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2005년 8월 처음 [Run To 루인]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그땐 상상도 안 했던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다. 얼마간의 실험 기간을 거치고 [Run To 루인]을 시작한 2005년 8월, 그 시기엔 아마도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책을 읽거나 논문을 읽는 삶이었고 다른 무언가가 내 삶에 있을 거란 상상은 하지 않았다.

운동? 이랑 활동은 일종의 운동이었지만 세미나와 매체 발간을 중심으로 진행했고, 그래서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일이 생겼다고 해서 성명서를 내는 식의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그때 내가 상상한 운동은 이 정도였다. 글쓰기 혹은 글이라는 매체를 통한 방식.

2006년 6월 3일. 한 수다회에 참가하며 인생이 바뀌긴 확실히 바뀌었다. 회비 회원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삶이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에 접근했다. 그리고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애매한 위치였지만, 아무려나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기획단에 뒤늦게 참가했고, 지렁이 발족을 준비했다. 그렇게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 년 조금 더 되는 시간이 흘러, 2007년 10월의 마지막 날. 긴급행동에 참가했다. 또 한 번 삶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제, 돌아오는 버스에서, 좀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다. 일 년의 계획을 짜면서, 적어도 7월부터는 논문에만 붙어야 하겠지만, 그리고 그 전에도 상당한 준비를 해야겠지만, 활동에서 좀 더 욕심을 내고 싶다는 바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의 지난 시간이 알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시간 같다고 느꼈다. 소속은 있고, 그곳에서 뭔가를 하는 거 같은데, 그 시기가 알에서 부화를 기다리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 성급한 평가가 무척 우습지만, 지금의 느낌으로 지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그런 거 같다. 막무가내로 참가해서 배우고 싶다는 욕심,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 능력은 안 되지만, 안 되는 능력이라도 열심히 하면 부족한 재능을 만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들.

아니다. 아니다. 이런 말들 다 필요 없다. 그냥 배우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 무작정 물어보고 가르쳐 달라고 생떼를 쓰면서….

[방랑소년] 1~6

시무라 타카코 [방랑소년] 1~6 (아직 연재 중)

이 만화가 있다는 걸 어디서 알았을까? [IS(아이 에스)]란 만화를 검색하다 알았을까? 혹은 다른 어디에서 알았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개글을 읽는 순간, 그래, 이 만화는 꼭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리본에 적혀 있는 소개글을 빌린다면 “여자 아이가 되고 싶은 소년 니토리 슈이치와 남자아이가 되고 싶은 소녀 타카츠키 요시노”의 이야기다. 이걸 루인 식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트랜스젠더인지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일단은 mtf라고 부를 수도 있을 아이 두 명과 ftm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아이 한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출판사 소개글의 문제는 일단 무시하자.)

만화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해서, 사춘기를 지나며 몸이 변하는 과정을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그리고 있다. “왜 트랜스젠더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과 고민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무척 좋다. 일테면 슈이치와 요시노는 단짝인데,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슈이치는 “여학생교복”을 요시노는 “남학생교복”을 입고 외출을 하곤 한다. 입어도 될까 하는 고민부터 입고 돌아다닐 때 느끼는 긴장감, 그리고 아웃팅으로 같은 학교 사람들과 가족의 몇 명이 “변태”라고 놀리는 상황에서의 고민들을 적절하게 그려가고 있다. 사춘기 즈음 호르몬의 작용으로 몸이 변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충격 받고 고민하는 상황들도 꽤나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트랜스젠더 상황인 이들만의 성장담이 아니라, 사춘기를 경험하는 이들의 성장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재미가 문제라면, 소재가 무엇이건 재미가 문제라면, 확실히 재미있다.

이 만화가 번역되어서 무척 좋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할지는 알 수 없지만, 트랜스젠더인 상황을 고민하는 (특히나 사춘기 즈음의)사람들에게, 자녀가 트랜스젠더인 것 같아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도 꽤나 괜찮을 거 같다.

물론, 100% 만족할 수는 없고, 내가 경험했던 상황들과 다른 상황들이 많다. 개개인들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100% 완벽한 작품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이 만화를 “이 정도로 그리는 게 어디야”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직 한 번 밖에 안 읽어서 단언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무척 괜찮다.

2008년 계획: 지렁이와 루인

1.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어제 회의 자리에서 2008년 한 해 계획을 세웠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다소 날림으로 정한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살짝 했지만, 흠흠 ;;;

발족 이후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할 일은 백만 가지고, 지렁이에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그런데도 단체 차원에서의 사업은 쉽지 않았다. 어떤 사업을 하나 정하고 그것에만 집중하면 좋았을 텐데, 이것도 시급하고 저것도 시급하다는 고민에 우왕좌왕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올핸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쉼터와 교육. 교육은 쉼터와 관련 있는 내용이고. 물론 트랜스젠더들이 쉴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세우겠다는 건 아니고(돈이 어딨나 ㅠ_ㅠ) 기존의 쉼터와 연계하는 방식을 모색할 예정일 듯. 쉼터하면 관심 있는 단체와 활동가들이 많을 줄 알지요. 같이 해볼까요?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라 LGBTQ와 관련해서 쉼터와 관련한 사업에 관심이 많을 테니까요. 후후.

2. 루인

일단, 2월 1, 2, 3일 동안 있을 LGBTQ 캠프의 기획단. 현재 참가 중. 아마 2월 말이면 끝날 듯.

현재 진행 중에 있고, 조만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변경할 것 같은 긴급행동(무지개행동)은 계속해서. 몇 년을 지속할 지 알 수 없음.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하고 4월 초에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개봉할 ftm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홍보 및 기타 관련 행사 공동 진행. 상반기에 끝날 듯.

며칠 전 수수님이 제안한 건데,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한 건 아니지만, LGBTQ 아카데미? 놀이터? 어쨌든 무언가를 진행할 수도.
(+약간 별개일 수도 있겠지만, 매달 준비하는 건 힘들어도 격월로 강연회/토론회 같은 걸 여는 작업도 재밌겠다.)

지렁이 활동은 기본. 특히 올 해 쉼터와 교육 사업에 집중.

책은 올해 나오겠지요? -_-;; 이와는 별개로 ㄱㅈㅇ와 잠깐 얘기했는데 트랜스젠더 연구에 있어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논문들을 번역해서 책으로 내는 작업을 고민 중. 빠르면 올해, 늦으면 내년. 급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논문…ㅠㅠ

그나저나 나의 생계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