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슨 가족, 더 무비

[심슨 가족, 더 무비] 2007.08.27. 월, 18:40, 아트레온 4관 7층 H-12

저녁 먹으러 나선 길에, 문득 영화관에 가야지, 했다. 딱히 영화를 읽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았는데. 마침 시간도 맞았고,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한 영화이기도 해서, 망설임 없이 “심슨 가족”을 선택.

지금까지 TV시리즈로 [심슨 가족]을 읽은 건, 채식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전부. 그러니 이 시리즈가 기본적으로 어떤 성격인지는 거의 모른다. 그래도 재밌더라. 일테면, 공짜로 TV에서도 볼 수 있는 걸 돈까지 내고 왜 영화관에서 보느냐고 말하는 호머 심슨의 말, 영화 초반부에 갑자기 자막을 통해 [심슨 가족]은 TV에서도 한다고, 우리는 영화에서도 TV시리즈를 광고한다는 말 등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재미들이 무척 많아서, 비록 후반부에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흐흐흐.

지금까지 나온 모든 시리즈는 아니어도, 한 시즌 정도는 알고 갔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구멍 난 호흡

숨이 가프면, 한 호흡 떼어다 냉동실에 구겨 넣어. 그렇게 쟁여둔 숨들이 넘칠 듯이 가득 차면, 어느 틈엔가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냉장고 옆 따뜻한 벽에 기대어 앉아, 모터 돌아가는 소리에 호흡을 맞춰. 바람 새는 소리가 나는 호흡. 듬성듬성 구멍이 난 호흡.

…잘 지내고 있니?
난, 허투루 하는 숨들 속에서, 텅 빈 구멍이 커져가는 것도 모르고 살고 있어.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 란 말을 어떻게 하면 모순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렸다. 어제 오후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걷다가.

앞의 “트랜스”와 뒤의 “트랜스”가 다른 의미라고 얘기하면 되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앞의 “트랜스”가 한 개인의 정체성을 “트랜스”로만 환원해서 나이도 초월하고 학벌이나 학력, 계급이나 계층도 초월한 존재란 의미라면, 뒤의 “트랜스”는 한 개인의 부분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거라고. 하지만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중얼거렸을 때, 앞의 “트랜스”와 뒤의 “트랜스”는 거의 비슷한 맥락과 의미였다.

어떤 사람은 성전환수술을 하고 호적상의 성별정정을 했지만 자신은 트랜스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을 “넌 트랜스젠더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 사람에게 트랜스라는 범주/정체성을 덮어씌우는 건 곤란하다. 이럴 때 이 사람은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얘기하겠지. 하지만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란 말이 모순이 아니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렸을 땐 단지 이런 상황만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

나의 직관에선 너무도 자명한데, 다른 사람에겐 자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순이거나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여겨져서 많은 설명이 필요로 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란 말도 이런 상황인 걸까?

“난 트랜스는 아니지만 트랜스로서 살아가며 여러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란 말이 모순이 아니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란 말을 조금 바꾸면,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아니지만 트랜스젠더화된(transgendered) 상황에 있는 이들의 경험을, 성별이분법으로 환원하지도 않고 트랜스/젠더 이론으로 얘기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가 될 것 같다. 물론 조금 다른 의미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