을 죽여서 고기로 팔고,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인육인 줄 알면서도 사 먹는다. 정육점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인육처럼 맛있다는 의미일까?
[스위니 토드]를 읽으며,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떠올랐다. 분위기도 대충 비슷하고 어떤 상황들도 비슷하다. 물론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고어영화를 싫어하진 않으니 나쁘진 않았지만 종종 긴장감이 떨어졌고 끔찍하거나 섬뜩하진 않았다.
02
성별화된 모습들이 상당히 거슬리지만, “거지”(루시. 이름을 쓰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의 존재는 매력적이다. 지저분하다는 런던보다 더 지저분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문전박대 받고, 그래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사건을 예고하지만 “거지”라는 상황으로 예고는 헛소리가 되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다. 살아있는 죽음이 죽어가는 죽음으로 변하는 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생하고.
“거지”(혹은 루시)는, 예언을 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 카산드라 같고, 자신의 주장을 통해 죽을 수도 있지만 지배규범의 한계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안티고네 같다. 동시에 이 영화가 전개하는 이야기의 종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03
영화 초반에 토드가 이발사 시절에 사용하던 면도칼을 다시 손에 쥐자 “드디어 나는 완전해 졌다”란 의미의 말을 한다(대충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데 정확하겐 기억이 안 나서;;). 이 말이 재밌었다. 면도칼이라는 별도의 기계를 몸에 지닐 때에야 완전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건, 토드가 사이보그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연다. 물론 영화의 맥락에서 이 말은, 오랜 세월 이발사로 살아왔다는 점에서의 편안함, 복수의 다짐이자 출발을 의미하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기체와 무기물의 결합을 통해 완전함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토드는 사이보그일 수도 있다. (뭔가 좀 다른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정리가 안 되어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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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를 접하니, 정리가 쉽지 않다. 적응 기간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