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만 쓰기

얼추 10년 전 즈음에 읽은 어느 구절.

한창 문창과 붐이 일던 시기였던가, 아니면 이제 막 문창과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였던가. 아무튼 그 언저리의 어느 시기였다. 문창과 교수로 있는 한 작가와 인터뷰를 한 신문기사를 읽는데, 그 중 한 마디가 비수처럼 찔렀다.

“요즘 작가지망생들은 글(작품)은 안 쓰고 당선소감만 쓰고 있다.”

요즘 들어 이 말이 부쩍 자주 떠오른다. 10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이 말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항상 이 말을 떠올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말이 비수처럼 다가왔던 그 시절에도, 부쩍 더 자주 떠올리는 지금도, “글”은 안 쓰고 “당선소감”만 쓰고 있다는 의미다.

벨 훅스, “투쟁의 서사”에서

적당히 의역함-_-;;

[자신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면, 두려움을 느끼며, 그래서 침묵하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말을 한 후]
이렇게 지속하는 두려움은, 인종차별주의, 계급착취, 그리고 성차별적인 지배의 억압적인 구조를 통해 받은 나/우리의 상처에 대한 나의 깨달음을 증대시킨다. 이런 정치적 자기회복, 혁명적 의식의 발달은 상처를 치유하지 삭제하지 않는다. 이런 두려움은, 몸에 지속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잊혀진 상처로서, 집요하게 인식하길 요구하는 과거의 공포와 고문의 기호로서 드러난다.
피착취자와 피억압자의 가슴과 정신에서, 공포와 순화되지 않는 두려움의 발생은, 지배 정치에 우리를 묶어 두고, 우리가 저항할 수 없고 저항이 두려워 제자리에 머물도록 한다. 모든 수준에서, 이런 두려움을 직면하고, 우리의 삶에서 그런 지배를 깨는 것은 저항의 즐거운 몸짓이다. 우리의 정치적 자기회복이 완전해 지는 걸 믿는 나를 비롯한 개인들에게, 두려움의 일부가 남아있다는 건 불안하겐 해도 무력하게 하는 건 아니다. 이런 두려움은 내가 종종 잊길 원하는 기억, 장소 그리고 상황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그것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저항은 또한 “망각하지 않으려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앎을 기억하도록 한다. 기억은 우리가 역사의 주체이게 한다. 망각하는 건 위험하다.

나의 마음(mind)은 피난처, 성소, 침략의 두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나의 마음은 저항의 장소이다.

만약 마음이 저항의 장소라면, 오직 상상력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이럴 때, 상상한다는 건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의 출발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bell hooks, “Narratives of Struggle”, in Philomena Mariani edit. Critical Fictions: The Politics of Imaginative Writing p.53-61

예전에 한나님 블로그에서 이 글을 소개 받곤, 곧장 학교 도서관을 통해 이 책을 주문했다. 벨 훅스의 개인 저작엔 이 글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오늘 아침, 길지 않은 이 글을 읽으면서 상당한 힘을 얻었다. 벨 훅스의 글은, 언제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나게 한다. 그건 벨 훅스 자신이 페미니즘을 너무도 사랑하고 믿기에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듯, 저항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고, 이런 과정을 통한 믿음과 상상력이 다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건 아니지만, “힘을 북돋우는 잠재적 공간으로서의 추방자의 정치학(politics of exile)” 역시 이런 맥락에 있고, 상당히 매력적인 동시에 정말로 힘을 주는 구절이다. 이와 관련한 글은, [열망]Yearning의 한 챕터에서 다루고 있다.

엽서 두 장

어제 낮, 오늘 있는 수업의 발제가 있어 나름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던 중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학과 사무실 옆에 있는 알림판에 엽서 두 장을 붙이고 싶어졌다. 한 장은 “우리, 여기에, 함께” 홍보용으로 나눠준 엽서고 다른 한 장은 올해 퀴어문화축제 엽서 중 고양이병아리(병아리를 고양이로 종전환시켰네요;;;;;)와 코끼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 떠오른 김에 곧장 알림판에 엽서 두 장을 붙이고 다시 발제문을 쓰다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잠깐 바람도 쐴 겸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사무실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알림판이 허전했다. 두 장의 엽서가… 없어졌다. 떨어진 건가 해서 바닥을 둘러봤지만 없었다. 떨어질 만하게 붙인 것도 아니고. 그러자 가능한 상황은 단 하나. 누군가 탐나서 뽑아간 것.

거참, 사무실 문을 두드려서 달라고 하면 두 장씩도 드릴 수 있는데… 허허.

흐흐흐. 그저 예뻐서 가져갔건, 일종의 용기와 지지를 주는 부적과 같은 의미로 가져갔건,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상상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또 누군가 몰래 가져가길 바라는 몸으로, 알림판에 다시 두 장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