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찾아 온 거

일테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일이 떠오르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상황도 없다. 반면, 포기하고 들어올 리 없다고 믿었는데, 고료나 강의료가 들어와 있으면 이보다 기쁜 일도 없다.

마감을 까맣게 잊을 리는 없으니(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우는 있어도;;;), 후자의 경우다. 얼추 두 달(엄밀하겐 넉 달)이 지난 시점에서 돈이 들어와 있는 걸 확인하곤, 마치 공돈이라도 생긴 것 마냥 좋아하고 있다. 히히히. 그래봐야 여이연 수강료 나가고, 생활필수품 사면 남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기쁘다. 히히.

+
여이연 강좌에 반가운 사람이 세 명이나 있어서, 무척 기뻤다. 🙂

온다 리쿠, ‘도코노 이야기’ 세 편

01
학교 네트워크 관련 팀에서 문제를 일으켜 연구실 컴퓨터에선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 지난주 월요일부터 안 되었으니, 일주일 내내 연구실에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주로 연구실 컴퓨터로 블로깅을 비롯한 인터넷을 했으니, 덕분에 인터넷 사용 시간은 줄었다. 대신 책은 여유있게 읽었다.

02
온다 리쿠의 ‘도코노 이야기’ 연작 3권([빛의 제국],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을 읽으면서, 마지막 권에선 살짝 소름 돋았다.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나로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구성.

굳이 세 권을 연작으로 부를 필요는 없는데,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란 점에서만 연작일 뿐, 각각은 다른 얘기이다. [빛의 제국]은 10편의 단편들을 모은 것.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은 듯 한데, 온다 리쿠는 확실히 장편에서 빛을 발한다. [민들레 공책]은 살짝 통속적인 스토리인데 이런 통속적인 스토리도 괜찮지만, 시간 구성이 흥미롭다. [엔드 게임]은 단연 압권. 자칫 줄거리를 쓰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불안이나 어떤 문장, 그래서 쉽게 잊을 수 있는 일들을 포착해서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 작품 역시 시간 구성이 흥미롭다.

온다 리쿠의 시간은, 특히나 이번 작품들에선, 결코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에서 미래로, 혹은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과 만나고, 미래의 시간을 과거에 만나고, 미래보다 과거가 더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세계. [엔드 게임]에서 이런 시간 구성이 특히 두드러지고, 이런 시간 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이런 활용은 단순히 판타지 요소가 있어서는 아닌 듯 하다). 얼룩덜룩해서 농도가 다른 기억들, 그래서 어떤 기억은 확실한 듯 하고, 어떤 기억은 불확실하고, 어떤 기억은 의도적인 삭제를 통해 전혀 떠오르지 않고. 이런 기억들이 엉키면서 시간은 다시 한 번 엉킨다.
(쓰고 다시 읽으니, 책을 읽어야지만 알 수 있을 내용이다-_-;;;)

03
오랜 만에 여이연 강좌를 들으러 갈 지도 모르겠다. 🙂

[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 [색맹의 섬](이민아 옮김, 이마고, 2007)

2년 전, 이맘 쯤이었을까? 한창 본다는 것, 시각경험, 색맹/색약과 관련한 글을 [Run To 루인]에 쓰곤 했다. 그리고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이와 관련한 글을 쓰려고 한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별로 그렇진 않다.

가끔씩은 정말로 타고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타고난 경험이라서, 반드시 ‘구성’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타고난 조건을 경험하지 않는 이들과는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경험. 이 말이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질주의와 구성주의라는 이분법으로 나뉜 논쟁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 아울러,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거 같아”라는 진술이 본질주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일테면 나의 시각경험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유전적 경험인데, 이것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 사회에 살고 있느냐가 관건 이겠지. 대체로 한국이란 사회는 이런 경험에는 완전 무지하거나 거의 무관심인 듯 하다. 이 책의 저자와 여행에 동행한 크누트의 경험이 그러하듯, 색맹/색약이란 경험은 한국에서 확실히 낯설고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리하여 내가 “색약”이라고 밝히는 건, 다른 여러 상황들과 마찬가지로 피곤한 일이다.

색약과 색맹은 상당히 다른 경험이고, 색약도 종류가 다양하다고 알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색약이 뭐냐고 묻는 이들도 많다. 나의 경우, 세상을 “칼라”로 해석하지만, 개개의 색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인식하진 않는다. 색이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색이 다르구나” 이상의 인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색깔 경험이 전무 하거나 아예 못 하는 것처럼 대하는 반응을 접하면, 분기탱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미세한 경험을 무시하는 반응인 동시에, 시각경험을 고민하지 않는 반응에 화가 난 것이랄까.

이런 경험이 있기에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꽤나 매력적인 글쓰기를 하는 올리버 색스의 글이니 더욱더. 하지만 이전의 글에서 보여주는 색스의 한계는 이 글에서도 여전하다.

나는 크누트가, 우리 주위의 색맹들이, 마블의 시상 같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지 못 한다는 사실이 문득 슬퍼졌다. (113)

예전에 읽은 색스의 책([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사내],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색스는 다분히 정상적인 경험과 그렇지 않은, 그래서 결여된 어떤 경험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색스는 나와 같은 시각경험을 결코 하지 못 한다는 점에서, 슬프다는 식의 표현은 웃긴 감상일 뿐이다.

이 책은, 색맹과 관련한 “1부 색맹의 섬”과 리티코-보딕(lytico-bodic)과 관련한 “2부 소철 섬”으로 나눠져 있다. 하지만 “색맹의 섬”은 기대한 것보다는 별로 였다. 2부가 기존의 논쟁까지 아우르며 리티코-보딕과 관련한 논쟁을 어느 정도 꼼꼼하게 다루면서 섬의 풍경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면, 1부는 다소 풍경과 식물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기대한 1부보다는 2부가 훨씬 재밌다.

[#M_ 심심하시면.. | 한 번 해보세요.. 훗.. |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