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아카이브에 다른, 더 복잡한 논의를 기록할 수 있다면…

어제 인터뷰를 하면서도 말했지만 나는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 단체 자료만이 아니라 개인이나 소규모 모임 자료도 많이 기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기록으로 남는 기록물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LGBT/퀴어 이슈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선 늘 많은 논쟁이 발생하곤 한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자료집이나 어떤 물리적 형태의 자료가 생성될 때도 있다. 동성결혼 이슈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동성결혼을 주요 의제로 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매우 비판적 입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동성결혼을 다루는 토론회 같는 자리에선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의 논의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퀴어락에 등록할 수 있는 자료는 (앞으로는 몰라도 현재로선)자료집이나 단행본, 문서와 같은 형태로 인쇄한 것이지 트위터 등에 올린 글은 아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도 현재 시점에선 수집이 어렵고 무엇보다 블로그 글은 수집 자체가 애매한 측면이 있다. 자, 10년 정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를 상상해보자. 그때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이 동성 결혼에 우호적 내용 뿐일 때 그때 연구자는 지금을 어떻게 해석할까? 물론 인터뷰와 증언을 통해 기록물로 남아 있지 않은 입장을 확인할 순 있다. 그럼에도 어떤 아쉬움이 있다. 동성 결혼에 비판적인 논의를 인쇄물 형태로 보관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어쩐지 주류가 되는 의제에 비판적이거나 다른 입장을 밝히는 자료가 더 많이 기록되면 좋을 텐데.
다른 예를 들면 지금 시점에서 동성애 이슈와 관련한 자료는 많은 편이다.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는 그렇다. 반면 바이섹슈얼/양성애 관련 자료, 무성애 관련 자료, 트랜스젠더퀴어 관련 자료, BDSM 관련 자료 등은 매우 적은 편이다. 논의를 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목소리는 적다고 할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선 활발하지만 등록할 수 있는 자료는 적은 편이다. 나는 그렇게 논의된 내용을 인쇄할 수 있는 형태로 생산해서 배포하거나 퀴어락에 기증해주셨으면 하는 강한 바람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한국 LGBT/퀴어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하는데 대개는 동성애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당시 참가한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퀴어, 그리고 또 다른 여러 퀴어를 철저하게 그리고 고의로 삭제한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의 동성애의 용례, 게이의 용례가 지금과 같지 않고 그래서 동성애로 퉁쳐서 표현하면서 바이섹슈얼과 때때로 트랜스젠더퀴어를 포괄하곤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마치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퀴어는 없었다고 호도하는 주장이 여전히 큰 힘을 얻는다. 나는 이런 식의 해석에도 문제 삼고 싶지만 어떤 기록이 남는가에도 문제를 삼고 싶다.
앞으로는 역사를 동성애 중심으로 해석하고도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이해하지 못 하는 이들이 더 이상 그럴 수 없도록 다른 입장과 목소리가 퀴어락에 더 많이 기증되면 좋겠다. 이것은 강렬한 바람이다. 또한 나의 의무기도 하다. 그리고 동성애 중심적 상황에 문제 제기하고 다른 삶의 양식을 모색하는 이들과 관련한 자료가 더 많아 기록물로 남아서 더 이상 비이성애자-비동성애자, 트랜스젠더퀴어를 삭제할 수 없도록 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때도 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가 있었다!”가 아니라 “이 기록물 읽고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나 그 참조자료가 외국 자료가 아니라 한국이란 지억에서 생산한 자료라면 더 간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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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퀴어락에선 웹아카이브 개설을 논하고 있고 그래서 몇몇 종류의 웹 기반 자료를 수집은 하고 있다. 하지만 의견이 분명하게 개진하는 블로그 글 같은 경우엔 수집이 무척 애매하다. 어느 블로그까지, 누구의 것까지 수집할 것인가란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블로그가 공개를 통해 출판이 되는 형태지만 블로그 글을 출력해서 등록할 수 있는가란 점에선 애매한 점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블로그 글을 등록할 수 있는 방법은, 저자 본인이 PDF 등의 문서형태로 전환해서 퀴어락에 기증하는 방법 뿐이다. 아니면 블로그 자체를 퀴어락에 기증하거나.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단체 중심의 논의가 아닌, 다른 입장의 논의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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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상태에서 폰으로 쓰다보니 글이 매끄럽지 않네요ㅠㅠ

영화 4등 감상 추가…

영화 4등 감상평을 며칠 전 쓰면서 뭔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 표현이 있었다. 지금 갑자기 떠올랐다.

예를 들어, 혈연가족에게 대학원 같은 곳에 왜 가냐고 그냥 취직하라고, 공부하지 말라고, 너는 그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가며, 때론 욕도 들어가며, 그럼에도 공부를 하고 싶어서 악착 같이 공부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미술, 음악,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 창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사람이 상당하다. 1등은 못 하지만, 4등도 못 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든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영화 [4등]의 결론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모 혹은 어머니의 닥달이 없으니, 폭력 코치/교사가 없으니, 스스로 학습을 하니 1등을 한다는 그 결론은 1등 지상주의 한국사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읽힌다. 이런 나의 반응이 1등은커녕 10등, 100등, 100만등도 못 해본 나의 열폭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메시지, 그리고 결론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아니 불쾌하다. 성적 지상주의, 성적을 위해 닥달을 애정으로, 폭력을 사랑으로 치장하는 사회를 비판하겠다는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그 결론이 1등일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국가인원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통해 인권 영화를 표방한다면 결코 그래선 안 되었다.
가급적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각자가 선택할 일이지만.

부끄러운 일

여행 관련 글을 읽다보면 외국 여행지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나도 그런 글을 적었지만, 유럽에 갔는데 유럽 백인이 했다는 인종차별 발언, 동남아 어느 식당엘 갔는데 백인에겐 잘 해주는데 동아시아인 혹은 한국인인 자신에겐 불친절했다는 경험. 이런 경험에 분개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인종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차별에 분개하고 비판하는 작업은 무척 중요하다. 때로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아니 필요한 수준이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각종 게시판이나 댓글을 살펴보면 외국인 노동자를(물론 여기서 외국인은 백인이 아니라 비백인, 동남아시아인, 조선족일 때가 절대적이다) 추방해야 한다거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말을 무척 빈번하게 찾을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로 인해 한국인이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그래서 그들이 한국인에게 해악이란 식의 인식이 빈번하다. 혹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미/등록 이주민은 일상에서 다양한 차별을 겪고 있다.
외국 여행에서 겪는 인종차별 경험엔 분개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종차별엔 공모하거나 동조하거나 선동하는 목소리가 많다.
나 자신부터 반성할 일인데 내가 차별 받은 경험에 민감하고 분개하는 만큼이나 내가 공모하고나 방조하는 차별 구조에 민감할 수는 없을까? 내가 혹은 나와 동질적 집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겪는 차별에 분개하는 수준으로 내가 알게 모르게 이득을 보고 있는 특권적 위치와 그 위치로 인해 차별 받는 집단의 경험에 민감할 수는 없을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은 이런 점이다.
나는 트랜스젠더퀴어 이슈는 언제나 민감하려 애쓰지만 장애 이슈엔 덜 민감하고 인종 이슈엔 더더욱 덜 민감하게 고민하다. 학력이나 학벌 이슈엔 민감하려 애쓰지만 별다른 성찰이 없으며 계급이슈에선 매우 민감해야 함에도 별 말을 안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많은 이슈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거나 그 특권의 지속을 방조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복잡성을 어떻게 하면 더 고민할 수 있을까…
참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