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혹시 스폰지하우스(예전, 씨네코아 자리)와 CQN명동(씨네콰논)에 모두 가 보신 분 계세요?
두 영화관이 가까운 거리에 있나요?
걸어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릴까요?

지하철역만 보면, 가까운 것 같은데 지도검색으로 찾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질문을… 흑흑.

[영화] 조디악: “밥은 먹고 다니냐?”와 “밥은 먹고 다녀?”의 간극

[조디악] 2007.08.19. 일, 17:45, 아트레온 9관 11층 L-10

01. 피해(경험)자를 재현하는 방식
지다님도 지적했고, 영화잡지들 상당수가 그러하듯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살인의 추억]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아, [살인의 추억]과 비슷하다니… 이런 홍보가 이 영화에 해가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겠다. 루인 주변엔 [살인의 추억]을 안 좋게 읽은 이들이 워낙 많아서…. 이 영화를 읽겠다고 했을 때, 바람은 한 가지였다. 살인범에 의해 죽은 이들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하는 거. [살인의 추억]에 대한 안 좋은 추억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읽겠다고 했던 건, 어떤 막연한 바람 때문인데, [조디악]만큼은 피해(경험)자들을 피사체로, 무기력한 볼거리로,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니 이 영화를 읽으러 가는 건, 처음부터 [살인의 추억]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화를 읽고 난 지금, 두 영화를 비교하자면, [조디악]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만족스럽진 않다고 해도, 그나마 [조디악]이 피해자를 재현하는 방식에서 조금이나마 더 ‘윤리’적이란 점에서(혹은 ‘덜’ 폭력적이란 점에서?). 이 간극은, 두 영화에서 거의 비슷한 말로 나오는 구절,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는 [살인의 추억]과 “밥은 먹고 다녀?”라고 묻는 [조디악]의 맥락과 뉘앙스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가 수사관과 용의자 관계임에도 “남성연대”를 구성하는 의미라면, [조디악]에서 “밥은 먹고 다녀?”는, 비록 파트너들 혹은 동거인들(이른바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음에도 친밀한 관계였음을 상기하는 동시에 이런 관계를 연장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의미를 지닌다. 물론 [조디악]의 이런 말은, 여전히 성별화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애초부터 이 영화가 젠더관계를 고민했을 거란 기대 자체가 없었다.)

물론 [조디악]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정황을 통해 범인/용의자를 구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과 성격이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좀 지루한 감이 없진 않고, 몇몇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추억]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고 느꼈다.

02. 기억구술, 뒤팽트

“기억이란 게 거의 남아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남작의 이야기와 섞여 버렸을 걸세. 남작이 교묘한 수법과 궤변으로 신문과 세간의 풍문을 어지럽혀 놓았으니까. 소재가 파악될 무렵이면 증인들 모두 오염되어 있을 게 분명해”
“거짓말을 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의도적인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기억과 이야기가 남작의 의도대로 바뀔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 남작이 돈을 주고 재판정에 세우는 증인이나 다름없단 말이지. 이들을 만나더라도 아주 기본적인 사실 외에는 소득이 없을 테니 무슨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정보를 얻을 수가 있겠나?” (매튜 펄, [포의 그림자] 1권, p.216, 뒤퐁트와 클라크의 대화)

이 영화를 읽다가 문득, 위에 인용한 뒤퐁트의 말이 떠올랐다. 사건들이 발생하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삽화가 로버트(제이크 질렌홀 분)가 증언을 모으며 범인을 추적할 때, 그에게 증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너무 많이 노출된 정보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로버트가 찾아 갔을 때, 다들 로버트가 알고 있으리라 여기는 방식으로 증언을 구성하고 있고, 로버트 역시 이런 증언을 바란다. 감옥에 찾아가 증언을 들을 때 보여주듯,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정보가 아니면 무시하며 화를 내기까지 한다.

증거와 정황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증거가 될 수 있을 법한 단서들은 하나같이 용의자는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정황들은 용의자가 범인일 가능성을 말한다. 유력 용의자가 범인이다 아니다를 떠나, 정황을 통해 범인을 찾는 모습이 조금 우습다고 느꼈다. 증언과 정황으로 범인을 찾는 거라면, 사실 굳이 그 용의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로 대체해도 충분히 비슷한 증언과 정황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자신을 찾아와 이웃에 사는 사람이 살인범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평소엔 웃고 넘길 가벼운 농담들도 살인범의 가능성/증거로 바뀔 수 있다. 다른 때라면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웃의 행동도, 살인범 용의자로 지목되는 순간 폐쇄적이고 이웃과 어울리지 못 하는 성격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런 맥락에서 구성된 증언이라면, 그 용의자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적절한 정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일테면 기자인 폴, 담당 형사인 데이빗이나 빌, 혹은 포스터를 그렸다고 하는 본(?)을 유력한 용의자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유력한 용의자를 선정하고 그 용의자를 정황을 통해 범인으로 구성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03. “호모”
조디악을 쫓는 기자, 폴은 조디악과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호모일 수도 있다”(영화자막에서 “호모”라고 표시하는데, 영어로는 정확하게 어떻게 사용했는지 놓치기도 했고, homo라고 썼을 경우, 이 말의 사용방식과 의미가 시대에 따라 다르단 점에서, “호모”로 표시함)라고 쓴다. 이 기사를 쓴 이후, 폴은 조디악에게 살해협박을 받고.

이 장면에서 깜짝 놀랐다. 이전 장면에선 나타나지 않았지만,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알 수 있는 어떤 코드라도 있었던 건가, 아님 폴의 게이더(gaydar)가 작동한 건가 싶어서. 그렇다고 폴의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는, “정황”을 통해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영화에서 명확하게 밝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첨엔 게이더를 통해 뭔가 알아차린 건가 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란 걸 떠올렸을 때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걸 알았다. 1960년대 중후반이면 미국에서 한창, 동성애인권운동, 흑인인권운동, 페미니즘 등등의 시민권운동이 활발한 시기였다. 그렇담 폴이 조디악을 “호모”일 수도 있다고 기사를 쓴 건, 이런 운동에 반격으로, 즉, 조디악을 동성애자로 몰아가 동성애혐오를 부추기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걸.

폴은 조디악이 명성과 관심을 바라는 존재로 얘기하는데, 폴 역시 명성과 관심을 바란다는 점에서, 애증이 형성되었을 수도 있고.

폴이 어떤 의도로 조디악을 “호모”일 수도 있다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방식의 해석이 가능한 건 분명하다.

곧 개학 + 참고문헌 + etc

얼추 일주일 전부터 위가 안 좋다. 매스껍고 쿡쿡 쑤시듯이 아픈 정도랄까? 뭐 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안 좋아서 이틀 전부터 속을 비우고 있다. 어제 저녁엔 이틀 만에 죽을 먹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부담스럽더라는. 그래서 다시 오늘은 그냥 과일만 먹겠다고, 아침부터 천도복숭아를 몇 개 먹고 있다. 음식을 먹으면 위가 활동을 못 하는 것 같아서, 과일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판단. 그냥 혼자서 멋대로 내린 처방이다. 원래는 며칠 동안 아무 것도 안 먹을까 했지만, 영양분은 보충해야겠기에, 과일을 선택했다.

어제 저녁엔 안경도 새로 맞췄다. 몇 년 만에 새로 맞추는 안경이라, 어떤 디자인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오오, 꽤나 괜찮은 디자인을 발견했다. 우헤헤. 렌즈는 연보라색으로 했다. 그러고 보면 근 몇 년 째(고등학생 시절부터), 색깔이 안 들어간 렌즈를 착용한 적이 없구나 싶다. 월요일에 찾으러 간다. 우후후.

그리고… 일주일만 있으면 개강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벌써 개강이야!! 라고 비명이라도 지를 법 하지만, 이번 방학은 대학원 들어와서 보낸 방학 중 가장 괜찮게 보낸 것 같다. 방학을 시작한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매주 논문 5편에 소설책 한두 권, 그리고 몇 편의 영화를 읽는 생활을 유지했다. 비록 8월 들어 종시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활이 좀 흐트러지긴 했지만. 물론 읽어야 했던 책을 읽지는 못 했지만, 그동안 방학하면 꼭 읽어야지 하며 추려둔 논문들은 얼추 읽은 셈이다(H님 논문 정말 멋져요! 몇 가지 아이디어도 얻었고요. 헤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방학의 만족이라면 오랜 만에 소설을 몇 권 읽었다는 거. [화이트 노이즈]는 첨엔 부담을 갖고 시작했는데, 이런 부담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꽤나 재밌게 읽었다. 다음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바람이 들게 하는 그런 책.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기 시작한 것도 기쁘고, 온다 리쿠에 버닝할 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전에 참고문헌이 없다고 염려했던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하고 있다. 종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던 논문이, 그동안 찾고 있던 논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그 동안 관심을 갖고 모아뒀지만 아직 읽은 적은 없는 몇몇 저자들이, 상당히 중요한 아이디어를 줄 거란 걸 깨달은 것도 소중한 수확.

아무려나 일주일 뒤면 개학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