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꾸만 뒤돌아 봤다. 밤길의 어두운 골목. 0.1도 안 되는 시력이지만 그래도 자꾸만 뒤돌아 봤다. 장이라도 본 날이면, 玄牝이 가까워질수록 더 자주 뒤돌아본다. 물론 더 이상 아무도 없지만, 또 모르니까.

몇 주 전이었다. 장을 보고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언제나처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흐느적흐느적 걷다가 종종 걸음으로 걷다가 하며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그렇게 玄牝이 있는 건물의 계단을 걸을 때,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속으로 ‘누구?’ 하며 계단을 내려다봤다. 설마 나를 부를까 했는데, 맞았다. 누군가가 계단을 따라 올라오며 부르고 있었다. 그러며 말을 걸기 시작했을 때, 순간, 이 사람은 할인마트가 있는 곳에서부터 따라왔다는 걸 알았다. 할인마트가 있는 곳에서 玄牝이 있는 건물까진 7개의 횡단보도가 있고, 그러고도 골목을 좀 걸어가야 하는데.

그 당시엔 소름끼친다기보다는 당황했다. 왜 따라와서 말을 거나. 상황 파악 자체가 안 되고 있었기에 그냥 그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루인에게 관심이 있어서 따라온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주제 파악은 하고 있다니까. 오프라인으로 루인을 아는 혹은 본 사람들은 루인이 얼마나 매력 없는지 잘 알 테고. 흐흐. 그러니 그렇게 먼 거리를 따라올 만큼의 집념이 있는 범주는 뻔하다. 이른바 “도를 믿으십니까?” 변종으론, “제가 환경에 관심이 있는데요.”(자연환경이 아니라 생활환경-_-;;), “상당히 재능이 많으신 거 같은데, 참 어둡게 다니시네요.” 등등. 그때 그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인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도를 믿느냐고 물으려고 하냐?”고 선수를 쳤을 땐,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맞았다.

그때부터였다. 玄牝으로 돌아갈 때마다 집 주변을 한 번씩 둘러본다거나, 괜히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상상을 한다거나. 장이라도 보는 날엔 몇 번이고 뒤돌아보곤 한다. 모르겠다. 이러한 불안이, 집 근처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지, 단 한 번도 상상을 못 해본 상황-누군가가 그 거리를 따라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지, 어지간해선 玄牝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불쑥 들어왔다는 것 때문인지. 아마 이런 저런 가능성들이 얽혀 있어서겠지. 그 사람의 출현은 그저 계기일 뿐, 어떤 불안이 몸에 새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밤에 골목을 걷지도 못할 정도로 불안한 건 아니다. 그저 자꾸만 신경이 쓰일 뿐이다.

20살 이후, 줄곧 혼자 살면서 단 한 번도 혼자 사는 게 싫은 적이 없었다. 종종, 혼자 살 때 아프면 서럽다고 하는데, 그런 적도 없었고. 이성애혈연가족과 살 때도 아프면 혼자 아팠으니까. 근데 어제는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어흑, 해야 할 집안 일이 있는 거다. 해놓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될 일은 아니지만, 자고 일어났을 땐 무척 아쉬울 법한 일이었다. 그냥 조금 아쉬웠다. 그러면서도 혼자 사는 게 좋다고 느꼈다. 아마 같이 사는 사람이 있었다면 더 아팠을 지도 모른다. 아플 땐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최고고, 아침이 올 때까지 내리 자는 게 최고다. 암튼 루인에겐 그렇다. 그래서 11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더니 좀 낫다.

+
댓글은 내일 오후에. 내일 수업의 발제가 발등의 불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