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용량초과라니

보증금 5,000원에 월세 500원을 내고 사는 이곳인데, 아침부터 트래픽용량초과라고 두 번이나 떴다. -_-;; 그래서 트래픽리셋 신청비로 무려 500원(한 번에 250원 씩 두 번)이나 사용했다는. ㅠ_ㅠ

그렇다고 방문자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났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카운터에 따르면 비슷한 숫자다. 그럼 도대체 왜!!!

일단 하드용량 400M(웹 200, 스트리밍/CDN 100/100)이고 트래픽용량 1.4G(웹 600M, 스트리밍/CDN 400/400)이 내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의 기본 사양(구체적으론 여기). 잘은 모르겠지만 실제 적용하는 트래픽용량은 600M. 웹페이지 중심인(어지간해선 이미지도 올리지 않는데) 이곳이 무려 하루에 두 번 트래픽용량초과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호스팅업체에 문의를 하면 어떻게 알 수는 있겠지만, 귀찮아서 못 하겠고.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8.01.17. 14:30, 아트레온 1관 지하3층 G-7

01
아트레온 지하 1층에 “프리 존”이라고 컴퓨터도 공짜로 사용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음식점이 들어서서 아쉬웠다. 비록 사용한 적은 한 번 뿐이지만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았는데.

02
일단 기대치를 낮추자, 통속적인 그래서 너무도 ‘현실’적인 상황들에 눈물이 났다. 웃다 울다 하니 영화가 끝날 무렵이었다. [스위니 토드]보다는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오전에 알러지성 비염이 터져서 약을 먹고 멍한 상태였는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비염약을 먹고 몽롱한 상태란 걸 잊을 수 있었으니까.

03
영화를 읽는 내내 강코치(최욱 분)가 어찌나 짜증나든지. 김혜경(김정은 분)이 감독대행으로 왔을 때, 강코치는 뒤에서 실실 비웃고 가소로운 표정으로 김혜경을 대한다. 일테면 “네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자.”하는 표정이다. 김혜경을 감독으로 존경할 리도 없고 감독대행으로 대할 리도 없다. 반면, 안승필(엄태웅 분)이 감독으로 오자, 표정은 180도 변한다. 깍듯이 존경하는 표정을 지으며 감독이 무슨 말을 하건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김혜경 대신 안승필을 감독 자리에 앉히려고 할 때, 위원장이 김혜경을 감독대행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이혼경력을 들먹이는데 이에 김혜경이 “남자감독이었어도 이혼이 문제가 되었겠냐.”고 따져 묻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말보다, 표정의 변화를 통해 젠더에 따라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이,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의 하나라고 느꼈다. 여러 상황들(젠더, 인종, 나이, 장애, 성적지향, 학벌 등등)에 따른 태도의 변화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보다 이런 미세한 표정(물론 강코치는 너무 노골적이었지만)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올림픽 결과를 몰랐다. 근데, 이겼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 같다. 물론 실제 경기에선 이기는 것이 좋았을 테지만, 영화라는 맥락에선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스위니 토드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8.01.17. 15:00 아트레온 2관 3층 G-7

01
며칠 전 인근에 있는 백화점의 식품관에 갔다가 델리카트슨이란 이름의 정육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육점 이름을 델리카트슨으로 지은 사람은 영화를 봤을까?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엔 정육점이 나온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는 다름 아니라 사람고기. 그 건물에 처음 오는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을 죽여서 고기로 팔고,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인육인 줄 알면서도 사 먹는다. 정육점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인육처럼 맛있다는 의미일까?

[스위니 토드]를 읽으며,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떠올랐다. 분위기도 대충 비슷하고 어떤 상황들도 비슷하다. 물론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고어영화를 싫어하진 않으니 나쁘진 않았지만 종종 긴장감이 떨어졌고 끔찍하거나 섬뜩하진 않았다.

02
성별화된 모습들이 상당히 거슬리지만, “거지”(루시. 이름을 쓰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의 존재는 매력적이다. 지저분하다는 런던보다 더 지저분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문전박대 받고, 그래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사건을 예고하지만 “거지”라는 상황으로 예고는 헛소리가 되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다. 살아있는 죽음이 죽어가는 죽음으로 변하는 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생하고.

“거지”(혹은 루시)는, 예언을 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 카산드라 같고, 자신의 주장을 통해 죽을 수도 있지만 지배규범의 한계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안티고네 같다. 동시에 이 영화가 전개하는 이야기의 종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03
영화 초반에 토드가 이발사 시절에 사용하던 면도칼을 다시 손에 쥐자 “드디어 나는 완전해 졌다”란 의미의 말을 한다(대충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데 정확하겐 기억이 안 나서;;). 이 말이 재밌었다. 면도칼이라는 별도의 기계를 몸에 지닐 때에야 완전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건, 토드가 사이보그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연다. 물론 영화의 맥락에서 이 말은, 오랜 세월 이발사로 살아왔다는 점에서의 편안함, 복수의 다짐이자 출발을 의미하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기체와 무기물의 결합을 통해 완전함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토드는 사이보그일 수도 있다. (뭔가 좀 다른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정리가 안 되어서 생략.)

+
오랜만에 영화를 접하니, 정리가 쉽지 않다. 적응 기간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