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틀 만에 죽을 먹었다는 얘길 썼다. 얼추 열흘 전부터 속이 안 좋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임에도 밥을 꾸역꾸역 챙겨 먹다가 메스꺼움에 결국 속을 비우기로 했었다(속이 안 좋거나 아플 땐 굶는 게 최고라고 믿는 편;;;). 그렇게 죽을 먹었을 때, 빈속에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라 과일만 먹을 거라는 말도 썼다. 그렇게 지난 일요일엔 천도복숭아 몇 개, 월요일인 어젠 바나나 몇 개. 오늘도 천도복숭아 몇 개를 먹고 있다. 이러다보니 밥을 먹고 싶다는 바람을 품곤 한다. 그럼에도 밥을 먹고 싶지가 않다. 더 정확하게는 밥을 먹을 엄두가 안 난달까.
얼추 열흘 전만 해도, 비록 하루 두 끼라고 해도 밥은 꼬박꼬박 챙겼다. 허기증세라고, 밥을 안 먹으면 식은땀이 나고 온 몸이 떨리는 증세가 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증세도 없다. 과일 몇 개 먹고 있으면 배고픈 느낌도 별로 없고 허기증세도 없다. 오호라. 제대로 다이어트 하고 있구나! -_-;; 흐흐. 실제 살이 좀 빠진 느낌이 들긴 든다.
며칠 약을 챙겨 먹었더니 위가 쿡쿡 쑤시는 듯한 느낌은 약하게 남아 있어도 매스꺼운 증세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배가 별로 안 고프고 밥 먹을 엄두가 안 난다.
이런 상황이 걱정이냐면, 그 반대다. 지금의 상황이 좋아서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을 정도로. 과일 몇 개를 먹으며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면,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과일 값이 비싸다고 해도 밥값이 안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절약하는 셈이기도 하다. 이런 바람 속에서 조금은 불순하게도, 카프카의 소설, “단식하는 광대”를 떠올렸다. 기계적으로 단식을 하는 그 광대처럼, 이 기회에 루인도 밥을 안 먹고 과일만 먹으며 살 수 있는 몸을 만들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다. 과식주의자(fruitarian)가 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이 좋다. 루인의 성격에 몇몇 종류의 과자는 끊을 수 없을 테니, 오직 과일만 먹고 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 기회에 쌀을 전혀 안 먹고 과일만 먹고 살 수 있는 몸, 과일이 밥인 몸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몇 십 년을 라면만 먹고 살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아무려나, 오후엔 쌀을 먹으러 가볼까 고민 중이다. 사흘 동안 쌀을 안 먹고 있자니, 20년 넘게 몸에 익은 습관이 있어 살짝 걱정이 되긴 하니까. 하지만 괜히 쌀을 먹었다가 탈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로 인해 꽤나 망설이는 중이다. 고작 이틀이긴 하지만 쌀을 안 먹었다고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이래놓고 내일부터 다시 김밥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지도 모를 일이니 무얼 장담할 수 있겠느냐만, 아무렴 어때. 이 여름, 나름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