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연과 동인련, 그리고 지렁이

어젠 총 세 개의 일정이 있었다. 두 개는 포럼 혹은 발표회고 다른 하나는 지렁이 회의. 포럼 중 하나는 여이연에서 10주년 기념으로 하는 학술대회였고, 다른 하나는 동인련에서 미국의 LGBT단체를 방문하고 돌아온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날짜가 겹쳐서 안타까웠지만, 다행히 여이연은 10시부터 시작하고 동인련은 오후 3시부터 시작하니, 여이연을 듣다가 동인련에 가면 되겠다 싶었다.

우선, 여이연. 장소는 서울대대학병원에 있는 함춘회관이었나. 꽤나 멋진 곳이었다. 지렁이도 나중에 이런 곳에서 행사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장소. 흐흐. ;; 놀라운 건, 참석한 사람이 (우연히 들었는데) 150명이 넘는 것 같다는. 오전엔 꽤나 앞에 앉아서 처음엔 몰랐다가, 나중에 질의응답시간에 질문자를 보려고 뒤돌아 봤다가 사람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엔, 빠져나가기 쉽게 제일 뒤에 앉았는데 좌석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더라는. 그래서 진행을 맡고 있는 분이 계속해서 보조의자를 내오고. 이날 가장 듣고 싶은 주제는 임옥희선생님 발표에 김영옥선생님 토론 조합이었다. 아아, 참석하기 전부터 최고의 조합이라고 기대했지만, 동인련에 가야해서 못 듣고 나와야 했다는… ㅠ_ㅠ

여이연과 동인련 행사 모두 혜화동 근처여서 멀지는 않았는데, 길을 전혀 모르는 동네인지라(길을 아는 동네라고 안 헤매는 건 아니지만-_-;; 흐흐) 길을 나섰는데, 길치인 걸 감안하면 꽤나 잘 찾아갔다(방점은 알아서;;;). 정말 외진 곳에 장소를 구했더라. 그리고 발표회를 위해 빌린 사무실에 들어가니, 순간적으로 여이연의 학술대회 장소와 너무 비교가 되더라는. 작은 사무실에 접이식 책상을 몇 개 잇대어서 만든 회의장소. 얼추 10분전에 도착했는데 3시 정각에 이를 때까지 주최측을 제외한 참석자는 루인 뿐이라 상당히 당황했다(참석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집중될까봐;;). 그나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해서, 주최측 포함 얼추 20명 정도 모였지만.

우연히도 같은 날 진행한 두 행사의 전혀 다른 모습에, 몸이 복잡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LGBT 혹은 퀴어 운동의 현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10년을 맞이하는 단체임에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활동의 성과와 관련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 말이 동인련의 활동과 성과가 적다는 의미는 아니고, 여성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여이연에서 내는 출판물들의 무게가 꽤나 크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동인련 발표회가 끝나자 곧바로 지렁이 회의 장소로 이동해선, 11월 3일에 있을 영화 상영 및 포럼 준비를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측이 불가능하단 점에서 다과 등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예전에 학교에서 했던, 여성주의문화제의 하나로 영화 상영을 했을 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보다 문화제를 준비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흐흐. 물론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 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현재 예약한 장소의 좌석을 반 이상만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힛.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함-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주최 영화상영과 포럼

오랜 시간, 회의는 한 것 같은데 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다고, 요즘 지렁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죠. 단체 이름은 남아 있는데 활동가들이 아무도 없거나, 활동가가 있긴 한데 단체는 유명무실한 상황에 처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진짜요. -_-;;

단체 방향을 모색하는 와중에 뭔가 행사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이름 하여,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가 주최하는 영화 상영 및 포럼” 흐흐. 날짜는 11월 3일 토요일. 15시부터 영화상영을 하고, 18시부턴 포럼이 있어요. 그날 시간을 꼭 비워서, 참가해주시면 고마워요. 흐흐흐. 참고로 포만감은 보장 못 하지만 적지 않은 다과와 식사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랍니다. 🙂

+당연히 이 포스터는 수시로 올라올 예정이랍니다. 흐흐.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함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1부. 영화상영(15:00-17:00)
-트랜스 가족Transfamily(사빈느 버나르디, 독일, 29분, 다큐멘터리)
-Un/going Home(김영란, 한국, 34분, 다큐멘터리)
+[Un/going Home] 감독과의 대화

2부. 포럼: 한국 내 트랜스젠더 운동을 생각한다. (18:00-20:00)
-1.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가 고민하는 트랜스젠더
-2. 이성애중심주의와 성별이분법, 그 교차점에서
-3. 트랜스젠더에게 법/제도는 어떤 의미인가

※영화상영과 포럼 사이에 저녁을 대신할 다과를 제공합니다.

*주최: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일시: 2007.11.03. 토요일. 15시
*장소: 신촌 어딘가(보다 자세한 장소는 추후 공지)

연락은
메일: gendering@gmail.com
전화: 0505-991-1104
홈페이지: www.gendering.org

후원계좌: (국민은행) 김영은 041301-04-111102
※CMS계좌이체를 신청하셔도 됩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선명한 버전으로 보실 수 있답니다. 🙂

어느 변절자의 고백

크크크. 제목 쓰고 참 민망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흐흐흐. ;;;

얼추 1년 반 만에 밥을 직접 해먹고 다니면서, 심지어 도시락도 싸다니면서, 여러 모로 좋은 점을 깨닫고 있죠. 특히나 도시락을 싸다니는 좋은 점. 그러니 한때 김밥주의자를 자처하며, 김밥신을 열렬히 모실 때가 언제라고 벌써 “변절”해선 도시락주의자를 자처할 것만 같달까요. 흐흐흐. ;;;

밥을 해먹기로 하고, 도시락을 싸다니기로 하면서, 했던 다짐은 단 하나. 결코 복잡하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하게 한 가지 반찬만 만든다, 였죠. 아침에 밥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하진 않고요.

사실, 아침 6시 즈음이면 눈을 뜨지만 실제 이불에서 나오기까진 참 많은 시간이 걸려요. 흐흐. 알람을,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지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이불 속에서 밍기적 거리며 듣다가 2부가 끝나야만 이불에서 나와 학교 갈 준비를 했죠. 그러니 딱히 더 일찍 잠에서 깨기보다는 좀 더 일찍 이불에서 나오는 것이 관건이라면 관건. 보통 이불에서 빠져나와 씻고, 밥을 해서 먹고 설거지하고 玄牝에서 출발하는데 까지 대충 2시간이 걸리니, 그렇게 많이 걸리는 건 아니죠. 김밥을 사먹던 시절에 비하면 20분 정도 늦게 출발하게 되었지만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정도만 늦어졌고요.

반찬은 간단하죠. 일주일에 한 번 장보고, 그날 손질해선 7번 먹을 분량으로 나눠요. 장보러 간다고 사무실에서 출발하는 시간부터 손질이 끝나는 시간까지 대충 2시간 안팎이니 그렇게 나쁘진 않고요. 팩에 나눠 담은 음식을 아침마다 한 번에 볶으면 조리하기도 간단하면서 나쁘지 않은 반찬이 돼요. 대충 버섯과 두부, 부르콜리, 양파, 땡초(“청량고추”로도 알려진), 애호박 등이 들어가죠. 밥은, 밥을 해먹을 때면 항상 그랬듯, 돌솥에 흰쌀과 잡곡을 섞어요. 요즘은 적당한 크기로 자른 고구마랑 섞어서 밥을 하죠.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음하하. 돌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으로 숭늉을 만들어 먹으면 정말 맛있고요. 후후.

확실히 좋아진 점 세 가지.

1. 도시락을 싸지 않으면 항상 점심 때 무얼 먹을지를 고민해야 했는데 이젠 이럴 염려가 없어서 좋아요. 같은 반찬 매일 먹어도 별로 질리지 않는 편이니, 매일 같은 반찬이라고 해서 물릴 염려는 없고요. 하긴, 일주일 내내 김밥만 먹고 산 적도 있는데 물릴 리가 있겠어요. -_-;; 크크크.
(강황이라고 아세요? 카레의 원재료인 셈인데, 일종의 향신료로 강황만 따로 팔더라고요. 의외로 맛있어요.)

2. 새삼 느꼈는데 확실히 생활비가 적게 들더라고요. 예전엔 아침만 해먹고 점심 겸 저녁은 사먹었는데, 이럴 경우엔 생활비가 두 배로 드는 느낌이었죠. 근데 도시락을 싸다니기 시작하니, 생활비가 확실하게 줄었어요. 군것질도 거의 안 하다보니 하루 종일 지갑을 한 번도 안 여는 일도 있으니까요.

3. 무엇보다도 김밥 등을 사먹을 땐, 밥을 먹어도 허한 느낌, 여전히 허기진 느낌이 남았는데 밥을 해먹고 도시락을 먹으니 이런 느낌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이 느낌이 좋아요. 먹고 나면 든든해지는 거, 그래서 허기가 들지 않는 거. 더 이상 예전처럼 갑자기 허기가 들면서 한기와 식은땀이 나는 일은 없죠. (고작 보름 정도 도시락 싸다니고선 벌써 오바하는 거냐! ;;;)

근데 안 좋아진 점 하나.

확실히 활동량이 줄었어요. ㅠ_ㅠ 그래도 밥을 사먹을 땐 사러 간다고, 사먹으러 간다고 움직이기라도 했는데, 이젠 이럴 이유가 없거든요. ;;; 이건 좀 양가적이에요. 학교에 오는 시간이 5분에서 10분 늦어지는 대신 1시간을 벌었으니 확실히 좋고, 신경 쓸 일도 줄었으니 좋은데, 대신 말 그대로 하루 종일 화장실 정도만 왔다갔다만 할 뿐 다른 움직임이 없어 졌죠. 사무실이 북향이라, 화장실 간다고 복도에 나가면, 복도에 비치는 햇살에 놀라기도 하고요. ㅡ_ㅡ;;; 산책 시간을 가질까 봐요. (과연?)

많이도 말고 아주 조금만 부지런해지기로 한 것뿐이에요. 아주 조금만. 워낙 게으른 인간이지만, 아주 조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