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9-09.04. 영화잡지 단상: “대한민국 747”, “Sexis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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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면 지하철역으로 가서 세 권의 영화 잡지를 산다. 보통은 씨네21과 필름2.0을 사는데, 몇 주 전부터 무비위크도 사고 있다. 무비위크는 예전에, 어떤 이유로 한 번 산 적이 있는데 적응이 안 돼서 관심을 안 가지다가 최근 그냥 같이 구입하고 있다.

씨네21과 필름2.0만 살 때는 몰랐는데, 무비위크를 사서 내용을 훑어보다가 무비위크가 씨네21이나 필름2.0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단 걸 느꼈다. 필름2.0이나 씨네21이 “영화전문지”(이건 필름2.0의 김영진이 쓴 표현이다)란 느낌이 많이 든다면, 무비위크는 영화에 좀 더 초점을 둔 “잡지”란 느낌이 많이 든다. 물론 이런 느낌은 필름2.0과 씨네21을 줄곧 봤기에 생긴 편견일 수도 있다. 그만큼 성격이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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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비위크를 사려고 표지를 보는데, 가장 큰 제목으로 “Sexist Stars”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깜짝 놀랐다. “성차별적인 스타들?” 만약 이런 제목의 특집기사가 이른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잡지에서 나왔다면 좀 덜 놀랐을 거 같다. 혹은 “진보 성향”을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잡지였어도 덜 놀랐을 거고. 근데 중앙일보에서 발간하는(중앙일보에 편견이 있다) 무비위크의 특집제목이 “Sexist Stars”라니. 그러다 순간, “설마?”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The 20 Sexist Stars”라고 적혀 있고, 큰 글씨 위에 작은 글씨로 “2007 가장 섹시한 남녀 스타 20″이라고 적혀 있다.

쿵.

그, 그러니까, sexy의 최상급이란 의미로 “sexist”를 사용한 것이냐. ;;; “가장 섹시한 스타”를 “성차별적인 스타”로 표현한 제목 앞에서 웃음 밖에 안 나왔다. (근데 혹시 sexist에 “가장 섹시한”이란 의미가 부가된 건 아니죠? ←급소심해진 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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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실린 “김소희의 오마이이슈”를 읽다가 이명박의 공약 중에 “대한민국 747″이 있다는 걸 알았다. “연 7%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대국”이란 의미란다. 다른 사람이 이런 공약을 내걸었다면 피식 웃고 말았지만, 이명박이 내건 공약이란 점에서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중얼거렸다. 이명박이라면 이 정도 쯤이야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한반도 대운하”도 할 거라고 믿고. 걱정은, 하지도 못 할 공약을 내걸고 있다는 게 아니라, 정말 이렇게 할 거란 점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 많은 욕을 먹고도 이명박은 시장시절 청계천을 복구했고 버스노선을 정리했다. 자기가 하겠다고 하면 주변의 비판은 신경도 안 쓴다는 걸 충분히 봤기에, 대운하 정도는 문제도 아니고, 747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끔찍하지 않나?

7%성장에 국민소득 4만 달러 자체가 걱정이 아니다. 이 정도 성장해서 취직 걱정 없고 돈도 잘 벌면 좋잖아. 하지만 민노당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겠지만(민노당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이명박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누구의 성장이고 누구의 소득이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7%성장? 중소기업 다 죽이고 몇몇 재벌에 집중하면 이 정도 성장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4만 달러? 루인의 연 소득이 1만 달러가 될까 말까 해도 이건희 같은 사람의 소득이 400만 달러 혹은 4,000만 달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747이란 공약 속에, “어떻게”와 “누가 혹은 누구에게”란 고민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부가 특정 집단에만 집중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아, 정말이지 올 연말엔, [눈뜬 자들의 도시]([눈먼 자들의 도시] 후속편)처럼 집단 백지투표가 나왔음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별칭의 문제 + 아이디

문득 “루인”이란 이름이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첨엔 “루인”이란 이름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려 했다. 특정 목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루인”으로 소개해야지 했다. 온라인별칭으로 시작한 이름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름으로 만들었기에 구분해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구분해서 사용했다. 수업 시간과 기존에 만나던 사람들에겐 법적 이름을 사용했고, 여성학/페미니즘/트랜스/퀴어 등등과 관련한 사람들과는 “루인”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시작한 별칭이지만, 온라인 별칭을 선택할 때, 너무도 당연한 듯이 “루인”을 사용했다.

현재 상황에서, 루인의 법적 이름을 아는 사람은 셀 수 있을 정도이고, 이제 법적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법적 이름을 아는 사람들 상당수도 “루인”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도 “루인”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떤 수업시간엔 출석명단에 있는 법적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루인”을 먼저 얘기했고, 어떤 선생님은 수업을 통해서야 비로소 루인의 법적 이름을 알기도 했다. 몇 달 만에 전화해야 하는 경우, 그 사람에게 “루인”으로 소개를 해야 할지, 법적 이름으로 소개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경우도 적지 않고.

그렇게 혈연가족/친족들과 처음부터 법적 이름으로 만났고 “루인”을 알려 주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 몇을 제외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루인은 “루인”이다(앞의 “루인”과 뒤의 “루인”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근데 언제까지 “루인”으로 지낼 수 있을까?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학위논문엔 법적 이름(이하, ㄱ이라고 하자)을 기재해야 하는데, 그럼 그 논문은 누가 쓴 논문일까? 어쩔 수 없이 ㄱ은 “루인”이 쓴 글을 인용할 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루인”과 “ㄱ”의 사용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다면, ㄱ은 “루인”의 글이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글인 것처럼 인용해도 괜찮을까? (누군가는 이런 일을 지적 사기라고 했다.) 벨 훅스는 저작권 표시에만 글로리아 왓킨스라는 법적 이름을 쓰고 그 외엔 벨 훅스란 이름으로 활동한다고 알고 있는데(학위논문에선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루인도 벨 훅스와 같은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만약 어떤 기회에 학술논문에 논문을 기고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도 “루인”이라고 표시할 수 있을까?(만약 영어로 이름을 쓸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ㄱ”이란 이름도 사용해야 한다면, “루인”과 “ㄱ”을 병행하는 방법은 이미 고안했다.)

다른 한 편, 꽤나 자주 느끼는 갈등이지만, 별칭을 부를 때면 굳이 “님”이란 식의 어미를 붙이지 않아도 부담이 덜한데 법적 이름을 부를 때면 어떤 식으로건 어미를 붙여야 할 것 같은 강박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어려움은 결국, 별칭과 법적 이름에 다른 무게를 부여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A란 사람을 부르면서 별칭을 부를 땐 편하게 말하고 그냥 별칭만 불렀지만 때로 A의 법적 이름을 부를 때면 나이와 성별이 드러나는 어미(일테면 “언니”)를 붙였고 말도 약한 존칭을 사용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재밌다고 느꼈는데, 루인이 느끼는 갈등을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서도 만났기 때문이다.

법이 보증해주는 이름과 법이 인정하지 않는 이름의 무게를 느끼면서, 문득 “루인”이란 이름이 조금은 지긋하다고 느꼈다. 물론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래서일까, 얼마 전부터 새로운 메일 아이디를 고안 중이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인터넷을 사용할 때부터 단 하나의 아이디만 사용하고 있는 이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처음으로 만든 아이디가 blueye라면(실제 있으려나? ;;;) 모든 메일주소부터 블로그 주소, 그리고 별칭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통일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대단하단 느낌과 신기하단 느낌이 동시에 든다. 루인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사용한 아이디를 모으면, 못 해도 30~40개는 될 테니까. 사실 지금도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 이상 로그인 하는 이이디만 10개 넘으니까. 흐흐. 하긴 한땐 가입하는 사이트마다 다른 아이디를 사용했고, 아이디마다 별도의 비밀번호(심지어 전혀 다른 조합의 비번이었다)를 지정하곤 했다.

그런데 또 새로운 아이디를 고안 중이다. 첨엔 니나 나스타샤(Nina Nastasia)의 곡 중에 하나로 해야지 했다. 아이디를 듣는 순간, “니나 나스타샤 좋아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일테면 coffeentv란 아이디를 보면 곧장 블러가 떠오르듯. 하지만 니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으려나. 흐흐흐. 그러다 불현 듯, 이미 니나와 매우 밀접한 아이디만 이미 두 개를 사용 중이란 걸 깨달았다. runtoruin을 비롯한 아이디들도 그렇거니와 “루인”이란 별칭 자체가 니나에게서 기인하니까. 어떤 의미에선 니나에게 보내는 팬심이기도 하고. 크크크. 그래서 묘력(;;;, 그러니까 캣 파워Cat Power)의 곡으로 할까 새로 고민 중이다. 루인의 법적 이름이 “이미라”면 딱 좋은 아이디가 있는데. 크크크.

아, 이렇게 여러 아이디를 사용하지만, 그래도 2000년인가 2001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도 있고, 2002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던 초기에 메일 아이디를 참 수시로 바꿨더니 좋은 점은, 스팸메일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거. gmail을 만들고 처음으로 스팸메일을 받았는데, 그래도 알아서 잘 걸러주기도 하거니와 꽤나 공개한 메일주소임에도 한달에 몇 통 정도라 신경이 안 쓰이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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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글, 참 산만하다. *힐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